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0

2002.04.18

위기의 아라파트, 항복이냐 순교냐

이스라엘군 완전 봉쇄… 굴욕적 중재안 강요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28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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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해결사로 나섰다. 중동사태를 더 이상 팔짱 끼고 지켜보기엔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부시 독트린에 바탕해 ‘테러와의 전쟁’을 이라크로 확장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중동사태로 벽에 부딪혔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재침공에 따른 아랍권의 반발 분위기 탓이다. 세찬 국제적 비난과 아랍권의 석유 감산(減産) 움직임도 부시를 초조하게 만든 배경이다. 이렇듯 중동사태가 미국의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현실적 위기의식이 파월의 중동행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는 중동 특사 앤서니 지니를 내세워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휴전 조건을 중재안으로 내밀며, 이스라엘의 강공책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니의 중재안이란 ‘테닛 계획’(Tenet plan)에 담긴 내용이다. 미 CIA 국장 조지 테닛이 작성한 이 안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장래(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언급은 쏙 빼고 보안(security)만 강조한 것. 여기서 ‘보안’이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로선 ‘테러’겠지만, 팔레스타인측에서 보면 테러란 ‘군사 강국 이스라엘의 불법적 점령에 대한 저항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가 최근 당한 수모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편향의 협상안에 대한 그의 저항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지난해 5월 미국의 전 상원의원 조지 미첼이 작성한 ‘미첼 보고서’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 건설 중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협상안을 담고 있었다. 그런 내용이 빠진 테닛 문서를 아라파트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말 연쇄 자살폭탄 사건이 터지자, 전면 재침공 기회를 기다리던 강경파 아리엘 샤론은 군 동원 명령을 내렸다. 샤론은 그 직전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어 부시의 승낙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중동의 풍운아 아라파트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사실상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아라파트의 라말라 사무실을 완전 봉쇄, 항복을 받아내려 했다.

    숱한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녔지만 아라파트는 오뚝이처럼 우뚝 서곤 했다. 1960년대부터 무장투쟁을 벌이며 사선을 넘어 이미 팔레스타인의 신화적 존재가 된 그다. 1982년에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본부가 당시 국방장관 샤론의 지휘를 받는 이스라엘군에 포위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개입으로 튀니지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 뒤 1993년 아라파트는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민중의 뜨거운 갈채 속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스라엘 언론이나 친이스라엘 미국 언론들은 그를 두고 ‘가장 성공한 테러리스트’라고 비아냥거렸다. 최근 아라파트가 서안지구 행정 중심지 라말라에서 겪은 상황은 지난날 베이루트에서 샤론의 군대에 포위됐을 때보다 훨씬 나빴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사무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의 목숨을 넘보았다.



    파월의 출현으로 아라파트는 한 고비를 넘긴 듯하지만, 73세 동갑내기 맞수 샤론이 언제 다시 그를 코너로 몰지 알 수 없다. 샤론은 군 철수를 요구하는 유엔의 결의마저도 무시해 온 인물이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굴욕적인 항복을 하느니 ‘순교자’가 되겠다는 각오다. 그의 생존 전략은 단순 명쾌하다. 다름 아닌 ‘죽으려면 살리라’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가 샤론이 요구하는 (그리고 미국이 중재안이라고 내미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정치적 자멸을 뜻한다.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을 잡아들이고 폭탄자살을 막으라는 샤론의 요구를 아라파트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럴 뜻이 있다 해도 능력이 안 된다. 2000년 9월 시작된 인티파다(봉기)를 거치면서 아라파트는 이미 팔레스타인 강경파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그들을 치면 팔레스타인 민중 다수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오랜 투쟁 속에 생존술을 몸에 익힌 아라파트는 촛불 켠 자신의 사무실에서 버틸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에 밀린 샤론이 결국은 군을 뒤로 물릴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아라파트의 속을 샤론도 꿰뚫어보았을 법하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아라파트 수반이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앞으로 3∼4주 동안은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했었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아라파트를 겨냥한 메시지는 “그때까지 당신이 버틸 수 있겠나. 사서 고생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파월이 평화중재에 나섬으로써 아라파트의 벼랑 끝 전술은 다시 한번 그의 질긴 생존력을 드러냈다.

    9ㆍ11 테러 뒤 부시 미 대통령은 샤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것(테러)이 당신에게도 기회가 될 것이다.” 정치 감각이 부시보다 못한 샤론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통화 당시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구실이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씨를 말릴 기회가 될 것이란 점을 부시는 간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샤론은 부시가 말하는 ‘기회’가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미국이 군사원조로 제공한 F-16 전폭기와 탱크로 밀어붙이며 아라파트의 라말라 집무실을 파괴한 뒤 샤론은 미국 언론에 “우리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중”이라 말했다. 한술 더 떠 “이라크는 테러 지원국이다.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친다면 이스라엘도 거들겠다”고도 공언했다(이라크는 2000년 9월 인티파다가 시작된 뒤 올해 4월 초까지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숨진 1200명 가량의 사망자 1인당 1만 달러를 위로금으로 지급해 왔다.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1만 달러는 큰돈이다. 샤론의 눈엔 이것이 테러 지원으로 비쳤을 것이다).

    방벽(防壁) 작전이란 이름 아래 이스라엘군이 대대적 침공을 감행했을 때 부시는 샤론을 거들어주었다. 이스라엘군에 포위된 사무실에 갇힌 아라파트에게 부시는 “테러리스트들을 단속하라”고 현실성 없는 발언을 일삼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유엔 안보리의 이스라엘군 철군 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주간지 ‘타임’의 백악관 출입기자조차 미 공영방송인 NPR 라디오 대담에서 “부시의 중동정책이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특히 아랍권의 반발은 자신의 간판 상품인 부시 독트린에 기초한 ‘테러와의 전쟁’ 수행에 이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부시는 깨달아야 했다. 아라파트는 아직 미국으로선 유용한 중동 카드다. 그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할 경우, 이라크를 겨냥한 2단계 ‘테러와의 전쟁’은 아랍계의 비협조로 어려워진다. 부시가 “(혼만 내고) 아라파트를 죽이진 말라”는 부탁을 했고, “그만하면 됐다”며 파월을 보낸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샤론의 마음은 아라파트를 제거하자는 쪽이다. 그는 “20년 전 베이루트에서 (아라파트를) 죽이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아라파트를 죽이든, 나라 밖으로 내쫓든 권좌에서 몰아내고 좀더 손쉬운 인물이 팔레스타인 지도부에 들어서길 그는 바란다. 팔레스타인 후계구도를 살펴보면, 샤론의 희망대로 일이 풀려갈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다. 아라파트가 어떤 형태(순교 또는 자연사)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아라파트는 지금껏 자신의 후계자를 점찍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아라파트의 권력욕을 탓하는 분석도 있지만, 아라파트로서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후계자를 뽑을 경우 자신의 힘이 빠질 뿐더러,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정치공작에 넘어가 소모적인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샤론의 강공책으로 비롯된 위기는 파월의 현지 개입으로 한 고비 넘겼지만, 팔레스타인측이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받은 상처는 크다.

    한평생을 혁명가로 살아온 아라파트가 진정한 정치력을 보일 때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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