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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유학생들 “차별의 땅 코리아”

무시·따돌림에 ‘설움 많은 타향살이’… “한국인의 국가·피부색 편견 이해 안 돼”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제3세계 유학생들 “차별의 땅 코리아”

제3세계 유학생들 “차별의 땅 코리아”
저는 영문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인도에서 온 여학생 날리니 타네쟈씨(33). 국내법상 그녀는 한국에서 돈을 받고 영어 강의를 할 수 없다. 영국 식민지를 거쳐 대다수의 사람이 영어를 자국어처럼 구사하는 인도지만 영어가 국어는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 “지나치게 형식적인 조치 아닌가요? 물론 법적으로 허용된다 해서 학원 취업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에서 영어를 강의하는 흑인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그녀는 말한다. 학생들이 백인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는 것.

‘차별 대우와 경멸어린 시선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 외국에서 성공한 우리 교포의 성공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인은 동등한 사고방식으로 외국인을 대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제3세계 유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차별의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

타네쟈씨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99년. 지금은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인터넷을 통해서였죠. 같이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고요.” 이미 유럽과 중동지역을 돌아다니며 세계 구석구석을 공부한 그녀가 아시아에서는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한국 사람의 ‘정’(情)이라는 개념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력적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인도 전통의상을 즐겨 입는 그녀가 빈디(인도 여성들이 이마에 붙이는 장식용 점)라도 찍고 등교한 날은 하루종일 외계인을 보는 듯한 시선을 각오해야 한다. “옷차림이 낯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눈길에 경멸이 섞여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제 착각일까요?”

서울 생활 7년차인 아프리카 베냉 공화국 출신의 바나베 아써바씨(35)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서울에선 쉽게 만나기 어려운 순수 아프리카 흑인. 처음 한국땅을 밟은 94년에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려야 했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배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는 것도, 수업을 듣는 것도 모두 혼자서 해야 했다는 것.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냥 고국으로 돌아갈까 고민도 많이 했지요.” 지하철을 타면 자기 주변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교내 식당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학부 과정을 밟을 때는 느낄 수 없던 소외감이었다. 당연히 한국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경찰관이 “소말리아 깜둥이”라며 놀리는 것도 참아야 했다. 물론 그가 유창한 한국말로 항의하자 기겁을 하고 꽁무니를 빼기는 했지만.



제3세계 유학생들 “차별의 땅 코리아”
학교 외국인학생회에서 만나 지난해 결혼에 성공한 아써바씨의 멕시코인 아내 역시 서운한 적이 많았던 것은 마찬가지다. “멕시코는 사막밖에 없고 아이들이 구걸하는 나라라고만 생각해요. 날마다 낮잠이나 자고 게으른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도 강하고요.” 악의적으로 멕시코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들보다 가난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한결같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이 서울역 노숙자만 보고 한국을 판단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아써바 부인의 항변이다.

이런 설움은 유색 인종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에 다니는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씨(26)는 불가리아 출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덕택에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막상 그가 불가리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다시 연락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국적에 따라 친구를 가려 사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너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출신이니까 배울 게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숙사에서도 미국 친구의 방은 늘 한국 손님으로 붐비지만 동유럽 출신은 그렇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가 하면 동남아시아 출신 학생들은 한국인이 자신의 모국을 ‘적당히 무시해도 되는 나라’ 또는 ‘우리 덕분에 먹고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대로 나라 전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뿌리내렸다는 것. 경희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방글라데시인 루르 아메드씨(27)는 영등포의 한 공장에 고향 친구를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 공장 사장이 “낮에 일 안 하고 친구들이나 꼬드기러 다닌다”며 주먹을 휘두르려 했던 것이다. “우선 폭력을 쓰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되죠. 하지만 ‘방글라데시인은 모두 자기 종업원처럼 막 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에 너무 화가 났어요.” 사과할 것을 계속 요구한 아메드씨를 사장은 끝내 무시했다.

한국에서 동포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대우를 눈으로 확인하는 이들이 느끼는 분노는 상상 이상이다. 네팔 출신의 같은 학교 학생인 인드라 라젝(28)씨와 라젠드라스 사케(31)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어려운 경쟁을 뚫고 국제협력단(KOICA) 프로그램에 참여해 서울에 왔지만 자기 또래의 친구들에게서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미국 매체의 뉴스 선택을 그대로 따라가는 외신보도와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사회과목 교과서도 성토 대상이다. CNN에 보도된 지진 기사는 언제나 국제면 톱기사지만 인공위성 발사 같은 긍정적인 내용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학창시절 ‘인도는 카스트 제도의 나라’라고 외워버린 사람들에게 “그건 산간오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옛날 이야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타네쟈씨는 말한다. “각 나라의 현재 모습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 부족해요. 그냥 갖고 있는 생각의 틀에 우리를 끼워맞춰 넣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요.”

10년째 외국인 학생들의 생활을 돕고 있는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의 이경오씨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이 학생들을 더욱 비뚤어지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하고 반말이나 욕설을 섞어 말해도 외국인은 느낌으로 안다는 것. “그렇게 상한 기분이 쌓이다 보면 한국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점점 이방인처럼 떠돌다가 결국 그냥 귀국하는 수도 있지요.” 한국인의 차별의식에 대한 아써바씨의 분석은 더욱 신랄하다. “미국·유럽 등의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콤플렉스가 제3세계 사람들에게 잘못된 우월감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적어도 너희보단 나아!’라는 식으로 말이죠.”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 아니냐고 그는 되묻는다. 한국이 동유럽이나 제3세계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서양인의 눈엔 그저 아시아의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중화(小中華)의식. 조선시대 중국 한족의 문화를 중화라 숭상하며 떠받들던 선비들은 스스로를 소중화라 칭하고 만주와 일본을 오랑캐라 부르며 2등 문화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즐겼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는 조선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인정했을까. “한국 교포가 느끼는 차별에 대해 분노하기 전에 빈곤국가 국민을 향한 자신의 눈길부터 점검해 보라”는 제3세계 유학생들의 지적이 따갑다.



주간동아 2001.06.21 289호 (p54~55)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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