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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6>|12·12사건 : 글라이스틴의 비밀전문

“최규하 정부 지지할 필요 있다”

한국 정치 개혁 최선의 방법…‘민주화 일정’ 차질 땐 좌시 않겠다 각오도

“최규하 정부 지지할 필요 있다”

“최규하 정부 지지할 필요 있다”
12·12사건은 많은 한국 국민에게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보다 더 큰 상처를 입힌 것 같다.’ 12·12사건 16일 후인 1979년 12월28일, 10·26과 12·12사건을 모두 겪은 당시 주한 미 대사 글라이스틴이 미 국무부에 타전한 2급 비밀 전문에서 내린 평가다.

12·12사건에 대한 글라이스틴의 입장은 두 가지였다. 첫째, 신군부의 등장 자체가 몹시 못마땅하긴 하지만 이를 다시 뒤집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둘째, 민간 정부에 의한 민주화 일정이 계속 추진돼야 하며, 신군부에 의해 이 민주화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은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신군부에 대한 주한 미 대사의 입장은 신군부를 다루는 방법론에서 사소한 차이가 있긴 했으나 신군부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이러스 밴스 미 국무장관 앞으로 타전한 1979년 12월28일자 비밀 전문에서 글라이스틴은 신군부를 보는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가 얼마나 오래갈지 본인도 모르겠음. 새로운 지도부가 스스로 온건하게 처신한다면 폭력적인 반격 사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으나, 본인은 여전히 걱정스러움. 한국 상황에 심각하고 새로운 불안정 요소가 끼어들었고 매우 위험한 전례가 한국군 내에 남겨지게 된 것임. (중략)

사태 주동자들을 2주 동안이나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아직도 서울의 12·12사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음.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일단의 육군 장군들이 반항해 재빠르게 기존의 육군과 군부 내 위계질서를 제거한 후, 군부를 통제하는 모든 요직을 자신들이 차지했다는 것임.’



글라이스틴은 이 전문에서 신군부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질서’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는 등 한국의 사태 변화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문서는 12월12일 이후 신군부가 거의 아무런 저항 세력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권력을 거머쥔 것으로 평가돼온 기존의 시각과 달리, 사실은 거사가 성사된 후 2주가 지날 때까지도 모든 상황이 불투명했다는 것을 미국의 시각을 통해 알 수 있게 한다. 상황 변동의 가능성에 대해 글라이스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음. 예를 들어, 저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또는 저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도전을 할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음. 권력 찬탈자들(power grabbers)은 어쨌든 성공을 거두었음.’

‘신군부의 정치 철학은 유신 체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라고 묘사한 글라이스틴은, 사태 당시 신군부 못지않게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던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최규하 대통령의 속내를 이렇게 읽고 있었다.

‘최는 꼭두각시가 되거나 국민의 존경심을 잃지 않고도 새로 등장한 결사체(combination)와 공존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가정하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음.’

글라이스틴 대사는 또 A4 용지 10장에 달하는 장문의 이 비밀 전문에서 최근 사태에 대처하면서 특히 네 가지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현 사태에서 특히 네 가지 점에서 놀랐음. 첫째, 민간 정부를 유지하고 정치 일정을 발전시키며 외부 세계에 대해 자신감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현저하고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 둘째, 군부 내에서 서로 살상을 저지르는 충돌의 위험성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음. 셋째, 일반 대중 사이에 도대체 군을 통제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의구심 때문에 불확실성이 점증되고 있음. 넷째,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 한 박정희가 제거됨으로써 여러 부문끼리 협상하고 타협하는 정치 과정을 담아낼 만한 기반이 거의 없음. 이와 유사하게 박정희 부재 상태에서 여러 분파의 규율을 잡아갈 만한 원로가 군부 내에 없음.’

미국과 신군부의 관계 정립 및 미국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도 글라이스틴은 명백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상호 의사 전달과 타협의 과정에서 거의 모든 요소가 미국으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한국 국내 문제인 이번 사태에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음. 우리도 도움을 주려는 노력은 하고 있음.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백하게 제한돼 있고,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앞서 나갈 경우 한국이나 우리 자신에게도 커다란 위험이 될 것임.’

미국은 12·12사건을 통한 신군부의 등장을 표면적으로는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군부 내 반발 세력의 동향,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명확한 거사 동기 및 향후 의도 등 사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사태 발생 2주가 지났지만 미국은 ‘신군부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12·12사건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등 글라이스틴의 표현대로 신군부의 의도에 대한 확신이 서 있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으리라는, 미 국익 확보의 저지선은 확보해 놓고 있었다.

‘박정희 시해 사건이나 12·12사건이 한국에서의 우리의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변화시키지는 않았음. 안정이 유지되고, 대다수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 발전이 진행된다면 안보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최선의 상태가 유지될 것임.

한국인들이 국제사회에서 미국 없이는 안보-정치-경제적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국내의 간극을 잇는 데 (최소한 당분간만이라도) 그렇게 결정적이진 않지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종전보다 더 커졌음.’

글라이스틴은 이 전문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맺었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한국 현안을 다룰 때 다음과 같은 일반 지침을 활용할 것을 권함.

(A) 정치 개혁 목적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최규하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함. 이는 우리가 현 정부와 정상적인 관계를 추진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또 현 정부가 군부 음모자들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전 박정희 정부의 영구화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 한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응징하지(Punishing) 않는다는 것을 뜻함.

(B) 신군부를 인정하거나 대안 정치구조로 합법화하지 않기 위해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협상을 함.

(C) 최근 사태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적절하고 지속적으로 전달하되, 우리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관심을 표명함.’

12·12사건은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과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미군의 입장에서 볼 때 하극상이었다. 이 점은 글라이스틴이나 주한 미 8군 사령관 위컴에 의해 이미 신군부에 전달되었다. 그런 점에서 12·12는 한국 국내 문제이기도 했지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한미간의 문제이기도 했다.

군사적인 측면 외에 12·12사건으로 한미 양자간에 발생한 문제가 무엇이며, 미국이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안을 워싱턴에 제시하는 것도 주한 미 대사 글라이스틴의 몫이었다. 다음 호에 소개할 1980년 1월29일자 국무부 2급 비밀(Secret) 문서가 글라이스틴의 이런 분석을 담고 있다.



주간동아 2000.09.14 251호 (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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