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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쿠데타는 미국 시나리오?

反차베스 세력에 막후 지원설 모락모락… 석유 확보 위한 속셈 ‘지적’

  •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베네수엘라 쿠데타는 미국 시나리오?

중남미는 미국의 영원한 뒤뜰인가. 지난날 미국 역대 정권은 중남미 군부세력을 지원해 군사독재가 가능하도록 뒷받침해 왔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전복마저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공산주의자들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독재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에서다.

‘2일 천하’로 끝난 베네수엘라 쿠데타에 부시 행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근 중동사태에서 비롯된, 이란-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움직임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만큼 부시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물이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과 아프간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비판해 왔고,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미국이 ‘불량국가’로 선언한 리비아 이란 이라크와도 가깝게 지내왔다. 부시 정권으로선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때문에 지난 몇 개월 동안 부시 정권의 고위 관리들이 베네수엘라의 일부 불만세력과 여러 차례 은밀히 만나 ‘차베스 제거’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식은 그리 놀랍지 않다. 미 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는 쿠데타가 일어나기 두 달 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주재 미 대사관 당국자들에게 쿠데타 주동자들이 그들의 쿠데타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차베스, 부시 정권엔 눈엣가시



미 CIA가 개입했다는 ‘정황 증거’를 놓고도 말이 많다. 부시 정권 관계자들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입을 씻고 돌아섰다. “우리는 불만을 토로하러 온 자들에게 윙크조차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래도 일부 고위 관리들의 변명에선 개입 흔적이 드러난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쿠데타 음모자들과 접촉한 미 고위 관리들은 “우리는 ‘그 친구(차베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비공식적이고 은근한 신호를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 녀석을 넘어뜨리는 것을 돕겠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랬을까. 지금 중남미에선 부시 정권이 베네수엘라 쿠데타 음모를 묵인했고, 더 나아가 부추겼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날 중남미의 역사적 경험에 바탕해서다.

부시 행정부는 쿠데타 직후 “차베스가 국민의 평화적 시위를 탄압했다”(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면서 쿠데타 성공 축하 메시지를 내보냈다. 그러나 쿠데타 실패가 분명해진 지금, 미국은 크게 실망하는 모습이다.

허탈에 빠진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쿠데타 실패 뒤 “이제 차베스를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느냐”는 한 미국 기자의 질문에 가시 돋친 답변을 했다. “차베스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합법성이란 단순히 다수결에 의해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이 발언은 미국에 고분고분해야 ‘합법성’이 갖춰진다는 논리일까.

차베스 복귀의 원동력은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와 차베스에 대한 군부의 충성이다. 하지만 미국은 차베스를 ‘선동형 정치가’로 깎아내려 왔다. 차베스는 재임 3년간 서민생활 안정에 주력, 실업률을 18%에서 13%로 줄였다. 교육 기회도 넓혀 100만명의 어린이가 이 혜택을 받았다.

쿠데타 주도 세력의 지지기반이 미국과 상공인연합회(회장 페드로 카르모나) 등을 주축으로 한 베네수엘라의 백인 부유층이었다면, 쿠데타 뒤 카리브해의 외딴 섬에 갇혀 있던 차베스를 오뚝이처럼 일으킨 세력은 바로 빈민층이다. 이들이 거리로 나서자 그동안 눈치보던 군부는 차베스에 대한 충성 쪽으로 기울었다.

중남미 역사는 미국 개입의 역사다. 미국은 19세기 멕시코와의 잇단 전쟁에서 지금의 텍사스 서쪽 광대한 땅을 차지했다. 19세기 말엔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쿠바를 식민지로 삼았다. 1823년에 나온 제임스 먼로 대통령의 먼로 선언은 흔히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밝힌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내용적으론 “중남미는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으니 유럽 열강들은 더 이상 넘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공격적 선언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초강대국 반열에 오른 20세기 후반은 어떤가. 1973년 칠레 쿠데타에 깊숙이 개입, 남미 최초로 선거혁명을 통해 뽑힌 사회주의 아옌데 정권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렸다. 그 뒤로도 남미에서 수많은 실종자를 낳은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군부독재를 비호한 것이 바로 미국이다. 중미에서는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등이 CIA가 개입한 대표적인 나라들이다(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살바도르’는 미국의 개입이 중남미 사태에 결정적 변수임을 보여준다). 또한 페루의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92년 친위 쿠데타로 1인 권력을 강화할 때 그를 지지한 것도 미국이다.

그렇다면 중남미 쿠데타 개입과 지원으로 미국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미국 투자 자본의 안정적 운영과 자원 확보다. 90년대 페루는 단적인 예.

80년대만 해도 페루는 가르시아가 이끈 좌파 정권이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미국 레이건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빚었다. 그러나 90년 일본인 이민자 출신인 후지모리가 집권한 뒤 모든 것이 바뀌었다. 후지모리는 페루 경제의 문호를 활짝 열어 미국 자본이 밀고 들어올 길을 열어주었다. 개방경제, 자유시장 논리를 축으로 한 글로벌리즘(globalism) 이데올로기 아래 후진국의 주요 산업을 차지한 90년대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에 후지모리는 맞장구친 셈이다. 그 결과 전기, 전화, 광산 등 페루의 기간산업은 미국과 스페인 등이 투자한 다국적기업의 손으로 넘어갔다. 2000년 여름 필자가 후지모리의 3선 연임 시비를 둘러싼 정치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페루에 갔을 당시, 그곳 지식인들은 매달 비싼 전기료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후지모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쯤 되면 차베스 정권과 부시 정권 사이의 불편한 관계와 실패한 쿠데타의 배경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4위의 산유국이다. 하루 원유 생산량이 256만 배럴로 OPEC 회원국 중 사우디아라비아(712만 배럴), 이란(331만 배럴)에 이어 3위(이라크가 248만 배럴로 4위)다. 최근 중동사태가 악화되면서 이란은 석유 감산과 수출 규제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이란의 석유 무기화 주장에 질세라 OPEC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실제 감산에 나섰다. 만일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이에 동의하고 나선다면, OPEC 회원국 중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빼고) 2∼4위국이 미국 경제에 칼을 들이대는 셈이 된다.

베네수엘라의 쿠데타는 이런 미묘한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일 쿠데타’가 미국의 중남미 정책과 관련된 것은 접어둔다 해도, 그 피해는 지구촌을 돌고 돌아 한반도에까지 미치고 있다. 쿠데타 실패 뒤 상승세로 돌아선 국제 원유가가 이를 대변한다.



주간동아 2002.05.03 332호 (p46~47)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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