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富의 가치관 혼란부터 떨쳐라”

손자, 실리 가치관으로 부와 명성 모두 획득 … 상황 변화 대처 기준은 ‘이’(利)

  • < 박재희/ 중국철학박사·EBS ‘손자병법과 21세기’강의 >taoy2k@empal.com

    입력2004-10-18 15: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富의 가치관 혼란부터 떨쳐라”
    명분(義)과 실리(富)에 대해 우리가 겪는 이중적 가치관은 병법전문가 손자가 활동하던 2500년 전에도 똑같은 고민거리였다. 정의와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명분 있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철저하게 고상함을 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는 부자가 될 것인가? 이 문제가 우리의 삶에 던지는 무게만큼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철학과 토론의 주제였다.

    당시 지식인들이 이렇게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 이유는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변동 때문이었다. 오늘날 산업혁명과 정보통신 혁명에 비견될 당대의 농업혁명은 제후(諸侯)나 대부(大夫)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열심히 노력만 하면 엄청난 부를 축적할 기회를 제공했다. 다양한 기회의 결과, 주(周)나라 천자 중심의 명분세계가 붕괴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 시대로 바뀌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제까지 무명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돈을 벌고 높은 지위를 가진 유명인사가 될 수 있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孫子)만 해도 신흥 개발도상국 오(吳)나라로 가서 쿠데타에 막 성공한 합려(闔閭) 왕과 담판을 지어 29세의 나이에 오나라 최고 사령관이 됐으니 벼락출세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도 외국인(제나라 출신)으로서 새로운 군사적 비전과 식견 하나만 가지고 벤처업계의 신화를 이룩한 전형이라 하겠다.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신분과 인생을 180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던 지식인 중 대표적 인물이 공자(孔子)와 손자(孫子)였다. 특히 부(富)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 차이는 당시 사회에 대한 두 흐름을 대표했다.

    공자는 부를 명분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했다. “돈? 지위?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명분에 맞지 않는 부귀(富貴)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 내 인생의 가치는 돈이 아니다. 꽁보리밥에 물 말아먹고 팔꿈치 구부리고 자더라도 나는 그 길을 택하리라!” “내가 부자로 살려고 마음먹으면 말 모는 마부 일을 마다하랴! 그러나 나는 부자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한평생 살리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부에 대한 생각이다.



    공자는 부자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다만 부자가 되는 인생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공자의 인식 속에는 아직도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는 고대의 명분론적 사유 흔적이 남아 있다. 평생을 부귀와는 거리가 멀었던 어느 가난한 유생(儒生)의 자조 섞인 넋두리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손자는 공자에 비하면 변화하는 사회의 적응에 성공한 사람이다. 일찌감치 명분을 떨쳐버리고 실리의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사회환경에서 부와 지위를 모두 얻었다. “상황은 변하는 것이다. 그 상황의 변화에 무엇으로 대처할 것인가? 판단의 기준은 이(利)다.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지를 계산해 보고(計) 끊임없는 저울질을 통하여(制權) 나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리해야 세(勢)를 얻을 수 있다. 일단 세(勢)를 얻으면 모든 것은 용서된다.” 세상의 모든 기준은 부(利)라고 선언한 손자의 정신세계 속에는 적어도 명분과 부자라는 이중적 가치관의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갈등이 없는 만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 긍정적인 세계관은 여유이며 승리하는 인생의 서론이다.

    손자의 사유방식에 따르면 부에 대한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떨쳐버려야 한다. 모든 삶의 행동은 부(富)를 지향하면서 정신만 의(義)를 부르짖는 이중적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의 몸과 정신과 사회가 일치되는 완벽한 나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