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2000.11.02

‘온라인 귀족’만의 우울한 미래 오는가

‘디지털 엘리트’ 부 독점 갈수록 심화 …정보 불균형 해소 심각한 사회 문제로

  • 입력2005-05-16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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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엄격한’ 회원제로 상류층을 주 타깃으로 설정한 ‘럭셔리(최고급) 포털 사이트’ 오트멤버스닷컴(hautemembers.com). 회원 자격 요건을 보면 일단 신라, 리츠 칼튼, 하얏트 등의 특급 호텔 휘트니스 회원이어야 한다. 이것도 아니면 서울 주요 백화점 본점의 VIP 고객이거나, 주요 스포츠클럽의 정회원이어야 한다. 회계사 컨설턴트 벤처 CEO 등의 ‘골드칼라’여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자격 요건으로 추가된 것은 서초 가든 스위트, 아크로빌 등 서울 강남의 ‘사이버 럭셔리 아파트’ 거주자여야 한다는 사실. 이제는 살고 있는 아파트도 최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사이버 럭셔리 아파트’아니면 상류층에 끼지 못하는 것.

    이 사이트가 지향하는 바는 ‘차별화되고’ 깊이 있는 콘텐츠(정보), 인적 네트워크 구축, 고객맞춤 1대1 서비스, 유-무형의 상품 판매 등이다. 사실 이 사이트의 ‘차별화된’ 강조점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차별화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도 ‘그들만의 세상’을 형성하지만, 이제는 당연히 온라인에서도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간다. 아울러 각종 다양한 정보 역시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정보’로 머물게 된다.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의 2차 분화(分化) 현상이다. 정보 소외계층이 있든 말든, 그들이 컴맹과 넷맹에서 벗어나든 말든 사회의 한쪽에서 이렇게 또 다른 ‘디바이드’(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정보’에 머물러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인근 아파트에 사는 송수미(12), 송유미(11) 자매. 초등학교 6학년, 5학년인 이들 자매는 각종 사이트의 ID가 10여 개나 된다. 이 아파트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이 주로 모여 살기 때문에 디지털 환경이 매우 좋은 편이다. 수미와 유미 역시 방과 후 집에 오자마자 e-메일을 체크하는 일부터 한다. 숙제하느라 정보 검색하고 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하루 서너 시간 이상은 컴퓨터와 함께 보낸다. 요즘은 홈페이지 제작 방법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지난 10월18일 밤 성남시 아마존 유흥주점에서 일하다 불에 타 숨진 유모씨(37·여)가 단란주점에 나오게 된 동기는 컴퓨터였다. 중학교 1학년 딸이 며칠 전부터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자 목돈 마련을 위해 불과 이틀 전부터 일을 시작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



    사실 PC방에 몰리는 청소년들은 집에 컴퓨터가 없거나, 있어도 ADSL 등의 초고속통신망이 설치돼 있지 않아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나오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른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PC방에서 만난 인창중 2학년 이명환군(가명·13)은 “곧 학교에 컴퓨터 교실이 생길 예정이지만 가기 싫다. 컴퓨터가 없다는 게 탄로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없으면 왕따당한다”고 말한다. 이군은 “용돈 아껴서 PC방에 온다”고 했다. 대신중 3학년 김영문군(15·가명)도 “집에 컴퓨터 놓을 공간도 사실은 없지만 용량이 작은 컴퓨터를 쓰느니 차라리 PC방에 오는 게 낫다”면서 “컴퓨터가 없어 완전 컴맹으로 담쌓고 지내는 친구들도 꽤 된다”고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www.seri.org)가 지난 3월 발표한 1/4분기 소비자 분석에 따르면 대졸 이상 인터넷 이용률은 48.2%에 달한 반면, 중졸 이하는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간소득 3000만원 이상의 소득층 이용률이 36.7%인 데 반해 1000만원 이하 계층은 불과 5.6%였다. 컴퓨터 보유율도 3000만원 이상 소득층은 90.8%였으나, 저소득층은 31.7%였다.

