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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

미국 대통령 41명의 종합성적표

미국 대통령 41명의 종합성적표

미국 대통령 41명의 종합성적표
남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 있을까. 성적표 하면 형편 없는 점수 때문에 부모 몰래 도장 찍어갈 방법만 궁리하며 전전긍긍하던 기억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쯤 되면 국민 앞에 성적을 속이고 슬쩍 넘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조사기관들이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대통령의 성적을 매기며, 그 결과는 언제나 만천하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 89년부터 활동해 온 ‘라이딩스-매기버 대통령 여론조사팀’의 평가결과다. 이 조사는 미국과 캐나다의 전문가 719명이 참여해 지도력, 업적과 위기관리능력, 정치력, 인사, 성격과 도덕성 등 5개 부문에 걸쳐 점수를 매긴 후 그것을 종합 집계해 다시 전체 순위를 매기는 입체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사결과부터 얘기하면 미국 건국 이래 41명의 대통령 중 꼴찌의 불명예는 평가자 대다수의 의견일치로 워런 하딩 대통령(29대)에게 돌아갔다. 지도력과 인사에서 꼴등을 했고, 업적과 위기관리능력, 성격과 도덕성 부문에서는 40위, 그나마 성적이 가장 좋은 인사부문에서 간신히 38위를 했다. 하딩 스스로도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아야 했다”고 고백할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최악의 대통령이었다.

반대로 1등의 영예는 세계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링컨 대통령이 거머쥐었다. 그에 대한 평가자들의 코멘트를 보면 ‘가장 큰 위기에서 미국을 구한’ ‘위대한 도덕적 지도자’ ‘폭넓은 전략적 통찰력과 창조적 지혜를 가진’ 등 찬사 일색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재임중인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적표. 그는 종합순위에서 칭찬도 꾸중도 듣지 않는 어중간한 성적(23위)을 차지했지만(부시는 22위), 성격과 도덕성 평가에서는 38위로 거의 꼴찌에 가깝다. 영어는 웬만큼 하는데 수학성적은 바닥을 기는, 과목당 편차가 큰 학생의 성적표를 떠올리면 된다.

또 아깝게 링컨에게 1위 자리를 내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32대)은 부문별 평가 중 성격과 도덕성 점수가 다른 점수에 비해 유난히 낮은 것(15위)이 눈에 띈다. 평가자들은 그를 20세기에 가장 능력있는 대통령으로 꼽으면서도 ‘독단적이고’ ‘정도를 벗어나고’ ‘뻔뻔스러운’ 성격에 대해서는 냉정한 점수를 주었다. 또 대중적 인기가 높은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종합순위 15위로 상위권 그룹에 끼였지만 성격과 도덕성은 34위, 업적과 위기관리능력은 16위에 불과했다. 평가자 중에는 그에 대해 “모든 스타일에서 속 빈 강정”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몇 등을 했는지가 아니라, 미국사회가 왜 이처럼 줄기차게 대통령에 대한 평가작업을 하고 있는지다. 이 책을 번역한 김형곤 교수(건양대·미국사)는 “이런 대통령 평가작업이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물론, 세계사의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런 평가를 통해 대통령 자신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성공하고 신뢰받는 대통령을 선출하고 만들어나가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8대째 대통령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현직은 물론 퇴임 대통령까지도 평가가 부담스러운 우리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평가와 반성이 없다면 시행착오는 반복되게 마련이다. 늘 찍어주고 후회하는 우리 선거 풍토의 원인도 거기에 있다. “이미 임기를 끝낸 사람에게 돌은 던져 뭐하랴”는 식의 온정주의나 “언제 다시 권력을 잡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냉정한 평가와 반성의 기회를 가로막는다. 지금부터 지도력, 업적과 위기관리 능력, 정치력, 인사, 성격과 도덕성을 놓고 8명의 대통령에게 점수를 매겨보자. 물론 각 대통령이 직면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 윌리엄 라이딩스 2세·스튜어트 매기버 지음/ 김형곤 옮김/ 한언 펴냄/ 448쪽/ 9800원



주간동아 2000.09.21 252호 (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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