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2001.11.08

단풍철 별미 은어구이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1-18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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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철 별미 은어구이
    지리산의 3대 동천(洞天) 중 하나인 화개동천(花開洞天)은 은어가 오르기로 이름난 골짜기다. 섬진강을 수계로 강 위뜸 산마을에 산수유꽃이 지고 강 아래뜸 강마을의 매화꽃, 하구 쪽 배밭의 배꽃도 다 지고 나면, 은어 떼는 떼를 지어 바다의 기수대를 지나 가시나무새들처럼 강을 거슬러 오른다. 이때 은어 떼는 막 피어 흐드러진 버들잎처럼 살결이 야들야들 연해서 횟감으로 좋다. 막 피어난 감잎에 햇살이 들칠 때쯤 섬진강을 따라 도는 것은 확실히 멋과 맛의 운치를 더한다. 더구나 이때 은어살은 수박향의 연한 살내음이 돌아 혀가 아리도록 자극한다.

    특히 이 풍류의 맛을 아는 이들은 회와는 별도로 은어 속살로 저며낸 어만두를 시켜 먹기도 한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 은어의 몸길이가 20~30cm 될 때쯤은 튀김이나 구이를 선호한다. 튀김이나 구이는 가을철 단풍 들 때쯤 선호하는 음식이다. 칠불사와 쌍계사가 있는 하동 화개의 십리 벚꽃길이 시작되는 화개장터 입구에는 은어로 이름난 ‘화개장터 횟집’(055-883-2237·김형곤)이 있다. 참게탕, 재첩국도 잘 끓여내는 집으로 소문나 있다. 민물고기를 못 먹는 여성이라면 특별 예약 식단으로 어만두를 시켜보는 것도 봄 나들이의 별미지만, 단풍철에는 튀김옷을 입힌 튀김이나 꼬치구이도 좋다.

    은어는 단풍이 곱게 물들면 수컷은 혼인색을 띠고 암컷을 맞이한다. 구혼하는 사랑의 터전은 강 하구에 가까운 모래밭이나 자갈밭이다. 부화한 어린 은어는 바다에 가 월동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힌 문헌은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산란과 수정을 끝낸 은어는 죽는다는 일반 상식을 깨고 전라도 순천의 이사천에 월동하는 친어(親魚·어미)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학계에서는 이 일이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구례나 광양 지방에서는 월동하는 친어가 가끔 발견되기도 한다. 일찍이 일본의 우찌다 박사는 한국산 은어의 생활사 연구에 10년 세월을 허송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여지승람’ ‘전어지’ ‘명물기략’ 등 우리 고문헌의 내용을 정문기 박사에게 듣고 울었다고 한다.

    단풍철 별미 은어구이
    은어란 놈은 제각각 1~3m2의 영역을 차지하고 결사적으로 그 영토를 수호하는 텃세가 강한 물고기다. 여름 섬진강은 이 성질을 이용해 ‘도모스리’(놀림낚시)하는 강태공들의 밀짚모자로 강물이 뒤덮이기도 한다. 바다에선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던 은어가 강을 거슬러 자기 판도(영토) 안에서는 이끼류인 남조류와 규조류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흙탕물이 지고 해류가 역류하는 한강은 은어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한강에도 은어가 오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은어를 은광어(銀光魚) 또는 은조어(銀條魚), 연어(年魚)라고 부르는 것도 그 이름과 같이 맑은 강물이 철철 흐르는 여울바닥이 생활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는 섬진강이 그만큼 맑고 여울자갈이 많으며 모래가람(多沙江)으로서 자어(仔魚·새끼)를 생산하기에 입지조건이 월등히 뛰어남을 의미한다. 자갈모래 구덩이를 10cm쯤 파고 암컷이 알을 슬면 수컷이 방정하여 모래를 덮어버리는 것으로 은어의 일생은 끝난다.



    함경도에선 은어를 ‘도로묵어’라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총장이며 어류학자인 조던 박사는 일본에서 물고기 조사에 몰입한 적이 있었다. 가장 맛있는 물고기가 뭐냐고 묻자 그는 은어(아유)라고 대답했다.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화개에서 강 건너 전라도 광양 땅으로 이어지는 남도대교(南道大橋)가 강물에 거꾸로 비치는 게 어쩐지 이 가을은 수상쩍기만 하다. 섬진강은 마지막 남은 오염되지 않은 우리 국토의 살아 있는 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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