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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기자의 세상속으로

‘양아치 영화들’과 삼류 페미니즘

  • 조용준 기자

‘양아치 영화들’과 삼류 페미니즘

‘양아치 영화들’과 삼류 페미니즘
한국영화 세 편을 ‘의무감으로’ 보았다. ‘서편제’ 이후 처음이었다. ‘엽기적인 그녀’ ‘봄날은 간다’ ‘조폭 마누라’. ‘봄날은 간다’를 빼놓고는 결코 보고 싶지 않았지만, 건국 이후 최고 흥행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한국영화의 실체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기자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 ‘부들부들’ 떨었다. 세 편 모두. 이렇게 말해도 영화 제작자나 감독에게 별로 미안한 감정이 없다. 물론 기자 개인의 소견이니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위의 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은 ‘남자 짓밟기’ 혹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 전도’다.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이영애)는 상우(유지태)에게 먼저 “자고 갈래요?” 하고 유혹한다. 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수는 먼저 “우리 헤어지자”고 말한다. 상우는? 기껏 한다는 말이 “나 잘할게”다. 참으로 나약한 남성상이다. 그러나 은수는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자른다. 이 영화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모든 과정은 여성이 주도한다. 남성은 그냥 수동적으로 따라갈 따름이다. 상우는 은수가 보고 싶어 전화를 하지만 은수는 “내가 전화한다고 했지!”라고 차갑게 말하고 끊는다. 전형적인 역할 전도다. 80년대까지라면 아마 은수와 상우의 대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가고 끝내 집 바깥에서 죽은 할아버지를 상우 할머니가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할머니는 거의 매일 기차역에서 ‘돌아올 수 없는’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할머니 세대는 그게 전형이다. 그러나 손자 세대에 이르러 역할은 바뀐다.

‘조폭 마누라’는 마누라가 조폭 부두목이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졸개들에게 ‘형님’으로 불리는(역할 전도의 직설어법!) 마누라 차은진(신은경)은 남편 강수일(박상면)을 다반사로 걷어차고, 결혼하여 처음 섹스마저도 강간하듯 치른다. 세탁한 빨래를 개고, 근사한 밤을 준비하기 위해 무드 촛불을 켜는 등 기존에 여성이 맡았던 역할은 모두 남성의 일이 된다.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거의 모두가 이 같은 성역할의 전도에서 일어난다.



이 영화 포스터는 신은경의 살기등등한 얼굴 위에 ‘꿇어!’라는 빨간 단어를 크게 오버랩해 놓았다. 누구에게 꿇으라고 명령하는 것일까. 단순히 상대방 깡패에게?

처음부터 10대를 겨냥하고 만든 ‘엽기적인 그녀’는 남성을 쥐락펴락하는 신세대의 전형이다. 그녀(전지현)는 걸핏하면 견우(차태현)에게 “너 죽을래?” 하면서 손을 올린다. 이 영화에서는 드디어 ‘성의 전복’이 일상화되어 나타난다.

철학자 김영민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남성이 근육화될수록 여성은 ‘살’로 바뀐다. 남자가 체제의 그늘 아래 산업전사화되어 하루분의 근육을 소비하면, 애첩 혹은 창녀화된 여자는 그의 자본제적 피곤함을 위안해 주는 살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김교수는 이제 “‘남성의 근육/여성의 살’이 성장의 변증법이 된 시대가 지나가고 점점 ‘여성의 말’이 시대의 풍향계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위의 영화들은 이 같은 징후의 일단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여성의 말’이 되지 못한 채 ‘여성의 근육’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여성의 근육/남성의 살’이라는 역할 전도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이라는 기존 구도를 여성에 의한 남성의 억압 형태로 답습하고 있다. 남성들에게 ‘꿇어!’라고 명령하는 전복에 의한 치졸한 통쾌함과 웃음만을 강요하고 있다. 여성에게 남성이 얻어맞고 걷어차이고, 빌빌거리면 일단은 통쾌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점이 이 영화들 흥행 성공의 ‘숨은 요인’인지 모른다. 그러나 여성학이나 남녀평등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이 이런 저급한 수준의 것인가? 김교수 표현대로 ‘봉건시대의 여종(女從)을 탈근대의 여신(女神)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페미니즘이고, 여성 문제의 실질적인 진보인가?

기자는 일부 영화기획자들이 흥행을 위해 ‘싸구려 페미니즘’을 끼워넣으면서 ‘델마와 루이스’를 흉내내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양아치 영화’와 ‘삼류 페미니즘’의 결합이다. 유독 여성을 다루는 1인극에만 좌석이 꽉꽉 들어차는 기현상이 보여주듯, ‘여성 문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문화상품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아치 같은 영화들이 10대와 20대의 의식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기만 하다.



주간동아 2001.10.25 306호 (p64~64)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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