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3

2000.10.05

중국은 지금 ‘부패와 전쟁 중’

당 고급 간부 거액 수뢰 등 비리 만연…주룽지 총리 “부패 근절” 선언

  • 입력2005-06-22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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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지금 ‘부패와 전쟁 중’
    세계적 명승지 중국의 구이린(桂林). 이 절경의 고장이 요즘 희대의 부패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구이린이 속해 있는 광시성의 주석 청커지에가 내연의 처와 짜고 엄청난 부정부패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중국 최대의 소수민족인 ‘장족’ 출신 청커지에는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광시성에서 ‘광시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지난 92년 유부녀였던 리핑을 만나면서부터 두 사람은 각자 이혼한 뒤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부정부패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92년부터 98년까지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편의를 제공하고 관리들의 승진인사를 시켜준 대가로 2912만5000위엔(약 40억원)과 3만5000달러, 804만홍콩달러를 뇌물로 받았다.

    이는 중국 정부 수립 이래 당의 고급간부가 연루된 부패사건 중 최대 규모였다. 또 이 사건으로 인해 청커지에가 사형집행됨으로써 부패사건으로 인해 사형된 사람 중 최고위 인사로 기록됐다.

    중국의 부패 현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권(錢權) 교역’, 돈과 권력을 바꾼다는 이 표현은 ‘일상어’가 된 지 오래다. 별 뒷배경이 없는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관공서에 가면 관리들은 으레 “옌지우(硏究), 옌지우”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연구해보자”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이 말이 사실상 ‘거부’의 의미이며 그 ‘거부’를 ‘승인’으로 바꾸려면 반드시 뇌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뇌물이 있으면 될 수 없는 일도 이뤄지고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일도 금방 해낼 수 있게 된다. 중국에서 술집과 식당이 그토록 번창하는 이유도 무수히 많은 접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상하이나 베이징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후코우’라는 시민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길거리의 가로수조차 일련 번호를 매겨 관공서에서 관리한다. 이렇듯 개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몽땅 ‘관리’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끝이 없어 보인다. 모든 인허가는 정부에 의해 철저히 장악되어 있다.

    당연히 인허가 단계마다 뇌물이 오가기 쉽다. 역사적으로 법치보다 인치(人治)를 중시하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콴시’(關係)를 중시하는 사회구조가 부정부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원과 관료들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는 ‘두려움’과 함께 ‘부정부패’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중국은 부정부패로 인한 비효율적 사회구조 때문에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지출해 왔으며, 관리들의 부패는 이제 중국의 발전 자체를 가로막는 커다란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생과 사의 선택’(生死抉擇)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상하이에서만 무려 1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을 비롯, 전국적으로 성황을 이루는 사실에서도 일반인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뿌리깊은 염증을 읽을 수 있다.

    “관을 열 개 준비하더라도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는 주룽지 총리의 발언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의 반영이자 위기의식의 표출이라고 풀이된다.

    중국 정부가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과시하며 ‘청커지에 사건’을 각종 언론매체를 동원해 부각시켜 대대적인 켐페인에 나서고 있지만, 청커지에가 중국 정치의 실세인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 인사였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큰 부정부패가 곳곳에 만연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닭을 잡아서 원숭이에게 보여준다”는 냉소적인 말까지 나온다. 별 큰 일도 아닌 것으로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는 의미다.

    이제 ‘부정부패로부터의 탈출’은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여부와 함께 중국 지도부의 지도력을 가늠짓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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