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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나는 벗고 싶다

‘누드의 부재’가 외설 부른다

사이버 공간서도 순수 취지 사이트는 네티즌 공격·검열에 잠수… '셀프 포르노' 새롭게 등장

  •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누드의 부재’가 외설 부른다

‘누드의 부재’가 외설 부른다
나는 내추럴리스트, 또는 누디스트다. 내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누드 비치나 누드 수영장의 사진도 게재했다. 당연히 성기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기만 확대한 사진은 아니지만 분명 성기가 나오기는 한다. 내 홈페이지는 검열에 걸린다. 그리고 강제 폐쇄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홈페이지는 음란 사이트가 되어 버렸다. 나는 음란을 조장한 범죄자다….

오늘날 이 땅의 사이버 공간에는 위와 같은 혼란과 갈등이 가득하다. 누드는 역시 예술과 외설의 경계, 당당함과 수치심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국내 포털 사이트 가운데 가장 많은 동호회를 가지고 있는 ‘다음’(daum.net)의 경우 검색어에 ‘누드’를 치자 51개의 카페(동호회) 이름이 죽 뜬다. ‘누드 사랑’ ‘디지털 누드’ ‘누드의 아이들’ ‘셀프 누드’…. 그러나 이 많은 카페 가운데서 진정한 누드 동호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셀프 누드의 모든 것’이라는 한 카페는 회원수가 99명에 이르지만, 게시판은 텅텅 비어 있다. ‘건전하게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운영자의 의도와는 달리 대다수 카페의 자료실과 게시판은 성인용품을 파는 사이트나 포르노 사이트로 유도하는 링크나 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외 연예인들의 선정적인 사진을 잔뜩 올려놓은 경우도 많다. ‘누드 모델을 구한다’는 카페 개설의 목적이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유저들의 수준도 ‘누드 행위’에 대한 건전한 논쟁을 하기에는 매우 턱없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뿐만 아니라 다른 포털 사이트의 경우에도 똑같다. 프리챌의 ‘누드클럽’이라는 커뮤니티의 마스터는 스스로를 누디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누디스트가 꼭 인지하고 있어야 할 기본 자세’로 △성기 위주의 그 어떠한 행위를 금한다 △섹스 장면을 금한다 △남근의 크기 등을 비교하지 않는다 △여체의 미모는 모두 평등하며 남녀노소는 모두 예술인이다 △최고의 예지인·예능인·예술인·자연인·자유인 그리고 지고의 지식인이 누디스트다 △인격으로 교제함을 원칙으로 한다 △순수한 육체의 철학을 통해 고도의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계발한다 △남성과 여성의 어떠한 특징과 징후도 자연 그대로 받아들인다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의 회원수는 55명. 그러나 마스터 이외의 사람은 단 한 건의 글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누드클럽’이라는 커뮤니티 이름만 보고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원래 기대하던 야사(야한 사진)나 야설(야한 이야기)이 없기에 그 커뮤니티는 지금도 그냥 웹의 한구석에 버려져 있다.

이처럼 네트즌의 관음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누드 사이트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냥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수준 이하 네티즌들에게서의 공격과 당국의 검열이라는 이중의 걸림돌에 직면한 순수 누디스트들은 철저한 비밀주의와 비공개의 그늘로 숨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누드와 그 모임이 오히려 감추기 위한 누드로 변하는 역설적 행태다.



‘누드의 부재’가 외설 부른다
프리챌의 ‘누드나라’ 커뮤니티는 ‘순수한 자유를 찾는 소수 나체주의자 모임’이라고 취지를 말하고 있는 대로,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나체 사진을 올려야만 한다. 누드 관련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자신이나 이성 친구의 알몸 사진을 정회원의 가입 조건으로 내세우는 곳은 많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알몸 사진 노출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도용해 공개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음란한 화상 채팅을 하다 상대방이 옷을 벗으면 이 모습을 몰래 정지화면으로 잡아 동호회 사이트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 순수한 누드 모임을 자처하는 관음 욕구 충족의 ‘알몸 동호회’일 가능성이 높은 것. 이들 동호회는 사이트 곳곳에서 생겼다 없어지고 또 생기면서 단속망을 피해간다.

