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2

2001.09.20

짧은 삶이 남긴 영원한 예술혼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2-22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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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삶이 남긴 영원한 예술혼
    어떠한 경우에도 죽음은 애달프다. 특히 ‘요절’(夭折)은 말 그대로 삶의 허리가 꺾이는 것이니 더욱 애달프다. 요절한 화가의 그림이 좀더 특별하고 신비롭게 보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아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화가는 보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에 작가로서 절정의 시기에 다다른다. 이 시기를 맞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작가의 작품에는 강렬한 비원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비어 있는 부분이 있다. 특출한 재능과 치열한 예술혼은 세속적 삶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나아트센터가 개관 3주년 기념으로 연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은 요절 또는 단명한 작가 16인의 전시회다. 구본웅, 이인성부터 오윤, 최욱경까지 1백 년 가까운 시간을 아우르는 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꿈틀대는 듯한 이중섭의 ‘황소’, 다정함으로 다가오는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타오르는 치열함으로 보는 이의 미간을 아찔하게 하는 권진규의 ‘두상’ 등 80여 점의 회화와 20여 점의 조각을 전시했다. 이들 작품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들이 동시대이거나 하나의 주제를 가진 게 아니어서 전시를 배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유족이 작품을 내놓기를 꺼려서 그들을 설득하는 데도 애를 먹었지요. 적잖은 그림들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센터 정희정 연구원의 설명이다.

    요절 작가의 선정 기준은 광복 이전은 40세, 광복 이후는 50세 이전에 죽은 작가로 정했다. 이 기준에 해당한 작가는 모두 70여 명, 이 중 16명을 다시 추렸다. 구본웅 이인성 박수근 이중섭 함대정 권진규 김경 정규 송영수 최욱경 이승조 박길웅 전국광 오윤 손상기 류인 등이다.

    요절 작가의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과 폭음이 원인이 되어 일찍 세상을 등졌다. 박수근이나 이중섭 등은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웬만하면 아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들은 생전에 변변한 전시회 한번 못한 무명화가였다. 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그리며 은박지에 철필로 아이들 얼굴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는 그 사연 덕에 더욱 애잔하다. 1956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이중섭은 무연고자였다.



    짧은 삶이 남긴 영원한 예술혼
    그윽한 깊이가 느껴지는 색채로 서민의 삶을 그린 박수근 역시 늘 가난을 업보처럼 안고 산 작가다. 미군 PX에서 관광용 초상화를 그리던 박수근의 그림은 오히려 미 군속들에게 그 재능을 인정 받아 적잖은 작품이 미국으로 반출되었다. 이번에 출품된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들’은 미국에서 빌려온 작품이다.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박수근은 마침내 1962년 소원하던 국전의 심사위원에 임명되나 다음해 한쪽 눈을 실명하는, 화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을 당한다. 그는 쉰을 갓 넘긴 나이에 간경화로 숨졌다.

    짧은 삶이 남긴 영원한 예술혼
    요절 작가 중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도 적지 않다. 테라코타 한 분야를 고집스레 개척한 조각가 권진규가 그런 경우다. 미술비평가 정준모는 권진규의 작품을 가리켜 ‘고딕적인 엄숙성과 함께 종교적인 숭고함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테라코타의 재료는 흙이다. 흙이 갖는 원초적 색채는 신비와 사색을 함께 뿜어낸다. 또 종이에 안료를 바르고 말려 다시 종이를 붙이는 작업을 반복하는 ‘건칠’ 기법으로 만든 두상도 이번에 선보였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본 여자와 결혼한 권진규는 아는 이 하나 없는 한국 화단에 끼지 못했다. 혼자 오직 조각에만 몰두하던 그는 1973년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작업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짧은 삶이 남긴 영원한 예술혼
    여성 작가인 최욱경 역시 미술을 포기하지 못해 삶을 포기한 작가다. 그는 서울대학교와 미국 브루클린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위스콘신 주립대학 교수, 덕성여대 교수 등 화려한 이력을 달리다 돌연 자살했다.

    세속적인 것에 통 무심하던 작가는 죽기 얼마 전부터 음식이나 옷에 관심을 보이며 살아보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결국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최욱경의 삶과는 반대로 작품에는 폭발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비참한 관계’ ‘어떤 해결책을 줍니까’ 등 그의 작품에는 역동적 추상표현주의와 자연주의적 열정이 녹아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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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재조명된 작가가 함대정이다. 그의 추상은 활달한 붓놀림과 마티에르, 대담한 색채로 출품작 중에서 단연 눈에 띈다. 한눈에 범상치 않은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함대정은 한국전쟁중이던 1953년 대구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가진 후, 후원자를 만나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 후 59년 귀국할 때까지 파리의 허술한 호텔 꼭대기에 기거하며 오직 그림만을 그리는 열정적 삶을 살았다. 귀국해서 막 활동하려 할 즈음, 뇌출혈로 어이없이 생을 놓아 버렸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추상만을 그리던 함대정이 후원자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화 ‘안맹장 여사의 초상’이 출품되어 눈길을 끈다. 최초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함대정이 일생 동안 그린 단 2점의 초상화 중 한 점이다.

    이밖에 줄기차게 파이프를 그려 ‘파이프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은 이승조가 1986년부터 간암으로 죽은 해인 1990년까지 붙들고 있던 미완성작 ‘핵-Nucleus’, “태어난 게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고 절규한 장애인 화가 손상기의 ‘공작도시’, 민중 미술가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연 다음 타계한 오윤의 ‘지옥도’ ‘원귀도’ 등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이번에 소개된 작가들은 젊은 나이에 타계했지만 생전에 이미 뚜렷한 작품 경향을 보이던 작가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탁월한 역량을 가진 작가들이었죠. 다만 일찍 세상을 떠난 만큼 가난하게 살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남은 작품의 수가 적고 그나마 훼손된 경우가 많습니다. 또 김복진 같은 조각가는 한국 조각의 선두 주자임에도 작품이 사료로만 남아 있어 전시할 수 없었죠.” 가나아트센터 김종화 이사의 말이다.

    작가는 떠나고 없지만 작품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았노라고 작품들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10월7일까지, 문의: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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