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2002.06.06

“한국, 16강은 무난하다”

해외 축구 전문가들 긍정적 진단 … “홈 이점에 체력·골 결정력 크게 향상”

  • <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입력2004-10-08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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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16강은 무난하다”
    한국 대표팀의 상승세가 무섭다. 지난 3월 스페인 전지훈련 이후 7게임째 무패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4월20일 코스타리카를 2대 0으로 시원하게 물리친 대표팀은 5월16일 스코틀랜드를 맞아 4대 1의 대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더욱이 5월21일 베컴과 제라드를 제외한 베스트 멤버가 총 출동한 잉글랜드를 맞아 후반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1대 1의 무승부를 엮어내 월드컵 사상 첫 승과 16강 진출의 청신호를 올렸다. 게다가 프랑스전에서의 선전은 ‘혹시 8강까지도 …’ 하는 기대감을 부추겼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는 과연 세계 축구와 실력을 겨룰 만큼 성장했는가. 한국 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국내 축구 전문가들보다 해외 축구 전문기자나 분석가들의 의견을 통해 객관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지켜봐 온 각국 기자들은 한국의 ‘월드컵 징크스’를 알고 있는 듯 16강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가능하다는 쪽에 많은 표를 던지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전과 프랑스전을 통해 태극 전사들이 16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입증됐다는 견해를 내보였다.

    영국 가디언지에서 6년간 축구를 전문으로 담당해 온 워커 기자는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관전한 후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점쳤다.



    “한국, 16강은 무난하다”
    워커 기자는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잉글랜드전 전반과 같은 플레이를 한다면 16강 진출은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후반전에 보여준 무서운 집중력은 인상적이었다. 포지션별로 선수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 반대로 상대 수비의 간격을 벌리면서 침투해 들어가는 공격 동선은 정말 멋진 플레이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수비수들이 조금만 덜 긴장한다면 유연한 수비 조직력이 나올 것”이라며 “시종일관 상대 수비라인을 파고드는 미드필더들의 자신감 있는 플레이가 한국팀의 최대 강점”이라고 밝혔다.

    한국팀과 직접 경기를 펼쳤던 잉글랜드 대표팀의 중앙 수비수 페르디난드도 “한국 선수들의 강인함에 놀랐다. 특히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며 “한국은 2라운드에 진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기를 마친 뒤 잉글랜드 대표팀의 에릭손 감독이 “한국은 상당히 공격적인 경기를 했으며 볼을 빼앗는 기술이나 파워가 대단했다”며 “홈 경기 이점까지 갖고 있으므로 한국의 16강 진출은 희망적”이라고 밝힌 것과 궤를 같이한다.

    프랑스 레퀴프지의 한국 대표팀 담당 프랭크 라무아 기자도 “한국은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 팀”이라며 “개인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70% 이상으로 진단한다”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 최대 스포츠지 중 하나인 치우보의 피오청찬 기자는 지난 시드니올림픽 이후 한국 대표팀을 계속 취재한 한국통. 그는 “미드필더의 조직력과 그를 둘러싼 수비력이 상당히 좋아졌다”며 “물론 골 결정력이 크게 높아지지 않아 불안한 구석은 있지만 한국의 16강 진출은 이미 가시화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5월 A매치를 통해 보여준 한국 대표팀의 체력적인 우위는 중국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며 “최근 부진한 성적으로 16강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점쳐지는 중국 대표팀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밝혔다.

    피오청찬 기자는 “중국은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나오기 때문에 기적적으로 예상 외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은 실력으로 16강 자력 진출이 가능해질 정도로 전력이 급상승했다”고 전했다.

    일본 전문가들의 반응 역시 희망적이다. 일본 산케이스포츠에서 해외 축구를 6년간 담당했던 시다 다케시 기자는 일본보다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홍명보의 재영입으로 수비가 안정된 한국 대표팀은 공격력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부분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평가하고 “최근 급격한 하향세에 놓인 일본대표팀보다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더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이 포함된 D조 조별 리그에 대한 예상평가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현재 전력은 포르투갈을 제외하고 폴란드와 미국을 자력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양 발목을 모두 다친 이천수의 상태에 우려를 표시하며 “부상 선수의 관리와 예방이 가장 큰 변수”라고 지적했다.

    재일동포로서 수년간 한국 축구를 취재해 온 신무광씨 역시 유럽 원정 실패 이후 주춤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이 더 희망적이라는 의견을 내보였다. 신씨는 “대한축구협회와 히딩크 감독이 계획표를 잘 짰기 때문에 한국은 그 덕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시 말해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큰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16강은 무난하다”
    신씨는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이후 한국 대표팀의 미드필드 운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수비에서 한 번에 공격으로 넘겨주는 단순한 공격을 펼쳤지만, 이제는 윙백이 공간을 침투하고 플레이메이커가 스루패스를 연결하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세계 수준의 팀과 싸울 때 중앙보다는 사이드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송종국과 이영표 같은 선수가 중요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한국의 16강 명암이 갈릴 첫 경기 상대인 폴란드 대표팀의 예지 엥겔 감독까지도 “한국 대표팀이 히딩크 감독의 조련을 받으면서 매우 빨리 성장했다”며 “한국과 폴란드가 같이 16강을 통과해 준결승전쯤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던진 바 있다.

    이처럼 외신기자들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특히 한국 축구를 그동안 주시해 왔고 경기를 직접 보았던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라이벌 국가의 축구 전문가들은 달라진 한국 축구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물론 4년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면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한국 대표팀의 전력적 한계가 갑자기 모두 극복될 리는 없다. 로이터통신 통신원 겸 코리아타임스 축구 전문기자인 아일랜드 출신의 오은 스위니 기자는 “한국 선수들이 월드컵 본선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전제해도 16강 진출 가능성은 절반 정도”라며 “자만하거나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 있는 것도 일을 그르치기 쉽다”고 말한다.

    스위니 기자는 “한국은 전술적인 소화력이나 조직력, 자신감, 체력 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홈 이점을 살리고 체력적 강점을 꾸준히 이어가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대부분의 국외 전문가들은 한국 대표팀이 파워 프로그램을 통해 놀라운 체력적 향상을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 슈팅이나 센터링, 세트플레이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강팀을 상대로 선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골 결정력이다. 단순히 지지 않는 팀에 머물러서는 16강에 진출하기 어렵다. 조별 예선에서 1승조차 기록하지 못하고 3무에 머무를 때 자력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는 것이 아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스위니 기자도 이런 측면을 특히 강조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게임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특정 선수들의 골 결정력이 문제”라며 “폴란드는 최근 부진한 플레이를 보이고 있지만 골 결정력이 살아 있는 한 언제나 무서운 존재”라고 전했다.

    최근 한국 대표팀은 안정환이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하며 스코틀랜드전에서 연속골을 넣고 차두리 이천수 최태욱 등 2선 공격수들의 득점력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등 다소 안정돼 가고 있다. 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도 16강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과 축구협회는 또 홈 구장의 이점을 살려 잔디를 짧게 깎고 그라운드를 축축하게 적시는 등 외부 환경을 태극전사에게 유리하도록 하고 있다. 즉 패싱 타임이 늦고 강도가 약한 한국팀에게 짧게 깎은 잔디와 젖은 그라운드는 패싱을 빠르게 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는 한국의 달라진 모습을 통해 16강 진출에 대해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펴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5월24일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16강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또한 “한국 대표팀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대세는 한국이 이미 16강에 올라가 있는 듯한 분위기다. 정말 16강에 올라간다면 이런 성급함도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민적 기대치가 높고 내외신의 높은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그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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