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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재건’ 전쟁보다 더 어렵네

전란에 찌들고 부족간 통합 어려움 … 과도정부 구성 등 국제사회 책임 막중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아프간 재건’ 전쟁보다 더 어렵네

‘아프간 재건’ 전쟁보다 더 어렵네
20년 전란에 시달려온 아프간이 전환점에 접어들었다.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군이 물러나면서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후반전으로 들어섰다. 탈레반 퇴각 이후를 읽는 장기적 전망의 키워드는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이다.

탈레반 체제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 대접받지 못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전란으로 피폐해진 아프간 사회를 재구축하는 일이다. 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아프간 국가 건설, 그것은 국제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즈음 국제사회는 다종족 국가인 아프간의 새 권력체계를 짜느라 분주하다. 전란에 찌들고 반목 속에 지내온 아프간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간단치 않은 작업이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들인 비용(군사비)과 9·11 테러참사의 희생을 내세우며, 탈레반-빈 라덴 체제를 무너뜨리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또한 정치공작으로 북부동맹에 맞설 남부동맹을 추진중이다. 부시의 아프간 전쟁 후반부를 전망해 본다.

탈레반군은 어이없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난 94년부터 7년 동안 아프간 국토의 95%를 차지하기까지 숱한 전투를 치러온 탈레반군이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점령지의 절반 이상을 내주고 말았다. 북부동맹군은 카불 점령을 자신들의 분투에 따른 승리로 여기고 싶겠지만, 10·7 첫 공습 뒤 한 달 동안 이어진 영-미군의 파상적이고 엄청난 폭탄 투하로 탈레반군을 공황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은 게 승패를 가른 결정적 변수다. 지난 한 달 동안 아프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공습테러 전술’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무자비한 융단폭격이 잇따랐다. 가로세로 500m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바다로 만드는 데이지 커터(Daisy Cutter) 폭탄, 집속탄(cluster bomb) 공습에 대해 국제 인권단체들은 “전쟁의 일반적인 규범을 벗어나는 무차별 살상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탈레반군은 더 이상 병력 손실이 나기 전에 전술적으로 군을 뒤로 물린 것으로 보인다. 남부 칸다하르 근처의 산악동굴 지역으로 물러나 80년대 소련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폈던 것처럼 장기적으로 국면 전환을 노린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와 지금은 처지가 너무나 달라졌다. CIA(중앙정보국)를 통한 미국의 군사 원조도, 파키스탄 군부의 측면 지원도 없거니와, 오히려 창끝을 자신들에게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카불 함락으로 잔칫집 분위기에서 백악관은 아프간 전쟁 후반전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생각중이다. 후반전 초점은 물론 탈레반 지도부와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알 카에다 조직의 섬멸이다.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다. 그로서는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몰고 올 부작용(인명 피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아프간은 이라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는 나토 회원국 중심의 다국적군 파견은 부시 정권의 입장에선 대규모 미 지상군 파병안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여길 것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나토 회원국들은 적게는 2000명에서(프랑스) 많게는 4000명까지(독일, 영국) 아프간전에 병력을 파견할 것을 약속했다.



아프간전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변수는 그 속을 알기 어려운 북부동맹군이다. 앞으로 벌어질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공방전에서 탈레반군을 잘 처리해 줄지 부시 정권으로선 그 부분이 불확실하다. 북부동맹군이 지금처럼 영`-`미군 공습에 의지해 탈레반군을 밀어붙인다면, 대규모 군 투입이나 다국적군 카드는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아프간 평화를 담보하려면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목에 대해선 요르단 등 몇몇 아랍권 국가들이 미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미국의 속셈은 아프간에서 모양 좋게 발을 빼는 것이다. 아프간이 제2 베트남의 수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웃한 파키스탄은 미국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다국적(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아프간에 파견돼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 군대 속에 파키스탄군도 물론 들어가야 한다는 제안이다. 9·11 테러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친(親)탈레반 노선을 걷던 무샤라프 정권으로선 지금이 위기다. 파키스탄 국내의 반(反)북부동맹 정서와 아울러 휘발성 강한 반미정서 때문이다. 유엔의 깃발 아래 파키스탄군이 아프간에 진주하면, 아프간에 대한 파키스탄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무샤라프의 답답한 정치적 입지에도 얼마간 숨통이 트일 것이다.

