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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패러디’ 열풍

패러디는 양념이다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패러디는 양념이다

패러디는 양념이다
패러디’(parody)의 사전적 정의는 ‘저명 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스런 시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패러디는 이미 문학을 넘어 코미디·광고·영화·드라마·뮤직비디오·인터넷 등 거의 모든 대중문화 전반에서 장르의 구분 없이 새로운 어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사실 예술과 문화는 늘 창조와 모방의 반복으로 이어져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패러디의 시조가 고대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중세의 기사도 전설을 패러디한 작품이란 점을 상기해 보면 패러디의 역사가 얼마나 유구한지 알 수 있다.

패러디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은 “그 어느 것도 신성하지 않다” 또는 “우상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엄숙한 것에는 우스꽝스러움이 숨어 있고 이를 까발려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패러디다. 또한 패러디는 원작자의 의도에 상관없이 그 대상에 논리적으로 함축된 가능성으로서의 의미를 재발견해 내는 역할을 한다. 일곱 난쟁이와 함께 산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성적 의미를 읽어내는 백설공주의 ‘외설 버전’이나, 권선징악의 교과서인 ‘흥부전’을 ‘흥부 비판’으로 재해석한 ‘놀부뎐’ 등은 변모한 사회상과 윤리관을 반영한 패러디물이라 할 수 있다.

패러디의 힘과 재미는 이렇듯 ‘반전과 전복을 통한 새로운 의미의 창출’에 있다. 따라서 패러디가 유발하는 웃음은 아마도 ‘허를 찌르는’ 짜릿하고도 통쾌한 웃음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나는 무수한 패러디물들이 과연 이런 웃음을 선사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진우 교수(계명대 철학과)는 “새로운 창조의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텍스트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상업적 패러디가 범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저 한번 웃자고 만든 패러디, 원작의 유명세에 무임승차한 패러디물들이 쏟아지면서 패러디의 진정한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



‘원전 재창조’가 아닌 ‘원전 모독’에 그치는 무수한 패러디가 그동안 크게 문제되지 않은 것은 16mm 에로비디오처럼 소수만이 즐기는 마이너 장르이거나 패러디를 코미디와 동일시하는 일반의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패러디 가수’를 본격 표방한 이재수의 등장과 그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한 서태지로 인해 패러디는 새삼스럽게 한 쟁점이 되었다.

패러디는 양념이다
서태지의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해 ‘컴배콤’을 발표한 이재수는 “한국의 얀 코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얀 코빅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음악 패러디 분야의 최고봉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 가수. 까다롭기로 유명한 마이클 잭슨조차 그의 히트곡을 패러디하도록 허락한 예를 들면서 이재수측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문화대통령이 쪼잔하게…”라는 식으로 서태지의 오만함과 ‘여유 없음’을 질타한다. 이미 거대한 문화권력으로 자리잡은 서태지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신인가수 이재수기에 사람들은 ‘굳이 싸움을 걸 만한 가치도 없는 상대인데…’라고 생각하며 이재수측에 동정표를 던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딴지일보 논설위원 원종우씨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올바로 직시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는 우리의 가요 시스템을 마치 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착각하는 것은 허무한 낭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재수의 패러디 음반은 그 자체의 참신성이나 수준 여부를 떠나 거대 상업기획사의 전략적 산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처음엔 인터넷을 활동무대로 한 언더그라운드 가수였지만, 이제는 이재수 역시 거대 기획사를 비롯해 음악계의 모든 시스템적 관행과 특성을 업고 있는 듯하다. 이번 사건으로 더욱 이름이 알려지고 서태지와 ‘맞짱 뜨는’ 존재로까지 이미지가 수직상승한 이재수는 음반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이 떨어진다 해도 사실 그리 손해 보는 것이 없을 수 있다. “이번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손해는 서태지가 볼 것이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서태지측은 얀 코빅이 원저작권자에게 작품 설명을 한 뒤 꼭 허락을 받고 나서야 패러디한다는 점, 그렇게 완성된 패러디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성을 지닌다는 점을 들면서 “창작자의 당연한 권리를 무시한 무분별한 패러디에 경종을 울리고,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한 허술한 저작권법이 개선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가 지난 8월17일 동국대학교에서 ‘패러디와 저작권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그동안 따로따로 논의한 패러디와 저작권 문제를 이제는 함께 묶어 논의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였다.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재수의 ‘컴배콤’이 서태지의 ‘컴백홈’을 제대로 패러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컴배콤’의 경우처럼 원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 패러디한 곡을 부르는 제2, 제3의 이재수가 나온다면 패러디 음악은 원곡의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로만 인식될 것이며,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패러디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서태지닷컴’ 이형욱 실장).

결국 우리 대중문화의 두께와 수준은 제대로 된 패러디 묘미를 즐기기엔 아직 모자라다는 것일까. 이재수의 ‘Still loving you’와 ‘컴배콤’을 듣고 즐거워한 많은 사람에게 ‘이재수’는 ‘이죄수’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가수 이재수보다 이재수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이재수 파동으로 패러디의 진정한 문화적 가치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패러디가 번성하는 시기는 사회적으로 암울하고 답답해 사람이 숨막혀 하는 때다. 이런 때일수록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대한 비판의식이 필요하고, 패러디가 이런 역할을 해줄 때 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서태지와 이재수의 이번 소송 결과는 우리 대중문화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될 듯하다. 그러나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이분법적인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2000년대의 한국에서 올바른 ‘하나’에 맞서고 ‘절대 권력’을 부정하는 패러디의 봇물은 법으로도 틀어막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80~81)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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