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0

2002.04.18

‘여군무원 의문사’ 상관 비리와 관련 있나

골프장 회원권 무단 발급 의혹 담긴 e메일 발견… 사건도 새 국면 가능성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0-28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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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군무원 의문사’ 상관 비리와 관련 있나
    2000년 8월 미국 출장길에서 의문사한 주한미군 한국인 여군무원 박춘희씨(당시 36세) 사건은 영영 미궁에 빠질 것인가, 실체를 드러낼 것인가.

    사건 직후 나온 ‘주간동아’ 보도(249호) 이후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2001년 3월) 등 여러 매체에 잇따라 보도돼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과 관련, 최근 박씨의 남편 남학호씨(42ㆍ한국화가)가 사건 당시 미 제20지원단(캠프 헨리ㆍ대구시 이천동) 복지지원센터 예산편성 담당관으로 근무했던 박씨와 20지원단 사령관 H대령(미국인)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사본을 발견해 4월2일 미군범죄수사대(CID)에 제출, 재수사를 촉구했다.

    미국 경찰은 이미 지난해 4월 박씨의 사인이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라고만 결론짓고 수사를 중단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남씨는 박씨의 흑인 상관인 M씨(미국인)가 박씨를 성희롱했다는 정황이 담긴 이메일이 저장된 디스켓을 발견, 한국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지만 지난 3월 검찰에 낸 재항고마저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각하돼 국내에선 관련수사가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문건에는 박씨의 담당 업무인 미군부대 골프장 회원권(출입증 겸용) 발급과 관련, H대령이 자신이 내린 몇몇 업무 지시에 대한 ‘보안’을 박씨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박씨 사건이 새 국면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문건은 A4용지 62장. 일부 중복된 내용을 제외하면 모두 60여통의 이메일로 대부분 98년 3∼11월 주고받은 박씨와 H대령의 것. 내용은 대부분 H대령의 특정 한국인들에 대한 골프장 회원권 발급 요구, 멤버십 등급(회원권 등급은 미군측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브론즈, 실버, 골드의 3등급으로 나뉨) 상향 조정 요구 등이 주를 이룬다. 가장 핵심적 내용은 다음 두 통의 이메일(편의상 한국어로 번역함).





    남씨는 “H대령은 골프장 회원권을 무단 발급한 혐의로 CID의 조사를 받다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를 벗은 사실이 있다”며 “아내와 H대령이 이메일을 교환한 시기는 CID의 조사가 진행되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가 진행중이던 98∼99년 아내가 수시로, H대령이 자신이 지시한 업무비리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위법 사실 관련 기록들을 업무용 PC에서 삭제하라는 명령을 했다며, 아내 자신도 수사선상에 오를까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98년 중반까지 20지원단 사령관으로 근무한 H대령은 이후 승진해 대구 소재 미 제19지원사 참모로 자리를 옮겼고, 박씨 의문사 관련 보도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미국으로 떠났다.

    남씨는 “줄곧 외면당해 온 아내의 죽음은 H대령 비리 의혹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때문에 H대령에 대한 전면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며 “대구 미군부대 골프장 한국인 회원 430여명의 명단을 관련 자료로 확보했으며, 필요한 경우 외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경찰과 미군 당국, 한국 외교부와 정치권, 검찰 등 각계에 탄원했음에도 발생 20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박씨의 죽음엔 어떤 진실이 담긴 것일까. 무능하리만치 무력한 한국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와 미군 당국의 수사 재개 여부에 한국민의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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