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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밝혀진 ‘수지 킴 사건’의 진실

‘주간동아’ 특종보도로 간첩 누명 벗어 … 남편 윤모씨 교살 여부 가장 큰 쟁점

  •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15년 만에 밝혀진 ‘수지 킴 사건’의 진실

15년 만에 밝혀진 ‘수지 킴 사건’의 진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기자는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죽어간 수지 킴(본명 김옥분) 사건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수지 킴 사건에 많은 의문을 갖고 있어 여러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난다 긴다’하는 수사관을 지휘하는 경찰청 수사국 간부들에게도 이야기했고, 수사의 달인이라고 하는 대검 중수부 연구관들에게도 이야기했다. “억울하게 죽은 여자인데 죽은 후 간첩으로 몰렸다. 한번 수사해 달라.” 그러나 듣기만 할 뿐 반응이 없었다.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싱거운 일도 없다. 그래서 말을 삼켜버리곤 했다.

기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수지 킴 사건을 ‘기사화’하는 것이었다. 사실 타사에 근무할 때 수지 킴 사건을 여러 번 기사로 썼었다. 1995년 5월 처음으로 수지 킴 사건의 전모를 알았을 때도 썼고, 1998년에도 썼지만 하나같이 불발탄이 되었다.

수지 킴 사건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주먹만한 섬’이었다. 1995년 수지 킴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기자 역시 ‘그런 사건이 있었던가’ 했다. 그 정도로 수지 킴 사건은 ‘잊힌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자가 쓴 기사는 데스크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번번이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15년 만에 밝혀진 ‘수지 킴 사건’의 진실
‘주간동아’ 2000년 1월20일자에 수지 킴 사건의 전모가 실린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기사가 실렸을 때 기자는 수지 킴 가족보다 더 큰 후련함을 느꼈다.

‘주간동아’가 수지 킴 사건을 처음 보도한 후인 1월18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팀의 남상문 PD가 찾아와 “수지 킴 사건을 다뤄보겠다”고 했다(시사주간지는 주간지에 찍힌 날짜보다 10여일 전에 발매된다). 원군을 만난 기자는 자료를 제공했다. 남PD는 사건 발생지인 홍콩과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취재하고 이어 수지 킴의 남편 윤모씨마저 인터뷰하는 개가를 올렸다. 남PD가 취재한 내용은 2월12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영되었다. 이러한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수지 킴 가족은 2000년 3월9일 윤씨를 살인 혐의로 조사해 달라는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 소장을 계기로 내사를 벌여온 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 부장)는 2001년 10월24일 윤모씨를 긴급체포하고, 26일 구속했다. 기자와 남PD는 서울지검이 윤씨에 대한 그물망을 좁혀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윤씨가 구속되기 전인 지난 9월 기자는 이 사건을 맡은 고석홍 검사에게 불려갔다. 고검사는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이 기사를 처음 취재하게 된 계기를 조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고검사는 ‘조서로 말해달라’고 하니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한 기자는 조서 작성에 동의했다. ‘기자라는 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이번만은 기자의 원칙을 버리고 국민의 처지로 돌아가보자’고 생각한 기자는 고검사 앞에 참고인으로 앉았다.

노트북을 펼쳐놓은 고검사는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물었다. 문서를 작성하는 데는 검사보다 기자가 한수 위다. 시간이 없던 기자는 고검사의 타이핑 솜씨가 답답해 노트북을 기자 앞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고검사에게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을 말하세요”라고 했다. 고검사가 질문을 하면 그것을 타이핑하고, 이어 기자의 답변을 입력했다. 기자가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에 협조한 것은 수지 킴의 가족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수지 킴의 본명은 김옥분이다. 충북 충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놀던 김옥분은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972년 서울에 올라와 시내버스 안내양을 하다 호스티스가 된 한 많은 여인이었다. 일본인 현지처까지 하며 돈을 번 김옥분은 1976년 홍콩인 양청화(梁靑華)와 위장결혼하는 방법으로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 후 옥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수지 킴’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수지 킴은 홍콩인 오민명(吳敏明)의 첩이 되어 딸을 낳는 등 여전히 고단하게 살았다. 86년 9월 홍콩에 간 윤모씨는 이러한 수지 킴을 만나 10월16일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었다. 그로부터 채 석 달이 안 돼 수지 킴은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현재 서울지검은 수지 킴의 살인범으로 윤씨를 지목하고 있다.

