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성업중 학원가는 ‘탈세 안전지대’

매출 축소·카드 거부 예사 … 7억원 순익 내고 적자 신고하는 경우도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0-18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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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업중 학원가는 ‘탈세 안전지대’
    고액 수강료를 받는 학원 중 불성실 신고 학원의 경우 세무조사를 벌이는 등 엄정 대처할 계획이다.”(국세청 소득세과 1월14일)

    2000년 4월 과외 자유화 이후 성업중인 입시학원과 고액 영어학원의 탈세 문제가 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매년 이맘때면 변호사, 의사, 연예인 등과 함께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 명단에 약방 감초처럼 끼이는 게 바로 이들 학원. 지난 몇 년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학원은 단 한 곳도 없지만 국세청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런 ‘엄포용’ 자료를 배포했다.



    카드결제 한다면 “단말기 고장”

    성업중 학원가는 ‘탈세 안전지대’
    교육 당국은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자신한다. 국세청 발표가 있기 얼마 전인 1월9일 부동산시장 안정화 관련 정부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지난 2년 새 천정부지로 아파트 가격을 올린 주 요인의 하나로 고액 입시학원의 특정 지역 편중 현상이 지목됐기 때문. 각 부처는 국세청에 탈세 학원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교육 당국도 학원 탈세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국세청 발표 이틀 후인 1월16일 각 지역 교육청과 함께 대책회의를 열고, 학원의 수강료 카드 결제를 의무화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학원가에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책임을 애꿎은 학원에 미루고 있다는 원성이 벌써부터 대단하다. “대부분 학원이 카드 가맹점 신청을 하고 단말기를 설치했는데 무슨 말이냐. 탈세 운운하기 전에 터무니없는 세율부터 낮추라”며 집단 반발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는 것. 과연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일단 분명한 점은 교육 당국과 국세청의 엄포가 애초부터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카드 거부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의 탈세 행각은 당국의 세무조사와 단속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당국의 카드 결제 의무화 발표를 믿었다가 자식들에게 면박당하는 부모들도 있다.

    S증권 지점장인 김모씨(47·서울시 강동구 천호동)도 그런 경우다.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아들을 둔 그는 “말밖에 없는 이런 대책은 백 번 나와야 소용없다”고 잘라 말한다. 최근 학원에서 그가 당한 일련의 소동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괜한 일을 한 것 같아 자식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입시학원 수강료는 연말정산 공제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카드공제 혜택이나 받아볼까 해서 올해부터는 두 아이 합쳐 월 80만원에 달하는 학원비를 카드로 결제하려 했죠. 그런데 등록을 못하고 왔더군요. 학원에서 카드는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들을 겨우 설득해 봄방학이 시작된 지난 2월20일 다시 집 근처 단과학원에 보냈죠. 이번에는 제가 그 전날 학원에 전화해 카드를 받는다는 확인까지 했는데 막상 아들이 가니까 또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화가 나 직접 학원을 찾아갔죠. 그런데 직원이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카드 단말기가 고장났는데 수리기간이 오래 걸려 그렇다는 겁니다. 계속 따지니까 다른 학원 알아보라는 거예요, 글쎄.”

