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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밀리언 달러 호텔’

영상으로 만든 ‘잃어버린 천사의 시’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영상으로 만든 ‘잃어버린 천사의 시’

영상으로 만든 ‘잃어버린 천사의 시’
독일의 ‘영화시인’ 빔 벤더스. 무척이나 친근한 이름이다. 그는 1984년 ‘파리, 텍사스’라는 아름다운 로드무비로 그 방면에서 대가의 명성을 얻었다. 1987년엔 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80년대를 풍미한 그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는 ‘이 세상 끝까지’라는 영화를 통해 로드무비와 영상시를 결합하려는 야심을 드러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또한 폭력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 ‘폭력의 종말’은 일부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그의 창조적 영감이 고갈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가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쿠바 원로 음악인들의 예술과 인생을 치밀하게 담아낸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였다. 그는 자신을 기억하는 영화팬들을 다시 한번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선보인 ‘밀리언 달러 호텔’은 좀 색다른 장르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빔 벤더스라는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진다.

영상으로 만든 ‘잃어버린 천사의 시’
영화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밀리언 달러’라는 특이한 이름의 호텔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파견되어 투숙객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여나가는 것이 중심 얼개다.



사실 말이 100만 달러짜리 호텔이지 건물 외관이나 내부나 거의 철거 단계에 있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삼류 호텔이다. 이름과 실체의 부조화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영화 제목에서 우리는 모종의 암시를 받게 되고, 그런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에 깊은 호기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이 영화가 단순히 범인을 추적해 가는 스릴러물이었다면 제작자가 굳이 빔 벤더스를 감독으로 기용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부조화의 조화’의 미덕을 노렸던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장르영화인 스릴러의 지휘봉을 유럽 예술영화의 대표선수인 빔 벤더스가 잡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심각한 부조화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부조화 속에서 어떤 새로움을 추구한 것 아니었을까.

또한 이 영화에 넘쳐나는 부조화들을 살펴보자. 사건의 해결사인 FBI 요원 스키너 역이 멜 기브슨이라는 것과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엘로이즈 역이 밀라 요보비치라는 것도 조화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영상으로 만든 ‘잃어버린 천사의 시’
주로 카리스마 강한 애국자 역으로 나오는 멜 기브슨이 이번에는 다소 삐딱한 수사관으로 나온다. 오로지 진실만 추구하는 이 괴짜는 목에 깁스까지 하고 있어 행동마저 부조화스럽다. 장 르누아르 감독의 ‘위대한 환상’에서도 온몸에 깁스한 독일군 장교가 나오는데, 이는 경직성 내지 부조화를 나타내는 영화적 코드다.

‘제5원소’ ‘잔다르크’ 등에서 여성 전사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던 요보비치가 이번에는 숫기 없는 성처녀로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렇듯 개성이 다른 감독과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것 자체가 부조화의 시작이었지만,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사람 눈여겨볼 캐릭터는 영화의 실질적인 화자인 톰톰 역의 제러미 데이비스다. 호텔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정신지체아 톰톰은 영화의 명목상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스토리 전체를 꿰뚫는 위치에 있는 전능한 존재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상에서 파견된 천사가 속세의 삶을 동경하여 인간으로 하강했다면,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 지상의 하찮은 인물인 톰톰은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날림으로써 오히려 천사의 지위로 상승했다고 할까. 죽어서까지 화자로 나오는 것은 천사로 환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관습으로 볼 때 가당찮은 얘기지만, 빔 벤더스의 영상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듯 공간 설정의 부조화, 스토리 전개의 부조화, 캐릭터의 부조화 등이 우리가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 감지할 수 있는 외관상의 특질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그 특유의 영상감각으로 이 모두를 아울러 일종의 ‘LA 천사의 시’를, 어쩌면 ‘잃어버린 천사(Lost Angel)의 시’를 창조해 냈는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337호 (p86~87)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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