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1

2000.09.14

자동차 가격 인상 ‘엄살’ 심하다

배기가스 규제로 10월 출고부터 가격 올릴 계획…소비자에게 덤터기 씌우기 의혹

  • 입력2005-06-17 11: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자동차 가격 인상 ‘엄살’ 심하다
    만만한 게 소비자! 최근 자동차업체들이 자동차값 인상 움직임을 보이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현대-기아차가 미국시장에서 보증기간 연장 등 국내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주면서 국내에서는 오히려 가격 인상을 시도한다는 데 대해 불만이 집중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10월1일부터 기존 양산차량에도 ‘코리아 2000 환경규제’가 적용되면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승용차의 경우 대당 30만~50만원 가량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것. 이에 따라 현대 대우 기아 등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원가 상승 요인 가운데 상당 부분을 10월 이후 출고되는 차값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 판매 담당 임원은 8월 말 만나 가격 인상폭을 놓고 탐색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 홍보담당 유종진 이사는 “원가 상승 요인 발생에 따라 차값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인상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우자동차 김종도 이사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인상 요인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차값 인상 문제와 관련해 국내시장을 60% 이상 점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먼저 치고 나가고 대우차는 그 뒤를 따르는 형식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적정한 범위 내에서 추가 부담해야 한다면 이를 마다할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업계의 가격인상 불가피론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느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동차 회사의 주장은 상당히 과장돼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이번 기회에 방만한 차입경영으로 인한 낮은 수익성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와 같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부당하게 가격을 결정-유지-변경하는 경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 독점정책과 장득수 서기관은 “자동차 회사들이 아직 가격 인상을 단행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사실 확인 및 회사측의 해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단할 사안이어서 아직은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코리아 2000 환경규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올 1월1일부터 새로 적용된 환경규제는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분진 매연 등을 과거보다 최대 30%까지 줄이고 소음도 현행 82dB에서 80dB로 낮추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배출가스 보증기간도 단계적으로 5년/8만km에서 10년/16만km로 연장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작년 하반기부터 선을 보인 현대의 트라제XG 아반떼XD 싼타페, 기아의 리오 스펙트라 옵티마 스포티지, 대우의 누비라Ⅱ 마티즈Ⅱ 레조 매그너스 등 신차는 모두 이 규정을 만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온 차들은 올 10월1일부터 이 규정이 적용된다.

    이같은 규정을 만족시키려면 어느 정도 원가 인상 요인이 생길까. 업계 관계자들은 배기가스 규제 강화가 엔진 설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배기가스 후처리장치, 즉 촉매에 백금 등 귀금속량을 조금 더 보강해주면 된다는 것. 촉매란 자동차 배기가스에 포함돼 있는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등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정화해주는 장치.

    국내 자동차 회사에 촉매를 공급하는 부품업체는 희성그룹 계열 희성엥겔하드와 오덱 등 두 곳. 이들 회사 관계자들은 촉매 납품 가격은 ‘예민한’ 문제라면서 밝히기를 꺼렸다. 자동차회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부품업체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회사 관계자들의 ‘실토’에 따르면 배기가스 규제 강화에 따른 촉매 가격 인상폭은 자동차 회사들의 ‘엄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재 생산을 중단한 구형 아반떼와 올해 초 나온 아반떼XD의 예를 들어보자. 오덱이 현대자동차에 공급하는 구형 아반떼 촉매 가격(애프터서비스용 부품으로만 공급하고 있다)은 8만원 수준. 반면 ‘코리아 2000 환경규제’를 만족시키는 아반떼XD용 촉매 가격은 10만~12만원에 불과하다. 고작 2만~4만원 차이다. 또 희성엥겔하드가 현대자동차에 공급하는 2.0ℓ급 EF쏘나타 DOHC엔진(내수용) 촉매 가격은 16만5000원. ‘코리아 2000 환경규제’에 맞춘 촉매 가격은 30만원 이하 수준.

    참고로 희성엥겔하드가 현대차에 공급하는 북미 수출용 아반떼XD 촉매 가격은 43만원 수준. 이는 북미지역 환경규제가 국내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는 북미지역의 97, 98년 수준에 불과하고, 2003년에나 가야 북미지역의 현재 규제 수준이 된다. 결국 자동차업계의 주장은 현재의 환경규제를 북미 수준으로 대폭 강화했을 때나 타당하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자동차 판매가격은 촉매 납품 가격 인상폭에 각종 세금 등 부대비용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촉매 가격 인상폭보다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인한 차값 인상폭은 차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0만원 안팎이고, 자동차업계가 거론하는 30만~50만원은 자동차업계가 소비자 부담 증가를 명분으로 환경부의 배기가스 규제 강화를 조금 더 늦추기 위해 엄포용으로 들고 나왔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원가 인상요인을 모두 판매가격에 반영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우자동차 상품기획부 정재훈 부장은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인한 원가 상승분을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부담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외관상으론 전혀 변화가 없는데 차값만 올릴 경우 소비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리부터 자동차 회사들이 원가 인상폭을 부풀리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배기가스 규제 강화를 빌미로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없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의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가격을 올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대로 국내 자동차산업의 수익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1.5ℓ급 이하 차종에서는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실제 한국은행 ‘기업 경영 분석’과 일본은행 ‘주요 기업 경영 분석’ 각 연도판을 비교분석한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들어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높은 순이익률(순이익/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순이익률은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림 참조).

    이같은 저수익 구조의 근본원인은 높은 금융비용부담 때문이다. 한국 업체들은 90년대 들어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상이익(영업이익+영업외수익-영업외비용)에서는 금융비용 때문에 일본보다 낮아지고 있는 것. 한국 재벌이 대부분 그렇듯 재벌이 경영하는 자동차산업 역시 차입에 의한 고투자로 고속성장을 해온 결과 95년에는 세계 5위의 자동차생산국으로 발돋움하기도 했지만 속 빈 강정이었던 셈이다. 자동차업계는 저수익성을 내세워 틈만 나면 가격 인상을 모색할 게 아니라 구조조정을 가속화함으로써 내실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