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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나는 벗고 싶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몸’은 富의 척도이자 경쟁력... ‘노출 패션’과 외모 강박증으로 이어져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소설가 배수아는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나르시스를 언제나 타인을 통해서만 확인해야 하는 경우에 이 말을 적용하고 싶다”고 했다. 이영자의 경우가 그랬다. 개그우먼이라는 ‘공적 인간’으로서의 그녀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느낄 때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어쩌면 개그라는 장르가 아닌, 다른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을 모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영자의 경우는 ‘몸이 곧 경쟁력’이 되어 버린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세태의 전형을 보여준다. 개그가 아닌 연예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살집부터 제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다. 100kg에 가까운 거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날씬한 몸매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영자가 대중적 인기보다 더 한 ‘연예 권력’을 거머쥐었음을 뜻한다. 살을 뺀 이영자는 예전에 갖지 못한 어떤 ‘능력’과 ‘힘’을 가진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곧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훌륭한 외모는 훌륭한 추천장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를 요즘 세상에 적용하면 “날씬하고 아름다운 외모가 그 사람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룩 튀어나온 배와 넉넉한 체구가 인격과 부의 상징인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능력 없고 게으르며 가난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균형 잡힌 몸매가 곧 그 사람의 부(富)의 정도를 측정해주는 척도가 된 것.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올 여름 패션계의 노출 지수는 사상 최고로 올라갔다. 몇 년째 봄을 느낄 새도 없이 여름이 닥친 탓인지 거리에는 5월부터 슬리브 리스와 짧은 반바지, 아슬아슬한 미니 스커트가 등장했다. 등판이 없는 ‘백 리스’, 속살이 비치는 ‘시 스루’, 목덜미에서 끈으로만 묶어 연결해 어깨를 그대로 드러내는 ‘홀터 넥’, 가슴 부분만 가리고 배꼽을 드러내는 ‘튜브 탑’도 이제 일상적인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불황일수록 여성의 치마 길이는 짧아진다’는 패션계의 속설처럼 지금의 여성들은 노출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한다. 자신의 가치는 곧 ‘쭉쭉빵빵의 몸매’에서 생기고, 그것이 돈 많은 사람과의 교제 기회를 넓히는 생존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유층 신세대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파티문화에서 패션이 자신을 알리고 이성을 끄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인터넷 사교클럽 ‘클럽프렌즈’(www. clubfriends.co.kr)의 임정선 부장은 “예전에는 파티에 정장을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노출 패션을 선호하는 여성들이 많다. 화술과 사교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몸매에 어울리는 패션으로 자신을 센스있게 연출할 줄 아는 여성들이 쉽게 이성의 주목을 끈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의 노출패션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 측면이 강하다. 미모가 곧 그 사람의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시대에서 옷차림도 하나의 전략이 되고, 몸매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노출 패션을 소화해 내는 것이 또 하나의 우월의식으로 작용한다.”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 수석연구원은 이제 패션도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뚱뚱한 몸, 평범한 외모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사람으로 하여금 덜 먹고, 많이 운동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도록 채찍질한다. 신체에 대한 가학 없이는 신분 상승을 도모하기 힘들다. 다이어트가 국민적 관심사로 자리잡고 살빼기와 관련한 각종 산업의 기형적 팽창은 이제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다이어트 관련산업의 연매출 규모가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강남에 진출한 전 세계적 바디 슬리밍 전문업체인 마리프랑스. 출산 후 한 달 정도 관리를 받아 8kg을 감량한 홍콩 여배우 종려시가 홍보 모델로 활동하는 마리프랑스는 전문적인 맞춤형 체형관리를 특징으로 한다. 랩핑 관리가 1회 10만∼15만 원, 마사지가 1회 20만∼25만 원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회원 가입이 쇄도하고 있다. 마리프랑스 관계자는 “몇 달 단위로 종합적인 관리를 받으려면 10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기도 한다”고 전한다.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도 요즘엔 지방흡입, 가슴 성형 등 바디 라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추세다. 강남구 압구정동 드림성형외과 송홍식 원장은 “지방흡입 시술 환자의 대부분이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라며 “사람의 관심이 얼굴에서 몸매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옛날엔 공부 잘 하고 덕 많은 것이 미덕이었지만, 요즘엔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이 어딜 가나 대우 받는 사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술 받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해 강박적으로 수술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실제로 외모강박증이 낳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신체에 대한 불만이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을 낳고 자신의 외모에 과도한 결함이 있다고 믿는 ‘신체변형장애’와 ‘망상장애’를 불러오기도 한다고 전문의들은 경고한다.

프로이드 정신과 조은희 원장은 “외모를 곧 그 사람의 가치나 능력과 같은 것으로 평가해 버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사회에서 낙오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왜곡된 신체 이미지가 정신적 병리현상을 낳는 것이지요. 다이어트에 대한 과도한 신앙과 상업적 부추김이 자연스러운 몸에 대한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습니다”고 지적한다.

오는 6월22일 전남대에서 열리는 사회학대회에서는 임인숙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논문 ‘한국 미용성형산업의 팽창 전략과 함의’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 몸 가꾸기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진행되며, 사회가 성형수술을 얼마나 조장하였는지 구체적인 증거로 비판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75년 22명에 지나지 않던 성형외과 전문의는 99년에 847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전문의 증가율이 7.3배인 데 비해 성형외과 전문의는 38.5배가 증가한 것.

아름답고 날씬한 몸으로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매스컴 속의 미인들, 화장·패션·다이어트·성형수술로 최대한 외모를 개선해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다이어트의 사회학’이 우리 사회의 한 흐름으로 남아 있는 한 내가 내 몸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몸매와 외모 중시의 사회는 곧 윤리의 혼란을 부르고 사회적 건강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는 또 과다한 ‘성적 담론’의 득세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 시대가 강요하는 구호는 “나는 벗는다, 고로 존재한다”가 될지도 모르겠다(사진협찬·포갈 02`-`3440`-`0515).



주간동아 2001.06.21 289호 (p34~35)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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