탈레반군이 카불을 물러남에 따라 지금 국제사회는 포스트 탈레반(post-Taleban) 체제의 모양새를 둘러싼 모임을 잇따라 열고 있다. 아프간 주변 6개국과 미국, 러시아로 구성된 8개국 외무장관들의 회동(이른바‘6+2’회동)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아프간 내 다양한 종족과 정치세력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과도정부 구성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제임스 로빈스 아프간 특사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따라 방문해 아프간 과도정부 구성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아프간 재건’ 전쟁보다 더 어렵네
현재 유엔을 대표해 아프간 새 정권을 세우는 작업을 조율하는 인물이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 아프간 특사다. 지난해 9월 유엔 밀레니엄 총회에 유엔 평화유지군 개혁안을 낸 바 있는 베테랑 직업 외교관이다. 그가 잡고 있는 포스트 탈레반의 대체적인 수순은 △각 종족대표로 아프간 최고평의회 구성 △이를 바탕으로 임시정부 구성 △임시정부는 헌법 초안을 만들고 △확정된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하고 정식 정부를 구성해 아프간에 정통성을 갖춘 정권을 출범시킨다는 것이다. 유엔이 그리는 큰 그림은 다양한 종족 구성을 바탕으로 한 연립 과도정부 체제다. 지금까지의 모범답안은 아프간의 다양한 종족 구성(파슈툰족 38%, 타지크족 25%, 하자라족 18%, 우즈베크족 8%)을 반영하는 거국 연립정부다. 아직까지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탈레반이 떠난 뒤의 진공상태를 메울지 권력주체가 불투명하다.

문제는 아프간 현대사에서 국민적 합의에 따른 민주적 선거나 통합의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 89년 옛소련군이 물러난 뒤, 90년대 10년 동안 내전을 거치면서 서로간에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기에 언제라도 유혈내전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기세를 올리는 북부동맹도 서로간에 반목의 뿌리가 깊다. 96년 탈레반군이 카불에 입성해 그 뒤 지방 군벌들을 차례차례 평정하기까지 그들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 왔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한 자료에 따르면, 지금의 북부동맹을 이루는 군벌끼리의 무차별 살육전으로 민간인 2만5000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필자의 추론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아프간 전쟁 후반전에서 북부동맹군을 소모품으로 쓰다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카불 차기정권 판짜기에서 북부동맹의 목소리를 낮추기 위해(그래서 다수족인 파슈툰족의 발언권을 높여 세력 균형을 꾀하려면), 후반전 칸다하르 공방전과 산악지대 싸움에서 북부동맹군을 전면에 몰아세우는 전략이다. 지금껏 북부동맹군은 탈레반군과 전투다운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공습에 못 이긴 탈레반군이 전술적으로 후퇴한 자리를 밀고 들어가 차지했을 뿐이다. 탈레반군과의 후반전 공방전에서 북부동맹군이 많은 사상자를 낼 경우 역설적이지만, 카불 정권 판짜기가 수월해질 가능성도 있다. 로마에 망명중인 전 국왕 모하메드 자히르를 중심으로 파슈툰족의 남부동맹이 결성될 움직임도 이와 관련한 미국의 정치공작으로 보인다. 미국의 아프간 특사 제임스 로빈스는 남부동맹 결성과 관련해 자히르를 빈번히 접촉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20년 전란으로 피폐해진 아프간을 살리는 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모아져야 할 때다. 80년대 아프간 내전 당시 뒤에서 개입한 미국이나 전면에 나선 러시아 모두 아프간에 묵은 빚이 있다. 따라서 보스니아와 동티모르의 국가 건설을 돕듯, 아프간을 도와야 한다. 지금 아프간 부흥계획을 주도하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점은 우리로선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1.11.29 311호 (p52~53)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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