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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흙과 불 사랑한‘기와장이’

울산서 기와공장 4대째 잇는 오세필씨… 황금기와 15년 만에 결실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흙과 불 사랑한‘기와장이’

흙과 불 사랑한‘기와장이’
지붕 서까래를 걸고 개판을 덮으면 이제 기와를 올릴 차례다. 물론 그 전에 ‘보토’라고 하는 지붕 바닥흙을 다져야 한다. 일꾼들이 찰기 있는 보토를 밟아 단단하게 펴놓으면 비로소 편수가 처마 끝에서 용마루 방향으로 암키와(바닥에 깔리는 기와)와 수키와(위에 얹는 둥근 기와)를 잇기 시작한다.

기와가 밀리지 않도록 수키와 속에 홍두깨 흙을 다져 넣고, 처마 끝에서 흙이 보이는 부분은 와구토(석회)로 마감하거나 연화나 당초가 새겨진 막새를 댄다. 여기에 지붕 윤곽을 살려주기 위해 용마루, 내림마루(합각마루), 추녀마루를 얹으면 날렵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지붕이 드러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중한 기와지붕은 목재의 이음매를 지긋이 눌러주어 한옥의 뒤틀림을 방지하고 더욱 견고하게 만들며, 눈비와 태양열로부터 실내를 보호한다. 그러나 기와장 오세필씨(50)의 눈에는 요즘 지어진 한옥들이 영 마땅치가 않다. 기와 때깔부터 도무지 한옥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복궁에 복원해 놓은 건물들을 보세요. 지붕 색이 마치 칠해놓은 것처럼 똑같이 새까맣죠? 그건 우리 것이 아니에요. 전통기와는 원래 비둘기색이에요. 그리고 자세히 보면 한 장 한 장 색이 조금씩 달라요. 그것이 어우러져 기와지붕의 맛이 나는 것인데… 옛날에는 기와가 얼어 터지는 것이 늘 문제가 돼 강도를 높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죠. 그러다 보니 색은 뒷전이고, 아무튼 90년대에 보급된 일본가마가 기와를 망쳐놓았어요.” 재래식 기와는 장작불로 일주일에서 열흘 간 구운 뒤 식히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가마에서 꺼낸 기와를 다시 모래구덩이에 묻어 천천히 식혔다. 그런데 요즘은 3일이면 완성돼 지붕에 올라간다. 가마를 열고 그냥 꺼내버리기 때문이다.

흙과 불 사랑한‘기와장이’
“선조들이 몰라서 그렇게 했겠습니까? 천천히 식혀야 한여름 뙤약볕에 달았던 기와가 갑작스런 소나기에도 터지질 않아요. 요즘 기와는 강도는 세졌지만 오히려 열파(熱破)가 걱정이죠.”

제대로 만든 옛기와는 수백년 된 집이 헐려도 다시 가져다 쓸 만큼 견고한데, 요즘 기와 수명은 길어야 20년이다. 그런데도 수지타산 때문에 전통방식이 잊혀가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황금색 자기기와라는 초유의 기와를 개발해, 충북 단양 구인사(求仁寺) 대조사전 지붕 위에 얹은 지 3개월. 15년 동안 황금기와 개발에 매달리면서 망쳐버린 건강을 추스르는 동안에도 오세필씨 머리 속엔 ‘전통기와 복원’에 대한 구상이 떠나질 않았다. 그것이 위로 세 분의 형님 대신 말썽꾼 막내에게 가업을 물려준 아버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면 동상리 1209번지 동광기와. 4대째 내려오는 기와공장은 임진왜란 후 울산에 정착한 해주 오씨 집안의 가업이다. 처음에는 그 지역 지주였던 오씨 집안의 필요로 조그맣게 기와가마를 설치했으나 증조부 때부터 공장체제로 바뀌었다.

기와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흙, 물, 나무의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 울산은 적어도 흙과 물은 풍부했다.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라 침전된 고운 점토가 많았고 중심에는 태화강이 흘러 기와공장에는 그만이었다.

오세필씨의 아버지가 서울로 ‘유학’ 보냈던 아들을 불러들인 것이 1973년.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국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가 복원되고 불국사 등이 전면 개보수되던 때였다. 문화재관리국에 등록한 동광기와에 주문이 밀어닥쳤다. 더구나 78년 이곳에도 고속도로가 개통돼 전국으로 판로가 열리면서 기와산업은 번창했다.

