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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새해엔 ‘삶의 질’ 을 생각하자

  • 한수산 (작가·세종대 교수)

새해엔 ‘삶의 질’ 을 생각하자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떠나간 기차는 아름답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었다. 왜 지나가 버린 것은 아름다운 것일까. 그것이 ‘지금 여기에’라는 현재성 위에 있을 때와는 달리 아름다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어쩌면 지나가 버렸다는 그 비현실성이 가진 힘이며 속임수인지도 모른다. 위대한 착각일 수도 있다.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며, 저마다 가질 가슴 벅찬 감회와 회한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 있어 지난 한해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한해는 아니었을까. 개인적인 사연들이 아니더라도 지난 한해 동안 나는, 왜 우리는 이렇게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참 많이 우울했다.

일상적으로 느껴지던 그 우울한 분노에는 나날이 황폐해지는 삶의 환경이 있었다. 눈 둘 곳 없는 거리, 삶의 질이 낮아져만 가는 주거환경들도 그 속에는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거리의 간판들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눈 둘 곳이 없어져 버렸다. 몇 년 사이에 왜 저러는가 싶게 거리의 간판들이 커져 버렸다. 시민을 모조리 근시로 안다 해도 이럴 수는 없다.

그 가운데서도 약국간판과 식당간판들은 해도 너무한다.



의약분업 와중에서 약사들이 단합한 것 중 하나가 간판을 무시무시하게 크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이럴 수 있나 싶은 것이 요즈음 약국들의 간판이다. 길이가 2m는 되는 글자들로 약, 약, 약, 약…하며 써놓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나 싶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간판을 걸어놓는 약사들의 시민의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간판문제는 시골 어디에 가도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는 또 식당간판들이 거의 자연훼손에 가까운 추태를 벌이고 있다. 아예 옛날의 봉화대라도 되는 듯 그 크기부터 쳐다보기에 고개가 아플 정도다. 낙동강가든, 추풍령가든, 남한강가든, 치악산가든에 서울가든, 대전가든, 목포가든으로 없는 가든이 없는데 여기에 ‘정원가든’까지 있으니! 이제 가든이라는 외래어는 한국말이 되어 ‘소 돼지 닭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고기를 구워먹는 식당’이라고 시민권을 얻어가고 있다.

삶의 질을 점점 낮추어 가는 주택가의 모습은 또 어떤가. 살수록 정이 깊어가고 인정이 넘치는 골목이란 이제 없다. 주택을 헐어 3층 5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지어댄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열악한 주거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꼴이 되었다. 한집이 차 세우던 곳에 6대나 8대의 승용차가 들어서게 만드니, 골목은 주차전쟁으로 살벌하고, 삶의 질은 황폐해져 갈 뿐이다. 그리고 이런 하향지향을 정부의 정책이 부추기고 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는 이제 그만

20년을 살던 정든 집을 떠나 이사하게 된 것도 이런 주거문화의 저질화를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우리 뒷집만 해도 그렇다. 단독주택을 헐고 다가구 연립을 올렸는데 8세대가 입주한 이 건물에 주차시설은 단 3대뿐이었다. 정책이 그렇다나, 잘도 준공검사가 나왔다. 그러니 골목 꼴이 무엇이 되었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제 얼굴에 침을 뱉어가며 살아야 하는가. 왜 점점 사회는 부패해 가고 삶의 질은 떨어지는가. 이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가 아무 의식도 없이 해나간다. 새해에 희망이 있다면 오직 하나다. ‘우리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는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내도록 합시다’하는 그 한마디다.

‘시간이 간다’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가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고 시간은 여기에 영원하리라는 독일의 묘비명이 있다. 우리가 가고 있다는 인식이 없을 때 새해 새 달력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우리가 가고 있기에 희망도 필요하고, 그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의 질과 결을 내일에 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도 희망은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주간동아 2001.01.04 266호 (p100~100)

한수산 (작가·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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