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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 축구의 힘

축구야 재미있게 놀자!

즐기며 배우는 초등학교 꿈나무들… 10년 후 월드컵 우승 향해 힘찬 드리블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축구야 재미있게 놀자!

축구야 재미있게 놀자!
6월11일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신곡초등학교 운동장. 축구부 어린이들이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며 축구공을 향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잔디가 아닌 메마른 땅에서 공을 차고 있지만 아이들은 축구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마른 땅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로 아이들의 모습은 희미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의가 가득 찬 얼굴 표정만큼은 선명하다.

6월12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초등학교에선 4~6학년 학생 모두가 참여한 축구대회가 열렸다. 구룡초교 축구부는 올해 소년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달리고 응원하며 축구를 즐겼다. 구룡초교는 축구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축구특별반을 운영하고 있다. 축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30분 일찍 등교해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긴다. 이들 가운데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리라.

259개 학교 7100여명 등록

축구야 재미있게 놀자!
10년 후 한국 축구를 이끌 축구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259개 초등학교에서 뛰고 있는 축구 꿈나무들은 7100여명. 축구교실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5000여명과 함께 미래의 한국 축구를 짊어지고 나갈 재목들이다. 김진국 대한축구협회 유소년분과위원장은 “눈에 확 들어오는 스타선수는 없지만 과거와 달리 선수 대부분이 조금만 다듬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밝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학교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친 승부욕이었다. 기본기를 가르치기보다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인마크에 길들여진 선수들은 성인이 돼서도 창의적인 축구를 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외길로 운동장을 달렸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가 대표팀을 이끌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선수들의 기본기 부족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기본기에서의 미세한 차이가 약팀을 상대로 할 땐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강팀을 상대할 때는 여지없이 큰 점수 패배로 이어졌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이런 분위기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초등학교 축구가 ‘경기’에서 ‘놀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교육이 놀이로 바뀌면서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발적으로 축구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신곡초교의 유일한 여자선수인 이수진양(11). 가냘픈 체구의 ‘축구소녀’는 여자라고는 믿기 힘든 개인기로 6학년 남자 선배들을 요리하며 질풍같이 운동장을 휘젓고 다녔다. 자질이 매우 뛰어나 축구선수로 대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담당교사의 귀띔.

수진이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축구공을 갖고 노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어느 편이 이기는지, 골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축구중계를 보면 절로 신바람이 났다.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겨울방학 때.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고학년 오빠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이양은 “나도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엄마에게 졸라댔고, 부모 역시 딸이 좋아하는 축구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수진이는 지난 3월 신곡초교로 전학해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국가대표 선수로 뽑혀 월드컵 우승컵에 입맞춤하는 게 수진이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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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고 축구 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월드컵에 출전해 꼭 우승할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안정환 오빠처럼 멋진 헤딩슛도 넣을 거고요. 아직은 후보라 조금 짜증나기도 하지만 6학년이 되면 주전으로 뛸 수 있어요. 골도 많이 넣고 수비도 잘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될 거예요.”

신곡초교의 축구팀 선수는 48명. 다른 초등학교 축구팀보다 30명 정도 많은 숫자다. 축구를 배우겠다고 수도권 각지에서 전학 온 선수가 40명이 넘는다. 축구 꿈나무들이 신곡초교를 찾는 것은 김상석 감독(33)의 선진적인 지도방법 때문이다.

김감독은 ‘즐기는 축구’를 표방한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코칭 수업을 받고 당시 창단 7개월 된 신곡초등학교에 97년 2월 부임해 2000년부터 초등학교 축구계에 ‘신곡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에 지역방어를 도입하기 훨씬 전부터 초등학교 선수들에게 최종 수비수를 없앤 일(一)자수비를 가르쳐왔다.

축구야 재미있게 놀자!
김감독은 어린이들에게 기술보다는 축구에 재미를 붙이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한다면서, 축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나서 기본기를 가르쳐도 늦지 않다고 역설한다.

