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2002.01.24

용서할 수 없는 ‘부패한 권력’

  • < 공지영 / 작가 >

    입력2004-11-09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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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할 수 없는 ‘부패한 권력’
    요즘 신문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무슨 무슨 게이트라는 것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줄줄이 터져나오니 게이트라는 게 정권의 정기 국정 발표회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비교적 정치에 관심이 있는 편인 나마저도 이제 게이트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어쩌면 정치인들이 일부러 극심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를 외면하고, 생각만 해도 불쾌하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왔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모임에 갔다가 조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 아줌마인 내 친구들이 드디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숲을 헤치고 나와 분노를 드러낸 것이다. 그 주인공은 윤태식. 시골에서 상경해 버스 안내양을 거쳐 홍콩으로 간 후 줄줄이 딸린 고향의 동생들을 공부시킨 전형적인 한국의 누나, 수지 김을 죽인 남편 말이다.

    친구들은 다른 사람은 잊어도 윤태식이라는 이름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마 이 사건에 아내를 죽인 남편에 대한 여성들의 공분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이 사건은 다분히 할리우드 영화적인 데가 있다. 살인자가 반공의 역군이 되어 21세기의 총아인 벤처기업인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스토리도 드라마틱하다. 여기까지라면 혹시 그런대로 봐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이렇게 변신하기까지 온갖 더러운 군상을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끌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더러움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수지 김 가족과 진실은 짓밟히고 능욕당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어안이 벙벙할 일은 윤태식이라는 사람이 일개 삼류 살인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도 은폐한 당시 안기부의 소행뿐 아니라, 그걸 알고도 그 후 수지 김씨 가족을 주기적으로 조사라는 명목으로 괴롭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들의 행실은 진실의 조작을 넘어 거의 가학 수준이다. 대체 국가 권력이-그것도 막강한 권력이-한 여자와 한 가족을 이토록 파괴해도 좋은 것이며, 권력을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 공소시효를 준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이성적이고 합법적인 판단이란 말인가.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과 정부 그리고 그들의 발표에 속은 우리의 진실은 대체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사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북한 대사관에서 발표한 “윤태식은 자진납북하러 우리에게 왔으나 우리가 돌려보냈다”는 말이 더 옳지 않은가. 그때 만일 북한 쪽 발표가 더 사실에 근접해 있다고 주장했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장세동씨가 이끄는 안기부로 끌려가 죽도록 얻어맞았을지 누가 아는가.



    기록은 죽 이어진다. 청와대, 국정원, 언론 등등 이 나라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돈 받은 일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패의 감자들이, 곧 이 나라를 망칠 감자들이 땅속에서 솟아나온다. 얼마나 더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명(明)은 암(暗)을 전제한다. 지난 세월, 고속 성장 뒤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윤태식이라는 이름은 총체적으로 암시한다. 도시화, 살인, 야망, 정경 유착, 폭력, 음모, 부패, 뇌물 그 모든 것을 그의 이름 석 자가 넉넉히 담아낸다. 그는 우리 시대에 암재된 서러운 마성(魔性)의 다른 이름이다. 내 소설적 상상력도 그 이름 앞에선 초라하고 한가하다.

    과연 우리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으리. 그는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부터 푸른 기와를 얹은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전체에 어김없이 번져가는 썩어 문드러진 냄새의 표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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