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3

2000.10.05

“실리콘밸리 진출 돕습니다”

벤처아카데미 재단…국내 벤처에 ‘비즈니스 인프라’ 노하우 ‘공짜’ 전수

  • 입력2005-06-22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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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콘밸리 진출 돕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비전을 나눈다’.

    벤처아카데미재단(이사장 리처드 대셔)의 모토다. 이 재단은 국내 유망 벤처기업의 글로벌화 및 실리콘밸리 진출을 돕고 예비 기업가들에게 비즈니스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취지로 9월 초 실리콘밸리에 설립됐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하이테크 기업가들에게 ‘글로벌한’ 비즈니스 기회를 주는 것, 국내 유망 기업을 골라 국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와 마케팅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 등이 재단 설립의 취지다. “오랜 성공 노하우를 가진 실리콘밸리 지역의 ‘무형의 비즈니스 인프라’를 한국 기업들에 제공하고 싶다”고 대셔 이사장은 말한다.

    ‘무형의 비즈니스 인프라’는 고속 네트워크나 번듯한 사무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비즈니스 인맥(人脈)과 제휴 관행, 마케팅 노하우, 기업 문화 등에 대한 이해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셔 이사장은 “실리콘밸리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광범위한 정보망과 인적 네트워크야말로 벤처아카데미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자랑한다.

    “인터넷 비즈니스에 잘 맞는 국민성”

    스탠퍼드대 산하 통합시스템센터(CIS)와 미-일 기술경영센터의 소장이기도 한 리처드 대셔 교수는 80년대 중반부터 일본과 한국, 대만 등지를 섭렵한 아시아통(通)이다. 특히 인터넷 상용화 초기인 90년대 중반에는 일본 NTT와 함께 일본 가이드 사이트인 ‘저팬 윈도’(Japan Windows)를 만들었을 만큼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일본을 드나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싹텄다. 86~90년 5년 동안 일본과 한국에 있는 미 국무성 트레이닝센터 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면서도 문화적으로는 매우 다른 나라들”이라는 대셔 교수는 “일본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의사 표현이 직설적이고 솔직하며 매사에 정력적”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에 잘 맞는 국민성”이라는 것.

    벤처아카데미는 그러한 대셔 교수의 ‘발견’과, 실리콘밸리 진출에 대한 국내 벤처기업들의 ‘수요’를 읽은 두 한국계 미국인 벤처기업가들의 제안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세미벤처의 제이슨 정 사장과 BERG@SV의 이미란 사장은 둘 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벌여온 벤처기업가들. 그간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돕거나, 국내 창업투자사들에 미국의 유망 신생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왔다. 정사장은 “미국의 기업 문화나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무모하게 뛰어들려는 국내 기업이 의외로 많다”며 “충분한 사전지식 없는 진출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강조한다.

    이미란 사장도 같은 생각이다. “현지에 사무실 하나 덜렁 내놓고 실리콘밸리에 진출했다고 자랑하는 국내 기업이 없지 않다”며 “그런 경우, 코스닥 주가를 의식한 국내용 광고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녀는 중학생 때 도미, 고등학교와 대학을 현지에서 마쳤다. 고교 시절에는 소수 민족 학생들을 위한 클럽을 결성, 교내 최대 단체로 키울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백인이나 흑인들을 위한 클럽은 있는데 한국인이나 아시아계 학생들을 위한 단체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하나 만든 거죠.”

    대학을 나온 뒤에는 네티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터넷 기업을 차렸고, 얼마 뒤 아이팝콘(iPopCorn)이라는 콘텐트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팔았다. 지금은 하이테크 비즈니스 교육 기업인 BERG@SV를 운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겪은 시행착오들이 벤처아카데미를 꾸려나가는 데 좋은 자산이 될 것”이라고 이사장은 말한다.

    벤처아카데미는 현재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초보’ 벤처기업가들에 대한 선도(善導·men-torship) 서비스를 비롯해 하이테크 기업가들에 대한 조언 및 지도(Coaching) 서비스, 비즈니스에 필요한 인적-물적 네트워킹 및 커뮤니티 서비스 등이 그것. 대학생이나 예비 기업가들에 대한 ‘직업 교육’ 서비스도 기획중이다. 이는 군대의 신병훈련소(Bootcamp) 같은 것으로, 일정 기간의 합숙을 통해 비즈니스 감각과 실무를 익히게 하는 일종의 강화 프로그램이다. 지난 9월19일 서울대 벤처동아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트캠프의 첫 단추를 꿰었다.

    가까운 미래의 기술 흐름을 미리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비전 시리즈 2010’도 벤처아카데미의 주요 사업 중 하나. 2010이라는 꼬리표는 ‘적어도 10년 앞의 기술을 미리 짚어보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지난 9월22일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와이어리스(Wireless) 2010’을 시작으로, 내년 봄에는 실리콘밸리에서 광학기술과 네트워크 문제를 다룬 ‘광학 및 네트워크(Fiber Optics & Networks) 2010’을 개최할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벤처아카데미가 비영리라는 사실이다. 제이슨 정 사장은 “영리 사업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기업가나 벤처 투자가들이 거부감을 보일 수 있고, 각계의 광범위한 지원을 얻기도 매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번 서울 행사에 앨 고어 미 대통령 후보, 윌리 브라운 샌프란시스코 시장, 바버라 박서 상원의원 등 유력인사가 축사를 보내올 수 있었던 것도 ‘비영리’를 내세운 덕택이었다는 것.

    대셔 교수는 “한국이 인터넷 시대의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풍토와 경영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벤처아카데미를 통해 실리콘밸리 진출에 필요한 ‘무형의 비즈니스 인프라’를 한국 기업들에 제공하겠다”는 것. “한국인 특유의 저돌성과 에너지, 기술력, 빠른 속도 등을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문화와 잘 조화시키기만 한다면 많은 한국 벤처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셔 교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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