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0

2002.04.18

“암도 이겼는데 책 쓰는 일 정도야…”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0-29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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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도 이겼는데 책 쓰는 일 정도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암의 발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점차 암에 대처하는 의학 수준이 높아지고 생존율도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암은 전쟁과 같은 ‘무시무시한 적’이다.

    단국대 박무성 명예교수(79·사학과)도 그랬다. 단국대 부총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한창 서양의 20세기에 관한 역사서를 저술하고 있던 1992년, 청천벽력같이 위암이 찾아왔다. 2기였다. 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장이 유착되었다.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끝에 재수술이 이어졌다. 65kg이던 몸무게는 47kg까지 내려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모은 책을 모두 단국대에 기증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박교수는 암을 이겨냈다. 단순히 암을 이겨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발병 전부터 집필하던 책 ‘격동의 서양 20세기사’(한울 펴냄)를 탈고해 출판까지 했다. 800쪽짜리, 200자 원고지로 5000장 이상 분량의 책이다. 그는 이 많은 원고를 일일이 원고지에 직접 썼다.

    “서양의 20세기 100년간은 그 전까지의 6000년보다도 더 많은 격변이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양의 강국들과 동구권, 주변국가 등이 이 격동의 한 세기를 어떻게 대처했는지가 이 책의 주제입니다.”

    자택에서 만난 박무성 교수는 험한 병마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매일 산책하고 채식과 현미밥을 먹으며 절제된 생활을 했습니다. 암 환자에게는 솔밭의 공기가 좋다고 해서 3년 동안 남한산성 솔밭을 다녔습니다. 3년간의 투병 끝에 의사로부터 ‘2시간 집필, 2시간 휴식’의 규칙을 지킨다면 다시 책을 써도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수술 후 5년이 지나자 의사가 완치되었다고 말하더군요.”



    ‘격동의 서양 20세기사’는 서양의 정치·사회사뿐만이 아니라 초현실주의나 뭉크의 회화 같은 예술, 양자론과 생명공학 등 첨단과학까지 포괄하는 방대한 자료다. 책의 말미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성 스캔들도 등장한다.

    “사실 역사적 사건은 최소 20년은 지나야 역사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99년까지 다룬 이 책을 2000년 5월에 탈고했으니 나로서도 모험이었지요. 하지만 나중에 이런 주제의 책을 쓸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건강이 유지되어 개정판을 낸다면 고칠 수도 있는 문제고요.”

    필생의 대작을 끝냈지만 박교수는 쉴 틈 없이 새로운 책의 집필에 들어갔다. 이번 책의 주제는 19세기 서양사. 늦어도 2년 안에는 집필을 마칠 계획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암을 이겨내고 방대한 저서까지 마무리한 비결이 궁금했다. 박교수는 규칙적인 생활, 채식 위주의 식습관, 적당한 운동, 가족의 도움 등을 꼽으면서 이 런 말을 남겼다.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은 할 일과 희망, 그리고 사랑할 대상이라는 서양의 격언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다 가지니까 살겠다는 의지가 생깁디다. 아무리 무서운 병도 용기와 의지를 이기지는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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