    김씨의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은 강동구 A학원과 B학원. 강동구에서는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 대형 학원들이다. 2월21일 오후 단말기가 고장났다던 B학원을 찾아가 관계자에게 취재 의도를 밝히고 카드 결제가 되느냐고 물으니 “물론 된다”고 답변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고장이 나 사용하지 못하다 오늘 아침에야 수리가 끝났다. 평소에는 잘 되던 단말기가 등록기간에만 말썽을 부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김씨의 경우를 예로 들며 “카드로 결제한 수강생이 정말 있느냐”고 묻자, 학원 관계자는 “우리는 매출을 정확히 관리하기 때문에 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탈세할 일이 없다. 원하면 수강생 숫자를 공개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학원 관계자가 공개한 이 학원의 한 달 평균 수강생은 500여명. 학원 수입은 수강생 수험료가 전부이기 때문에 수강생 수에다 수험료만 곱하면 곧 그 학원의 매출액이 된다. 교재비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취재 결과 학원 관계자의 말은 곧 거짓으로 밝혀졌다. 학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만 1200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 이곳 수강생들에 따르면 이 학원은 25명 정원의 콤비 셔틀버스 8대가 노선과 강의시간에 맞춰 모두 48회 운영되는데, 자리가 없어 서서 오는 학생도 부지기수라는 것. 정원만 계산해도 1200명(25×48) 이상의 학생이 셔틀버스를 이용한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셔틀버스를 타지 못해 일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학생(셔틀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의 30% 정도)을 더하면 이 학원의 수강생은 적게 잡아도 1500명이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강생당 한 달 평균 수강료가 15만~20만원 선이므로 이 학원은 1000명에 해당하는 매달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이상의 매출을 누락할 개연성이 있는 셈. 셔틀버스를 서서 타고 오는 학생까지 합하면 탈루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학원 관계자는 “새 학기를 준비하려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벌어진 일시적 현상이다. 건물 임대료, 강사료 등 매입액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남는 돈도 별로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학원들의 이런 탈세 행각은 어느 한 곳, 특정 시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강서구 C영어학원의 2000년 내부 자료를 보면 이 학원의 세무서 매출 신고액이 실제 매출액의 26%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료에 나타난 2000년 이 학원의 매출 신고액은 2억8396만4000원. 실제 매출액은 월 평균 9100만원씩 연 11억1000만원, 누락 신고액이 8억1763만6000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학원은 지난 3년 사이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건물 임대료와 강사료, 셔틀버스 대여료 등 이 학원이 한 해 동안 쓴 비용, 즉 매입액이 3억9000만원으로 매출 신고액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매년 7억2000만여원의 순이익을 올리면서 1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세무서를 속인 것. 당연히 이 학원은 지난해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내부 자료를 ‘주간동아’에 넘겨준 제보자는 “매출 규모는 매일 현장에서 조작된다. 장부를 보지 않고 셔틀버스 수만 봐도 매출 규모를 대강 알 수 있는데 세무 당국이 무엇을 하는지 한심하다. 지난해 자료는 아직 정리가 안 돼 공개를 못하지만 탈세 규모는 비슷하며, 이런 현상은 강남과 강서 지역 유명 영어학원이 모두 똑같다”고 주장했다.

    물론 학원장이나 학원 이사장들도 할 말은 많다. 서울시 S학원의 김모 이사장은 “제대로 세금을 내고도 수익이 난다면 왜 탈세를 하겠는가. 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춰주고 순이익의 30%에 이르는 소득세와 법인세 비율을 적정선으로 낮춰주면서 매출 양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학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너무 강하게 하면 학원이 음성 과외시장으로 잠수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변했다.

    20여년의 강사 경험을 가진 강남 C학원 원장 왕모씨는 “현재 중·대형 학원들이 탈세를 할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 중 하나가 학생들을 수백명씩 끌고 다니는 대강사 또는 유명 강사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무등록으로 강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학원장은 수강생 유치를 위해 대강사와 유명 강사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교육청에 등록하지 않은 무등록자여서 학원 경비(매입액)에 삽입할 수 없으므로 그 금액만큼 매출을 줄이지 않으면 대강사가 내야 할 고액의 소득세를 자신들이 물어야 한다는 것.

    성업중 학원가는 ‘탈세 안전지대’
    실제 강남지역 D학원은 지난해 7월부터 아예 자체 운영을 포기하고 대강사와 유명 강사들에게 강의실당 임대료를 받아 운영하고 있다. 학원 간판만 달았지 불법 과외를 주선하고 임대료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따라서 이 학원이 세무서에 신고하는 매출액과 매입액은 100% 조작된 것이다. 이 학원 원장 이모씨는 자신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대강사들은 한 달 수입이 1억원이 넘는 사람이 많지만 세금을 내는 사람은 없다. 결국 학원들은 그들의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대신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대강사가 없으면 학원이 망할 게 뻔하므로 탈세 외에 방법이 없다.”

    이씨는 “국세청이 주류 유통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는 도입하면서, 한 해 10조원이 넘는 사교육 시장에 직불카드제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탈세를 근절하겠다는 관계 당국의 ‘나 몰라라’ 하는 태도다. 학원에 카드 사용을 강제하겠다던 서울시 교육청은 “말만 그렇게 했지 우리가 무엇을 아느냐”는 반응이다. 평생교육체육과의 한 관계자는 “학원의 허가와 강사 등록 외에는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국세청에 물어보라”고 책임을 국세청에 떠넘겼다.

    국세청도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 심지어 현재 서울지역 학원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과의 한 관계자는 “예년에 해오던 세무조사 외의 특별세무조사는 벌이지 않고 있으며, 그런 방침을 들은 적도 없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학원에 대한 탈세를 조사하고 있단 말인가?

    어쨌든 학원가에서는 벌써부터 탈세 액을 줄이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댔다는 학원들의 이름이 흘러 다닌다. 어느 학원은 지역구 아무개 의원에게 이야기해 탈세액을 반으로 줄였다느니, 아예 없는 일로 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다 ‘학원 게이트’마저 나오지 않겠느냐”는 학원장들의 이야기가 ‘실제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원 탈세조사에 임하는 세무 당국의 적극적이고 투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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