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2000.11.02

“글쎄요”“예 or 아니오” 동서양 가치관의 차이

  • 입력2005-05-17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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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더 드시지요?” “글쎄요, 배가 부른데…. 그럼 조금만 더!”

    “지금 바쁘세요?” “글쎄요, 조금! 왜 그러시는데요?”

    “지금 시간 있으세요?” “ 글쎄요, 지금은 좀….”

    주위에서 많이 듣고 또한 응답해온 표현들이다.

    반면에 서구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No, thanks’(아니요, 됐습니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어떨 때는 박절하다고 느낄 정도로 그들은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 재차 권유를 해도 답은 마찬가지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라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한국식 예의와 서양식 매너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체면을 대인관계의 우선가치로 여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 그리고 중남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예의’의 의미가 상대방의 ‘체면’과 직결된다. 다시 말해 위의 지역에서는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는 행위를 흔히들 ‘예의바르다’ 또는 ‘싹싹하다’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러기에 면전에서 거절을 잘 하면 ‘인간미가 없다’ 또는 ‘이기적이다’라고 치부하고 따돌린다. 또한 예의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을 향한 아랫사람의 공손한 태도로 국한된다. 따라서 ‘예의가 바르다’란 표현은 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칭찬의 갈래다. 즉, 한국적인 문화에서 예의는 문제 해결 차원이 아니라 상대방이 누군지, 상대방의 기분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등에 초점에 맞춰지는 것이다.

    반면에 효율을 우선가치로 여기는 북미나 서구 유럽의 사람들에게 매너는 직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한 수평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는다. 미국 클리블랜드의 도시 노동자나 백악관의 클린턴이나 북부의 백인이나 남부의 흑인이나 할 것 없이 공히 지켜야 하는 평등의 개념으로 매너를 보고 있기에 사람보다는 문제 그 자체의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면전에서 거절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차원이 아니라 문제만을 객관화해 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초대돼 갔다. 학교 강당에 걸려 있는 교훈이 눈에 선뜻 들어온다. ‘협력과 사랑 그리고 ‘단정적일 것’(Assertiveness)이다. 대인관계 전반에 걸쳐 ‘예’ ‘아니오’ 등의 단정적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좋은 매너라고, 좋은 태도라고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21세기의 매너는 거절입니까, 아니면 체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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