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2001.12.27

소설과 역사교양서 ‘경계 허물기’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2-14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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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과 역사교양서 ‘경계 허물기’
    ‘역사, 위험한 거울’과 ‘독도평전’은 제목만으로 장르를 파악하기 힘든 작품이다. 그나마 ‘독도평전’ 앞에 ‘다큐멘터리와 소설을 넘어선 역사 읽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이해를 돕지만, 저자 김탁환 교수(건양대 문학영상정보학부)는 국문학자요 소설가 아닌가. 김교수는 “이 책이 소설인가 역사교양서인가”라는 물음에 “소설은 역사교양서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되받았다. 그냥 독도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달라는 주문과 함께.

    쉽게 읽는 인문교양서를 예상하며 펼쳐든 ‘역사, 위험한 거울’도 도입부부터 독자를 당황케 한다. 서른아홉 살의 대학강사 D와 스물여섯 살의 대학원생 A가 펼치는 아슬아슬한 사랑이야기는 분명 허구다. 그러나 다음 장에 등장하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12세기 실존인물로 이 부분은 사실이다. 서양사상사와 역사이론을 전공한 김현식 교수(한양대 사학)는 역사와 문학의 경계, 진실과 허구의 경계, 이론과 실천의 경계,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다. 저자에게 “이 책이 소설인가 역사교양서인가”라고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역사교양서는 문학일 수 없는가”라고 반격을 펼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장르를 따지지 말고 ‘앨리스’가 되어 두 저자가 만들어놓은 ‘이상한 나라’를 여행해 보자.

    460만년 전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바위섬 독도. ‘독도평전’은 한 인물이 아닌 한 섬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지금의 경북 청도 부근에서 신라를 위협했던 작은 나라 이서국이 우르뫼섬(지금의 울릉도)으로 쫓겨가 세운 것이 우산국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동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돌섬이 독도였다.

    11세기 여진의 침략, 왜구의 출몰, 세종 치하에서 펼친 공도(空島)정책으로 반백년 가량 인적 없는 섬이 되는 등 치욕의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어부 안용복이 대마도주와 담판을 벌여 다케시마가 분명 조선 땅임을 확인하면서 울릉도와 독도의 위상은 다시 높아진다. 그러나 17세기부터 떠돌던 다케시마의 망령은 21세기에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것이 불행한 한 섬의 일생이다.

    이 책은 독도의 460만년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우산국을 세운 이서국 사람들의 긴박한 도주장면이나, 고려의 외면 속에 홀로 여진과 맞선 우산국 왕자 해청의 장엄한 최후는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부분이다. 그것은 역사소설만의 매력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의 남은 생을 축복하기 위해,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섬은 수백만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인간은 잠시 흔적만 남기고 떠날 뿐. 저자가 이사부나 안용복의 평전이 아닌 독도평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과 역사교양서 ‘경계 허물기’
    독도 여행을 끝내고 이번에는 ‘역사, 위험한 거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서 거울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밀의 통로다. 소설은 허구 속의 D와 A, 12세기 초 프랑스 땅에서 실존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커플의 사랑을 교차시키면서 시작된다.

    학문과 외모, 인격과 명망을 모두 갖춘 서른아홉의 신학자 아벨라르. 엘로이즈는 이 잘난 사내를 무너뜨린 열여섯 살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비밀스러운 사랑에 분노하는 풀베르(엘로이즈의 삼촌). 풀베르는 복수를 위해 아벨라르를 거세한다. 좌절에 빠진 두 사람은 각각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여생을 마친다. 중세를 뒤흔든 이 사랑이야기는 수십 차례 소설로, 영화로 만들어져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D와 A에게는 의미가 있다. 역사학자 D는 제자 A와 사랑에 빠지고 어느새 사랑은 집착으로 바뀐다. 유학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A와 이것을 저지하는 D의 갈등. 이들은 의식 속에서 아벨라르, 엘로이즈 커플과 재회한다.

    하필이면 왜 역사가인가라는 물음도 나올 법하다. 역사가란 금지된 사랑에 몸을 던지는 중세의 연인들처럼 애당초 불가능한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하려는 무모한 사람이다. 무모한 사람이 벌이는 이 무모한 사랑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지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저자는 소설 속의 사랑과 역사적인 사랑을 번갈아 들려주며 사이사이에 D의 입을 빌려 역사학 해석과 방법론을 강의한다. 강의는 이 책의 3장 ‘역사 오늘을 적시는 지난 겨울에 내린 눈’과 4장 ‘해석 아벨라르 그리고 또 다른 아벨라르’에 집중된다.

    이쯤 해서 픽션 속에 감춰놓은 진짜 ‘역사’를 발견하고 독자는 속았음을 알 것이다. 유쾌한 역사이론 교과서다.

    독도평전/ 김탁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72쪽/ 8000원

    역사, 위험한 거울/ 김현식 지음/ 푸른역사 펴냄/ 196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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