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2001.11.08

붉게 타는 가을로 말 달리다

  • 허정구

    입력2004-11-18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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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게 타는 가을로 말 달리다
    우리 일행은 가을산 속으로 외승하기로 했다. 외승은 야외 승마를 줄인 말이다. 모두 30km,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쯤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 시간 내내 말을 탄다고 했다. 하늘은 맑고 가을산은 불그레했다. 짙었다. 나로서는 가늠되지 않는 일이었다. 체험하지 않으면 감흥을 알 수 없는 레저 기행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승마라고는 고작해야 전날 1시간 가량, 집 근처 일산승마클럽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게 전부였다.

    왼쪽 고삐를 잡아당기면 말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 고삐를 잡아당기면 오른쪽으로 가고, 두 고삐를 뒤로 잡아당기면서 “워어, 워어∼” 하면 멈추고, 등자(金登子)에 끼운 두 발의 뒤꿈치로 말의 배를 차며 “끌끌 끌끌” 혀를 차면 앞으로 간다는 것을 배웠다. 말은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며, 뒷발길질을 당할지 모르니 뒤에 서지 말며, 혹시 낙마하더라도 절대 고삐는 놓지 말라는 당부도 들었다.

    안전모와 승마바지, 부츠와 장갑을 갖춰 입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나는 급히 동참하느라, 안전모도 없고 등산바지에 등산화 차림이었다. 외승 나온 운악승마클럽 회원들의 복장과 유사한 것은 교관이 건네준 면장갑 한 켤레뿐이었다. 이런 복장이 어떤 화를 불러일으키는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승마 두 번째 만에 외승에 나서게 되었다.

    붉게 타는 가을로 말 달리다
    포천의 명지산 자락에서 외승이 시작되었다. 차가 다닐 수 없고, 절도 민가도 없는 산길이었다. 오래 전에 내놓은 임도인데, 큰비에 군데군데 길이 패고 심하게 비탈져 있었다. 말은 개에 민감하다는데, 다행히 그런 장애물은 없는 곳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11명, 중년 여성 4명, 중년 부부 1쌍, 60대 남성 2명, 그리고 나와 교관, 특별히 제주에서 올라온 마테우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테우리는 말을 다루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그 마테우리가 있어 듬직했다.



    외승 나온 말은 재래종이었다. 일반 승마클럽에서는 주로 수입산 큰 말을 탄다. 마장경기를 할 때 쓰는데, 그 말들은 산길 외승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재래종 우리 말은 힘이 좋아 60~70km 산악 행진을 해도 끄떡없는데, 수입산 큰 말은 산에서는 젬병이라고 했다. 덕분에 초보자인 내겐 큰 말보다 30cm쯤 낮은 재래말이 다행이다 싶었다. 게다가 재래말 안장에는 쇠로 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오뚜기봉까지 근 한 시간 가량 말을 타고 어떻게 올라갔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교관은 계곡을 내려다보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계곡만이 눈에 선할 뿐이었다. 손에 고삐는 쥐었으되, 두 손으로 말 안장에 달린 쇠붙이를 꽉 붙들고 있었다. 어찌나 힘껏 붙들었는지 어깨와 팔 근육이 무감각해질 지경이었다. 말이 뛸 때마다 요동치는 나의 온갖 뼈마디를 그 두 손으로 붙들고 있어야 했다. 한 3개월쯤 말을 타야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된다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경지였다. 말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짐짝처럼 실려가고 있었다. 그나마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워어, 워어∼” 소리치며 말의 속도를 줄이는 기술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봉우리를 하나 넘고 계곡을 건너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명지산의 가을도 깊었다. 말 위에서 보는 단풍이야말로 최고라고 앞장선 여자들이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고 산자락을 둘러보았다. 붉고 노랗게 변한 활엽수림의 잎사귀들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산속이 아니라, 불길 속으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

    더욱이 말과 함께 몸이 출렁거리자, 단풍 든 산이 불길처럼 너울거렸다. 높은 산에 땀 흘리며 걸어 올라와 단풍 구경하는 것도 좋겠지만, 변덕스럽게도 내 마음은 외승에 견줄 바가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말을 뒤따르며 단풍을 바라보니 금세 그런 마음이 들고 말았다. 우선 걷는 것도 숨차지만, 땅에 두 발을 딛고 바라보는 단풍은 정지 화면이었고, 말 위에서 바라보는 단풍은 동영상이었다. 감흥이 달랐다. 그냥 음악을 듣는 것과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의 차이쯤이라고 할까. 말이 평보에서 속보, 속보에서 구보로 옮겨갈수록 그 감흥은 높아졌다.

    붉게 타는 가을로 말 달리다
    돌아오는 길에 교관이 말을 바꿔 타자고 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에 알지 못했다. 교관이 타던 말 안장엔 쇠붙이 손잡이가 따로 없었다. 내 두 손엔 이제 흔들리는 가죽 고삐만 쥐어졌을 뿐이었다. 이제 모든 균형은 하체로 잡아야 했다. 말의 몸통을 꽉 껴안듯이 허벅지와 장딴지에 힘을 주었다.

    상체는 바람에 쓸리는 풀 같았다. 낙마하지 않으려면 허벅지와 장딴지는 땅에 박힌 뿌리처럼 말허리에 붙어 있어야 했다. 어떻든 뿌리뽑혀 날아가지 않기 위해 두 발에 온 힘을 다 주었다. 승마부츠를 신지 않아 장딴지가 이내 쓰려왔다. 허벅지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종아리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려 했다. 내 입에서 “워어 워어” 소리가 연신 났지만, 뒤따르는 마테우리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황홀한 외승 코스가 없다며 말 모는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재촉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산길은 왜 그렇게 길었는지, 낙마하지 않고 산 밑에 도달한 것에 나는 환호를 질렀다. 일주일 정도 말을 타봤다는 동행한 승마클럽 회원들은 가을 외승을 만끽해서인지 환하게 벙글어져 있었다. 일주일만 훈련받고 왔더라면, 나도 저들처럼 거뜬히 말과 가을 산과 한 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래 맞아, 동물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될 수 있는 경지가 승마 말고 또 무엇이 있겠어. 여태까지 왜 그 경지를 몰랐지?

    한데 내 온 몸의 뼈마디는 왜 따로 놀고 있는 거지? 내일 아침 어떤 모습이 될지 눈에 선하다며, 동행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내 등 뒤에서 까르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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