이 무렵 평범한 기와공장 사장으로 살아가던 오세필씨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건이 있었다. 1983년 구인사 2대 종정이었던 대충 스님이 그곳에 기와를 납품하던 오씨를 불러 넌지시 “황금기와를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대조사전 건립추진위가 구성된 것이 2년 뒤인 85년이니까 큰스님은 앞을 내다보고 오씨에게 미리 지시한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황금기와였지만 오씨는 그때만 해도 길어야 3년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웬걸, 세상에는 기와에 어울리는 황금유약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약 중 황금결정유약이라는 게 있다는 말을 들었지요. 유약을 발라 구우면 꽃이 피듯 결정이 맺혀 퍼지면서 황금색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는 도공들은 다 모셔다 실험을 해도 황금기와는 번번이 실패였습니다. 도자기에 발랐을 때는 제색깔이 나와도 기와에 바르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약이 떡처럼 들러붙거나 새까맣게 타버렸죠.”

교과서에도 안 나오니 오씨가 직접 구워가면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유약의 배합을 달리하고, 흙을 바꿔보고, 가마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심지어 반죽하는 물을 바꿔가면서 하나하나 결과를 기록했다. 황금기와는 보통 검정기와 만드는 흙이 아니라 백자를 만드는 도자기 흙으로 빚어 1300℃의 고온에서 굽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기와와는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기와 두께가 너무 얇으면 굽는 도중 뒤틀려버렸고 너무 두꺼우면 지붕에 부담이 돼 적절한 두께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비슷하게 황금색이 나왔다 싶으면 소백산으로 달려가 큰스님 앞에 내보였다. 그때마다 큰스님은 “네가 황금색이라고 생각하면 됐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씀만 하셨다. “그만하면 됐으니 그대로 기와를 만들라는 것인지, 너무 고생을 하니 그만두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93년 큰스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포기하자고 마음먹은 것이 수십 차례인데, 이상한 것이 꼭 그때마다 전보다 좀더 그럴듯한 황금기와가 구워져 나오는 겁니다. 욕심이 생기니 포기할 수 없었죠.”

오씨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것이 98년. 황금기와를 굽기 시작한 지 15년 만이었다. “가을 들판의 곡식이 누렇게 익으면 제 가슴도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저런 황금색인데’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거죠. 15년 동안 잠 한 번 편히 잘 수 없었습니다. 가마에 불을 땔 때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지켜보면서 온도를 올려주고 연기를 적절하게 가두었다가 제때 빼줘야 원하는 색이 나오니까요. 가마 불을 살피다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자고, 그러다 입이 돌아간 적도 있어요.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폐를 못쓰게 됐죠.”

그렇게 정성을 기울였어도 황금기와의 성공확률은 50%를 넘지 않았다. 구인사 대조사전에 쓰일 3만여장의 기와를 굽기 위해 그는 곱절 이상을 구워내고 버리고 또 구워냈다. 이렇게 구워낸 황금기와의 가격은 보통기와의 10배쯤 되지만 그 기와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고충은 100배쯤 됐다. 도무지 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였다.

황금기와를 만들면서 오씨의 기와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졌다. 이제 남은 일은 전통기와를 재현하는 것. 앞으로 일할 날을 10년으로 잡았을 때 황금기와 집을 두세 군데 더 짓고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기와를 문화재급 건물에 얹으면 그것으로 기와장이 인생은 족하다고 말한다. 자진해서 가업을 물려받겠다고 나서는 조카라도 있으면 모를까 힘든 이 일을 물려주기도 겁난다고.

“기와는 흙으로 굽는 숯이에요. 요즘 숯이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아시죠? 왜 좋은가요? 먼지는 빨아들여서 걸러주고 수분을 머금어주니까요. 기와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기와지붕은 우리 머리 위에 설치된 공기청정장치나 마찬가지예요. 또 기와를 이을 때 다져 넣는 흙도 적절하게 수분을 머금었다 내뿜어 주는 기능을 합니다. 집이 숨을 쉬는 거죠.”





주간동아 2001.02.22 272호 (p80~81)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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