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9

2001.11.15

당뇨 합병증 예방 첫걸음 ‘감기 조심’

약한 증상에도 치명적 질병으로 발전 가능성 커 … 실명·만성 신부전증도 호시탐탐

  • < 강성구/ 가톨릭의대 내분비과 교수 >

    입력2004-11-22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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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뇨 합병증 예방 첫걸음 ‘감기 조심’
    서울 H건설 자재부장 S씨(46)는 4년 전 당뇨 진단을 받았지만, 그동안 식이요법과 운동 등 철저한 몸관리로 정상에 가까운 당 수치를 유지하며 오히려 일반인보다 훨씬 더 활력 있는 나날을 보내왔다. 그런데 지난 추석 고향에 내려가 성묘하고, 옛 친구들과 밤새 회포를 푸느라 다소 무리한 뒤로 호된 감기를 만나 일주일이나 고생했다. 게다가 S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무리하게 아침운동을 강행하다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이 또한 치료가 더뎌 다소 회복된 지금도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받은 정기검진에서 당 수치가 다시 높아졌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당뇨 환자들은 여러모로 가을이 부담스럽다. 식탁도 가을 들녘처럼 풍성해질 뿐 아니라 각종 모임이 겹치면서 무리할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 이는 그만큼 혈당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또 당뇨 환자들은 대개 고혈압일 확률이 높아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감기, 심근경색, 뇌출혈 같은 질환도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이렇듯 당뇨병은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악화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뇨 환자가 감기에 걸리면 질병에 따른 스트레스가 늘어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호르몬 분비 체계에 문제가 생긴다. 이는 평소 당뇨를 조절하기 위해 복용하던 약제나 인슐린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당뇨 환자가 몸살이나 감기에 걸리면 고열과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식사를 거르는 수가 많아 꾸준히 투여하던 약제나 주사를 거르기 쉽다. 즉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인슐린이 필요한데도 오히려 투여량을 줄임으로써 당뇨를 악화시킬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당 수치가 조절되지 않으면 감기나 몸살이 잘 낫지 않을뿐더러 심하면 당뇨병성 ‘케톤산증’이나 ‘고삼투압성 혼수’ 등 무서운 당뇨병성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감기 같은 급성 질환에 걸렸을 때는 평소 사용하던 약제의 사용을 중단하지 말고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좋다.

    감기에 걸릴 경우 특히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토나 헛구역질로 식사를 할 수 없을 때는 갈증이 생기지 않도록 물이나 전해질이 포함된 이온음료를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또 일정량의 칼로리 섭취를 위해 탄산수를 마시는 것도 효과적이다. 주의할 점은 평소 사용하던 당뇨병 약제를 투여하지 않은 채 포도당 성분의 수액을 맞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증가한 혈당에 포도당까지 가중되어 고혈당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당뇨병은 3다(三多)로 표현된다. 즉 갑자기 소변량이 많아지고(다뇨), 그 결과 물을 많이 마시며(다음), 식사를 많이 하면서도(다식) 체중은 감소한다는 것. 하지만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당뇨병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당뇨 합병증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당뇨 합병증이 이런 3다의 일반적 징후 없이 서서히 진행되다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

    종류가 다양하고 치료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당뇨 합병증에서 ‘예방’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합병증을 막기 위해 세밀한 혈당조절은 필수. 증상이 없다고 혈당조절을 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합병증에 걸리게 된다. 그만큼 당뇨 합병증은 혈당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뇨의 급성 합병증인 ‘케톤산증’(인슐린이 결핍되어 당질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없는 질환)과 과혈당으로 탈수증세를 보이는 ‘고혈당성·고삼투압성 혼수’도 혈당조절 실패에서 오는 치명적 합병증이다. 때문에 당뇨병 환자에게는 감기 몸살도 결코 가벼운 질환일 수 없다.

    당뇨 합병증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만하다. 실명이나 콩팥 기능 장애 등 치명적 합병증이 생기는 예도 적지 않기 때문. 국내 성인 실명의 30%, 신장 투석치료를 받는 사람의 30%가 당뇨병 때문에 화를 당한 경우다. 또 사고를 제외한 하지절단의 절반 가량은 당뇨병 합병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우선 당뇨병 환자를 실명에 이르게 하는 망막증은 국내 의료계에서 해마다 당뇨병 환자 중 약 2%가 발병할 만큼 대표적인 합병증. 망막증에 걸리는 시기는 보통 당뇨병에 걸린 지 10년 이하에서 6%, 10~14년 26%, 15년 이상에서 63%가 발생한다고 보고되었다. 당뇨병은 신경계에도 영향을 끼쳐 발바닥이나 발뒤꿈치, 발목 등지의 감각을 둔하게 하거나 이와 반대로 화끈거리면서 쿡쿡 쑤시는 통증으로 잠을 설치게 한다. 이를 방치하면 말초혈관이 막혀 살이 썩어 들어가는 괴사증으로 발전하는데 이때는 하지를 절단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당뇨 합병증 예방 첫걸음 ‘감기 조심’
    당뇨 합병증 중 가장 무서운 질환은 역시 단백뇨로 인한 만성 신부전증이다. 단백뇨는 당뇨병으로 신장이 손상되어 단백질을 걸러내지 못하고 소변으로 그대로 내보내면서 발생한다. 문제는 단백뇨가 심하면 노폐물이 배설되지 않는 요독증이 생겨 결국 신장 투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투석이나 이식이 필요한 말기 신부전증 환자의 제1 원인이 바로 ‘당뇨’인 것. 국내에서는 매년 4000명 이상 투석 환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각증세가 없지만 당뇨병성 망막증처럼 증상을 자각하는 경우에는 오줌으로 배출되는 단백질이 당뇨 자체가 원인인지 다른 신장질환에 따른 것인지 정확한 진단을 통해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뇨 합병증은 이렇게 다양한 증상으로 환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지만, 혈당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합병증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당뇨 합병증 치료가 꼭 방어적이거나 절망적인 상태인 것만은 아니다. 당뇨병 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당뇨 합병증 치료 분야에도 신기원을 이룰 만한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 이중 최근 뉴잉글랜드 의약지(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가 발표한 ‘리날 연구서’(RENAAL STUDY)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서는 국내에서도 고혈압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는 ‘코자’라는 약품 속에 든 ‘로자탄’ 성분이 당뇨 환자의 신장을 보호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입증했다. 국내 의료계는 이번 연구가 당뇨 환자의 신장 보호와 신부전증 예방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당뇨에 대한 연구성과가 축적되고 속속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발표됨에 따라 획기적인 당뇨병 치료약품이 개발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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