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2

2000.09.21

서태지 록 실험 ‘찬사 반 냉소 반’

“이해할 수 없는 음악” “역시 서태지” 컴백무대 엇갈린 반응

  • 입력2005-06-21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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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록 실험 ‘찬사 반 냉소 반’
    추석이었던 9월12일 저녁 어느 가정의 거실 풍경. 대학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이 서태지 컴백쇼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자연히 채널 선택권을 빼앗겨버린 아버지도 함께 앉아 쇼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서태지 등장. 어둠침침한 무대, 얼굴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빨간 머리를 연신 흔들어대며 괴성만 질러대는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먼저 “저게 뭐꼬?” 하곤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중-고교 시절 서태지 CD는 모조리 사 모으며 팬을 자처했던 누나는 30분쯤 노래를 들어보려고 애를 쓰다 마침내 포기하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툴툴댔다. 그러나 요즘 들어 록 음악에 심취한 남동생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황홀한 눈으로 쇼를 지켜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서태지가 짱이야!”

    4년7개월 만에 돌아온 서태지가 선보인 음악에 대한 세대 간의 반응은 이렇게 달랐다. 컴백

    쇼의 시청률은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 평균시청률보다 1.5배 정도 늘어난 17.2%. 연령별 개인시청률은 50대 이상이 11.7%로 가장 높았고, 10대 시청률은 11.5%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와 자녀의 동반 시청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성세대들은 “일개 가수가 몇 년 만에 귀국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 난리인가” 하면서도, 돌아온 서태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에 그의 쇼를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태지의 음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힙합 하드코어 펑크 슬래시 등 록의 온갖 장르가 뒤섞인 일명 ‘핌프 록’은 웬만큼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도 보도 못했을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그래서 그의 무대에는 귀에 착착 감기는 달콤한 노래말과 신나는 댄스 대신, 볼륨과 스피드를 극대화한 초강성 굉음과 사나운 포효만이 가득했다. 그의 열혈팬들조차 따라 부르지 못하는 노래들을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는 것.



    하긴 돌이켜보면 서태지는 한번도 주류의 음악을 택한 적이 없었다. 랩 헤비메탈 얼터너티브록 펑크 갱스터랩 등 그의 음악은 끊임없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데뷔 음반 이후 그는 지속적으로 저항적인 록의 세계로 다가가려는 시도를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기성세대와 보수집단으로부터 갖은 규제와 비난의 대상이 돼야 했다.

    이런 그의 음악적 속성은 정체를 용납하지 않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세대들의 감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낡은 것, 느린 것, 정지한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신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태지의 음악은 그래서 언제나 신세대들만의 것이었고 그는 소외된 젊은이들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울트라맨’(초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서태지는 사회에서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 입시 및 기타 모든 면에서 서열을 매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이른바 ‘제3그룹’의 대변인이다. 과거엔 말이 없었던 이들이 서태지와 함께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에게 서태지는 사회적 리더이고 희망의 상징이다”고 말한다.

    “1996년 은퇴 선언은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사과하고 싶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과한다”고 말한 서태지의 인터뷰에서도 임씨가 말한 서태지의 ‘제3그룹적’ 의식은 드러난다. 예전에도 서태지는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태지의 새 음반과 컴백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는 인터넷 방송국 ‘크레지오’의 한정석 PD는 “서태지는 이제 사회인이 되어버린 예전의 올드팬을 버리고, 10대 위주로 새로운 팬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 같다. 록 음악 형식과 스타일이 대중적으로 뿌리내리지 않은 지금의 사회적 토양에서는 진정으로 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의 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충격적인 데뷔에서 극적인 은퇴, 그리고 컴백까지 ‘가요계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처럼 서태지의 파급력과 영향력은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유효해보인다. 서태지의 은퇴 이후 한국 가요계는 철저한 기획 위주의 10대 아이들 스타의 난립으로 점철되었다. 더 이상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동시에 정상을 획득한 경우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여기에 없는’ 서태지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았다. 동시에 그의 음악은 대중음악계를 ‘뒤집어놓을’ 새로운 음악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게 됐고, 그것은 그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이제 돌아온 서태지가 과연 대중음악의 판도와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우리 대중음악계는 심각한 동맥경화 현상을 겪고 있고, 기획상품형 가수들이 난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태지의 컴백은 독창적 아티스트의 역량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비주류적 음악으로 주류시장을 공략하는 그 특유의 도전정신이 침체된 한국의 록 음악을 살리고 대중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본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서태지 컴백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면서도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몰고 올 순 없다. 컴백 자체에 과도한 기대를 갖고 장밋빛 전망을 갖기엔 아직 이르다”고 지적한다.

    그의 컴백을 기다린 사람들조차 오랜 잠적, 화려한 귀국, 공연 전의 007전략 등 서태지의 변함 없는 ‘숨기기’ ‘신비주의’ 전략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진정한 뮤지션이 되고 싶다지만 더 철저한 엔터테이너가 된 것 같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태지는 음반의 프로듀싱 마케팅 홍보 등 핵심 요인을 혼자 관장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끌어간다. 서태지란 상품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이는 다름 아닌 서태지다. ‘만들어지는’ 스타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들어가는’ 스타라는 점에서 그는 여느 대중 스타들과 궤를 달리하기는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은퇴 번복이야 서태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요즘 같은 때 귀신 같은 매니지먼트 전략은 벤치마킹의 대상일지언정 비난받아 마땅한 악덕은 아니다”(김창남 교수·성공회대 신방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음악으로만 평가받고 싶다지만 여전히 엔터테이너적인 자기 관리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소수자의 음악을 하는 진정한 뮤지션의 모습이 아니다”(문화평론가 이동연)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쉽게 끝나지 않을 서태지 논쟁. 그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음악세상을 이끌어간 천재’로 기억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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