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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전쟁’말고 ‘정치’를 하라

  • < 이 재 열 / 서울대 교수·사회학 >

‘전쟁’말고 ‘정치’를 하라

‘전쟁’말고 ‘정치’를 하라
우울하다. 70년 만의 가뭄으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논밭이 이제는 엄청난 호우로 물에 잠기고 많은 인명까지 희생된 변덕스런 날씨 탓도 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풍경이 너무도 험악해졌기 때문이다. 사회 갈등이 제도화한다면 사회 발전과 진보에 초석이 된다. 따라서 갈등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한때는 노-사간의 갈등조차 정보부에서 담당할 만큼 사회 갈등을 불온시한 적이 있었다. 전제적 권력에 대한 민주화 세력의 도전이 승리한 후,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갈등론’은 이론적 시민권을 얻은 셈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뒤이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말미암아 혁명론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 반면, 기존체제를 떠받친 권위들이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전제적 권력의 위선을 깨뜨리고 억압의 구조를 폭로하는 보통사람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일상성 속에 구조화한 비가시적인 권력을 드러내어 폭로하고 해체하는 알튀세와 푸코류(類)의 후기구조주의 담론에 매료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의 도전은 ‘성추행’을 재정의하여 남성중심 사회의 불평등을 폭로하고 그들의 못된 손버릇을 고쳐놓았으며, 시민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정치인들을 정치판에서 끌어내렸다. 소액주주들은 재벌총수를 상대로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정보화 시대에 활짝 넓혀진 가상공간을 차지한 자칭 ‘지식 게릴라’들이 기존의 권위와 제도에 대해 엄청난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권위 있는’ 지식인의 발언에 대해 수천 또는 수만 명의 게릴라가 ‘익명으로’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대중정권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산물이다. 동시에 그 시대적 한계를 공유한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사회적 갈등은 정당화의 기제를 통해 흡수되고 소화되어야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그 정당화의 원천은 세 가지다. 즉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그리고 합리적·합법적 권위인 것이다. 과거의 전통적 권위주의 체제 아래 사형수와 해직 인사들이 ‘민주화 유공자’가 되고 일부는 DJ정권의 실세가 되었다. 그렇게 성립한 DJ정권은 전통적 권위를 가진 대학, 언론, 그리고 지식인과 전문직 종사자를 개혁대상으로 삼았다. 지식 게릴라들도 전통적 권위를 가진 기관을 폭로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과 소수자 집권여당의 공격대상이 비슷해질수록 전통적 권위를 가진 조직이 집권당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합리적·합법적 권위는 존재하는가? 애당초 합법적 제도화를 담당할 국회,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는 국민에게서 가장 불신 받는 대상이었다. 약간의 권위라도 인정 받은 대학과 언론, 그리고 지식인에 비하면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끊임없는 법조 비리, 정치화한 검찰, 그리고 정책과 이념 대신 마피아식으로 파당화한 정당과 부패한 공직사회에서 아무도 합리적인 권위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DJ의 개혁 파트너가 때묻은 행정관료와 정치화한 검찰과 국세청이라면, ‘법치주의’를 정당화할 기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우리의 대안인가? 갈등을 풀어내기보다는 갈등의 한 축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 80고령에 이른 노인들이나, 검증되지 않은 젊은 정치인들이나,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 총재에게서도 그런 개인적 카리스마를 기대할 수 없다.

전통적인 권위는 빠르게 무력화하였고, 합리적 권위는 애당초 싹이 노랬으며, 카리스마적 권위는 왠지 위험해 보인다는 데 우리 사회의 딜레마가 있다. 모두 수긍할 ‘관행’도, 갈등 당사자들간의 실질적 합의를 도출할 ‘합리적 절차’도, 꾸짖을 ‘어른’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난관을 풀어나갈 가장 큰 열쇠는 여전히 권력을 쥔 정권과 정치인에 있다. 정치 본래의 영역이 갈등을 제도화하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무력해진 사회에서 갈등은 통합보다는 분열을 낳고 성전(聖戰)과 순교자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 부디 ‘전쟁’을 하지 말고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정치인’들이여.



주간동아 2001.08.02 295호 (p100~100)

< 이 재 열 / 서울대 교수·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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