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0

2001.11.22

‘야구 천재’도 노력이 최우선

  • <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 rough@sportstoday.co.kr

    입력2004-11-23 15: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야구 천재’도 노력이 최우선
    지난 11월7일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가 발표됐다.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부문에서는 당연히 이치로(시애틀)가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2001메이저리그 화두의 대부분이 이치로였음을 생각할 때 그가 수상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1973년생인 이치로는 나고야 인근의 아이코다이 메이덴 고교(예전 우리나라 전기공고에 해당)를 졸업한 뒤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신화의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고교시절 성적을 뒤져본 사람들은 대부분 경악을 금치 못한다. 1학년 때 5할1푼5리, 2학년 때 4할4푼, 졸업반 시절에는 5할3푼의 놀라운 타격 성적이었다. 총 570타수 279안타, 평균 4할8푼9리의 타율. 우리나라로 치면 고교 최고 타율 선수에게 수여하는 이영민 타격상을 3년 연속으로 받을 수 있는 기록이다. 투수로도 활약한 이치로는 고교 3년간 17게임에 나서 방어율 1.13(87⅓이닝, 11자책점)의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이치로도 ‘꿈의 고시엔’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일본 고교야구의 명문 텐리 고교와의 90년 고시엔에서 4타수 1안타에 그치며 패배를 맛봤다. 다음해 센바츠(봄철 선발) 대회에서는 마쓰소 가쿠인 고교와의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 마운드에서는 완투패(9이닝 3실점)하며 짐 싸들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치로는 타고난 재능을 감출 수 없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었지만 야구는 9명이 하는 게임인 까닭이다. 그는 이렇듯 번번이 전국 무대서 물 먹은 채 고교 시절을 마감했다.

    오릭스에 입단한 뒤에는 곧바로 1군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40경기 남짓을 2년 정도 교체선수로 뛰다가 1군 붙박이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타격폼을 이른바 ‘진자 타법’(일명 시계추 타법·좌타자인 이치로는 일본 프로야구서 오른쪽 발을 시계추처럼 흔들며 타격 포인트를 맞춘다)으로 바꾼 다음에야 급상승, 전설의 7년 연속 타격왕 신화를 열어젖혔다.

    그러나 이치로에게는 도리어 이것이 행운 아니었을까. 젊은 시절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키워 나가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셈이니 말이다.



    비교적 무명으로 보낸 청년시절을 감안하면 이치로의 지난해 겨울을 이해할 만하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결정한 뒤 스프링캠프를 시애틀의 협조 아래 메이저리거들과 함께 뛰면서 자신의 단점을 고쳐 나갔다. 8년간 익힌 타격폼을 과감히 버리고 미국에서의 생존을 도모해 왔다. 일본에서의 7년 타격왕도 거대한 용광로 미국에서는 아무 쓸모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치로는 어느 날 갑자기 스타로 뛰어오른 선수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가 뒤따랐다. 오늘날 ‘세계의 이치로’가 된 그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전국 무대에서 같이 뛰었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그래서 늘 절치부심할 수 있게 해준 아이코다이 고교 동료들이 아닐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