“축구는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에 큰 도움이 돼요. 축구를 통해 협동심 자신감을 배워나가는 것이지요. 꼭 축구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생활체육으로 축구를 배워두면 장점이 많습니다. 지도자들도 학생들이 단순히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자신의 삶으로 여기고 사랑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축구철학을 갖고 있는 김감독 덕택에 선수들은 ‘생각하는 축구’를 배운다. 훈련은 철저히 기본기 위주로 짜여져 있고,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전술훈련은 가능한 한 자제한다. 세계 축구의 큰 흐름인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선수들에게 2대 2, 3대 3, 4대 4 미니게임을 자주 시켜 축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신곡초교는 3월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기념 한일소년축구대회에서 일본의 시미즈FC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탱크 같은 돌파력과 강력한 슈팅이 주특기인 박영준군(12)은 일본팀을 누르고 우승하는 데 ‘키 플레이어’ 역할을 한 선수. 초등학교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꼽히는 박군은 우승의 기쁨보다 일본 선수들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며 ‘공 빼앗기’ 게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을 더 잊지 못한다.

“일본팀을 이겼을 때요?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없지 않은가요? 경기할 때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끝나고 나선 친한 친구들처럼 재미있게 놀았어요. 월드컵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이겼을 때도 그 친구들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매우 기쁘더라고요.”

김감독 같은 지도자들이 늘어나면서 축구선수들 사이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신곡초교 선수들은 절대로 수업에 빠지지 않고, 학과 성적도 중상위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훈련시간도 방과후인 오후 3시30분부터 2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신곡초교가 최근 거둔 성적을 보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축구에만 매달리는 스파르타식 교육이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축구를 사랑하는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겠다며 만든 축구교실의 열기도 대단하다. 90년 문을 연 차범근 축구교실을 비롯해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축구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즐기는 축구’ ‘생각하는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축구교실의 모토다.

6월12일 양천구 어린이축구교실의 수업이 열린 안양천변의 축구장. 축구교실 회원들은 월 3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매주 2회씩 축구를 배운다. 이곳에선 전술훈련이 아예 없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공을 갖고 뛰놀며 자연스럽게 공과 친해지고 축구기술을 몸에 익힌다. 현재 이 축구교실의 회원은 80명 정도로 실력이 좋은 5~6학년생 6명은 ‘엘리트반’에 속해 매일 운동을 한다. 엘리트반 학생들은 축구팀이 있는 중학교로 진학해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여자국가대표 출신인 축구교실 코치 박미숙씨(30)는 “축구교실은 엘리트 축구선수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생활체육의 일환으로 놀고 즐기는 축구를 가르치는 곳”이라며 “소질이 있는 선수들은 공부를 병행하면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워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여자 축구선수 미아 햄을 좋아한다는 안수진양(13·목일중 1년)은 어린이축구교실의 최고참 선수. 다부진 몸매에서 나오는 강한 슛이 일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한 축구에 푹 빠져 있는 안양은 2학기부터 여자축구부가 있는 창덕여중으로 전학해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워볼 작정이다.

“다섯 살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웠거든요. 농구, 스케이트 선수도 생각해 봤는데 축구가 가장 재미있더라고요. 99년 월드컵에서 미국을 우승으로 이끈 미아 햄처럼 한국에 우승컵을 안기고 싶어요.”

축구교실에 두 아들을 보내고 있는 정은숙씨(35·서울 양천구 목동)는 연습이 있는 날이면 늘 운동장에 나와 아이들을 지켜본다. 그는 3학년인 큰아들은 축구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좀더 지켜본 뒤 축구선수로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이나, 흙먼지가 심한 날은 안쓰럽기도 해요. 워낙 축구를 좋아하는 큰아이 때문에 덩달아 따라온 둘째도 축구광이 됐어요. 꼭 축구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어린시절 이렇게 운동장을 내달리는 것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승을 목표로 합숙훈련, 전술훈련 위주로 짜여졌던 어린이 축구교육은 이처럼 즐기며 배우는 것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생각하는 축구’를 배운 학생들이 성인이 돼 한국 축구를 빛낼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축구 꿈나무들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런 학생들이 부상 걱정 없이 뛰놀 잔디구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10여개 도시에 건설된 월드컵경기장과 축구연습장의 사후 활용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축구 관계자들은 “축구 없는 축구장은 의미가 없다. 유소년 축구발전의 요람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주간동아 341호 (p56~58)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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