    지난 19일 폐막한 세계지식포럼 ‘글로벌 날리지 파트너십’(GKP) 총회에서 세계은행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민간부문 개발담당 수석경제학자로 있는 사하 데번 메야나단은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 속도와 관련되고 궁극적으로는 소득 격차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사실 디지털 격차, 이로 인한 정보 격차가 곧 소득 격차라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인터넷폰으로 해외전화까지 무료로 사용하는 집은 그렇지 못한 집에 비해 생활비 지출내역에서 전화비 명목이 거의 빠지게 된다.

    그러나 정말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격차가 부의 세습마저도 확고하게 강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메야나단도 “‘가진 자’의 자리를 현재는 ‘네트워크 이용자’가 차지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못 가진 자로 남는다”고 강조했다.

    포털 사이트 인티즌(intizen)의 박태웅 대표는 “지금처럼 자산과 노하우가 뒤섞인 ‘퓨전’ 시대에는 부의 원천에 접근하는 자격을 이미 부를 가진 사람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정보통신의 발달과 그 수혜의 격차가 이미 귀족이거나 많은 농경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요구했던 부의 1세대로 회귀시키고 있다는 것. 이민화 메디슨 회장도 “디지털 디바이드의 위력은 기존 산업화 시대의 불균형에 비해 약 30배의 위력이 있다”고 단언한다.

    “산업화 시대 불균형에 비해 30배의 위력”

    민주당 김효석 의원의 ‘정보취약집단 부류 및 소외계층 정보화를 위한 실태조사’(미발표`-`‘표 2’ 참조)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적 정보취약집단의 인구 규모는 1963만명 정도. 2000년 추정인구 4727만명 대비 41.5%에 달한다. 인구의 절반 가량이 정보소외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이 자료는 또 컴퓨터 주 사용계층인 사무직을 제외한 나머지 6개 집단(농어업, 기능-생산직, 판매-서비스직, 전업주부 등)의 인터넷 사용자는 불과 397만여 명(16.8%)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터넷 사용인구가 1600만명에서 1800만명에 달한다는 수치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한 국가 내에서 빈부의 편차는 결국 끝없는 사회 불안정의 주 원인이 된다. 각 국가들이 디지털 디바이드의 해소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미국의 경우도 농촌지역의 초고속통신서비스 제공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10%의 세금공제 혜택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농촌지역 초고속정보통신 현대화 법안’(2000년 3월 상원 제출) 등 각종 법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법안들의 취지는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제공한다’는 미국 통신법 ‘보편적 서비스의 원리’에 기초하고있다.

    우리나라도 연초에 정부가 4500억원을 투자하는 ‘사이버코리아21’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민주당이 지난 9월 ‘정보화 소외계층 대책 정책기획단’(단장 김효석 의원)을 발족하고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가칭) 마련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인터뷰 기사 참조).

    그러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이런 노력들이 빈부격차 자체를 얼마나 줄여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세계은행 지식네트워크 담당 매니저인 필립 카프 같은 사람은 앞으로 5∼10년에 엄청난 기술혁명이 일어나 기존 정보혁명을 초라하게 만드는 등 디지털 디바이드가 해소될 것이란 ‘기술낙관론’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 5∼10년에 벌어질 각종 격차는 과연 어떻게 될까.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지난 10년 동안의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유일한 변화가 ‘마냥 더욱 가난해지는 것’뿐이었듯, 정보 격차의 해소가 빈부격차의 해소로 이어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보 소외계층이 정보기기에 대한 접근성을 줄여나가는 동안 이미 정보기기와 그로 인한 정보를 선점한 계층은 또 다른 고부가가치의 영역으로 줄달음칠 것이기 때문이다.

    인티즌 박태웅 대표는 “방향에 관한 아무런 합의 없이 기술은 자신의 논리대로 발전하는 경향성이 디지털 디바이드의 확대에 온전히 기여한다”면서 “그것은 우울한 미래”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 사회의 시민을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기성의 조립된 영상만 보는 ‘프롤렉스’, 컴퓨터를 수동적으로만 이용하는 ‘프티부르주아’, 정보기술에 능통한 ‘노멘클라투라’의 세 계층으로 분류한다. ‘노멘클라투라’는 정보혁명 이전에도 귀족이거나 지주계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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