1987년 1월9일 북한의 윤씨 납북 미수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수지 킴 가족은 안기부 충북도지부로 끌려가 호된 조사를 받았다. 수지 킴의 하나뿐인 오빠도 조사를 받았는데 그는 당시 조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78년부터 82년 사이 나는 중동에 근로자로 나가 일했다. 안기부는 이러한 나의 경력을 찾아내 해외에서 북한과 접촉하지 않았느냐고 캐물었다. 나와 동생은 가난 때문에 해외로 나갔는데, 안기부는 외국생활을 근거로 우리 남매를 간첩으로 몰아간 것이다. 나와 동생이 간첩이라면 우리 집에서 난수표나 무전기라도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머니까지 불러들여 ‘이년 저년’ 하며 조사하던 수사관들은 동생이 시체로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자, 두 손을 싹싹 빌고 사라졌다. 우리는 정말 억울하다.”

수지 킴의 오빠는 검찰에 동생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고소장을 내놓은 후 세상을 한탄하며 술로 지샜다. 그러다 서울지검 외사부가 내사에 착수한 작년 6월 술에 취해 동네 가게 마당에서 잠을 자다 후진하는 차에 치여 사망했다. 불행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오빠가 죽기 전에 시집과의 불화로 실성한 수지 킴의 언니가 사망했다. 오랫동안 화병을 앓았던 어머니도 사망했다. 연속되는 수지 킴 집안의 죽음을 지켜보는 기자의 마음은 착찹했다. ‘가난하고 무능해서 이렇다. 이 집안에 넥타이 맨 회사원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는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기꺼이 조서를 써준 것이다.

지난 11월13일 서울지검은 윤씨를 기소하면서 수지 킴 간첩사건은 조작이라고 밝혔다. 간첩 사건의 주무 부서인 국정원은 11월15일 “1987년 당시 수지 킴 사건이 왜곡 은폐된 것은 잘못된 일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수지 킴이 간첩이 아니었음을 공식 시인했다. 이로써 수지 킴은 간첩이라는 누명은 벗게 됐지만 ‘누가 수지 킴을 죽였는가’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지검 외사부에 따르면 윤씨는 “김여인과 부부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김여인이 죽어, 놀라서 목을 졸랐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수지 킴을 죽인 사람은 윤씨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윤씨의 주장대로라면, 수지 킴이 숨진 직접 사인은 (살해할 의사 없이 벌인) 부부싸움이 된다. 살해할 의사 없이 밀거나 때려 사람이 죽었다면 폭행치사죄가 적용되는데, 폭행치사죄의 시효는 7년이다. 사건 발생 15년이 다 된 지금 윤씨가 폭행치사죄를 범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윤씨는 시효 만료로 무죄가 된다.

하지만 서울지검의 판단은 다르다. 서울지검은 윤씨가 김여인의 목을 조른 것이 직접 사인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을 목 졸라 숨지게 하려면 수분간 의지를 갖고 목을 졸라야 하므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 살인죄는 시효가 15년이므로, 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하면 윤씨는 실형을 언도받게 된다.

김여인이 숨진 직접 사인은 무엇일까. 법의학자와 감식전문가들은 감식과 부검자료가 충분하다면 이를 가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산 사람의 목을 조르면, 목이 졸린 사람은 살려고 힘을 쓰기 때문에 머리에 피가 몰린 상태에서 죽게 된다. 사체(死體)는 물기가 많은 부분부터 먼저 부패하는데, 머리로 피가 몰린 상태에서 교살(絞殺)된 사람은 얼굴 부분이 먼저 시커멓게 변하면서 부패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목을 졸랐다면 머리로 피가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얼굴 부분이 먼저 부패하지 않는다. 김여인 사체에 대한 감식 및 부검 자료를 보면 목 조른 것이 직접 사인인지 아닌지 금방 가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지검은 홍콩경찰이 작성한 부검 및 감식 자료를 입수했기 때문에 유죄를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이 있다. 한국 법원은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상태에서 한국 검찰이 작성한 자료만 증거로 인정한다. 홍콩 경찰이 작성한 자료는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때문에 윤씨 재판은 실체적 진실과 법리적 진실을 둘러싸고 검사와 윤씨 변호인 간에 심한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수년 전부터 법원은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 인정되더라도 검찰이 작성한 증거에 가필 등 손을 댄 흔적이 있으면 과감히 무죄를 선고한다(북풍사건에 관련된 정재문 의원 재판이 좋은 사례다). 오랫동안 수지 킴 사건을 추적해 온 기자는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다.



주간동아 2001.11.29 311호 (p14~16)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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