지난 5월 한 인터넷 화상 채팅 사이트에서는 그야말로 황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화상 채팅을 하던 한 젊은 남자가 바지를 벗고 채팅방에 들어와 있던 여자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쇼’를 벌인 것. 여기까지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더 황당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남자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가 ‘쇼’를 하던 아들을 보고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 발길질까지 하는 ‘구타 생방송’은 곧 화면이 끊어지긴 했지만, 마침 채팅방에 들어와 있던 여자 세 명과 남자 두 명은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이처럼 인터넷과 화상 카메라의 결합은 알몸 노출에서도 새로운 풍속도를 낳고 있다. 이른바 ‘캠누드’로 통칭되는 ‘셀프 포르노’의 범람이다. 건전한 의미의 누드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셀프 포르노’가 차지하고 있는 것.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매치 메일을 통해 은밀하게 전해지는 속칭 ‘속초 섹스 리포트’는 ‘셀프 포르노’ 현상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사건은 약 한 달 전 강원도 속초에 콘도를 구해놓았으니 섹스 여행을 떠나자며 사이버상에서 공개적으로 남성 파트너를 구한 한 여성에게서 출발한다. 자신을 자칭 여대생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남성 파트너를 공개 모집하면서 얼굴을 제외한 자신의 누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여성이 모두 6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속초 여행 화상 보고서’를 인터넷에 올린 것. 당초 이 여성은 남성 파트너를 구하면서 캠코더 지참은 안 되지만 일반 카메라는 무방하다고 밝혀 처음부터 인터넷에 ‘화상 보고서’를 띄울 의도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보고서에는 섹스 장면과 함께 자신의 얼굴도 드러내는 과감성을 보였다.

‘누드의 부재’가 외설 부른다
물론 ‘속초 섹스 리포트’는 진짜 ‘셀프 포르노’가 아니라 일본 포르노 사이트에서 사진만 옮겨 실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나온다. 일반인 등 아마추어가 자신의 누드며 성행위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본의 모 사이트에서 사진을 퍼오고 글만 덧붙인 듯하다는 것. 그러나 속초 리포트 사진 6장 가운데는 사진 한 켠에 국내 PC 잡지의 모습도 나오는 등 진짜 ‘셀프 포르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인터넷에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한 뒤 스스로 누드 모델이 되어 누드 사진 CD롬을 판매한 20세 여성을 외설물 판매 혐의로 경찰이 체포한 일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자신의 누드 사진을 스스로 판매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부 일반인이 화상 채팅방에서 비공개방을 만들어 누드나 자위행위를 보여주며 화상 채팅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이 장면들은 본인들도 모르게 누군가가 상업 목적으로 녹화해 음란 사이트로 다시 판매된다. 최근에는 선정적인 화상 채팅 장면만을 전문적으로 모아 녹화 중계하는 음란 화상 채팅 사이트가 출현하기도 했다.

얼마 전 세계적인 대형 할인점 업체인 영국의 테스코는 영국 남동부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누디스트를 위한 알몸 쇼핑 매장을 개설했다. 영국 정부가 공인한 최초의 누드 비치인 페어라이트만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누드 쇼핑센터는 매주 약 4만여 명의 ‘누드 손님’이 몰릴 정도로 성황중이라고 한다. 또한 지난해 호주에서는 나체로만 들어갈 수 있는 ‘누드 도서관’이 탄생했다. 시드니 근교의 소여 프랜즐린 도서관은 일 년에 200달러의 회비를 받고 엄격하게 회원을 관리하는 세계 최초의 누드 도서관이다. 도서관 사서인 엔거솔은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서관 중 하나다. 일반의 우려와 달리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자신이 나체라는 사실을 잊고 곧 책에 파묻힌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우리는 지금 누드가 오히려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고, 거꾸로 누드의 금지가 외설을 낳는 역설의 현상 속에 살고 있다. ‘누드는 곧 음란’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이버 공간에 ‘음란의 지하 왕국’을 건설하도록 부추겼다. 거기에서는 오직 외설과 음란의 확대 재생산만 소비될 뿐이다. 누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없이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건전한 누드가 자리잡을 여지는 없다.



주간동아 2001.06.21 289호 (p32~33)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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