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6

2000.03.23

촌지와 호떡 사이

  • 입력2006-04-04 10: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촌지와 호떡 사이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와보니, 교사용 탁자 위에 호떡 4개가 놓여 있었다.

    “또 연주가 다녀갔구나….”

    4년전에 졸업했으니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건만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 먹을 것을 사들고 다녀간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실업계로 간 날도, 백일장에서 수상한 날도 귤이랑 땅콩을 들고 다녀갔다. 이런 기쁨이 있기에 학원 선생인 내 직업이 늘 자랑스럽다. 선물은 주고받는 사람 모두를 기쁘게 하며, 정성이 깃들여 있을 때는 아름다운 기억을 갖게 한다.

    내 서랍 속에는 아이들이 주고 간 선물로 가득 차 있다.



    지연이가 주고 간 초콜릿 한 개, 윤주가 주고 간 껌 한 개에 배어 있는 체온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엄마들이 가져오는 커다란 선물상자는 가끔씩 나를 부끄럽게 하지만, 아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작은 마음은 그 정성으로 나를 기쁘게 한다.

    촌지라는 부끄러운 내용이 거론될 때마다 강원도 삼척 학교에 재직 중인 친구 부부가 생각난다.

    공납금이 밀리는 아이 때문에 월급 봉투가 얇아지고,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 때문에 주머니가 비어 버린다는….

    거액의 촌지를 주었느니 받았느니 하는 기사가 모든 선생님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밝혀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저린다. 언제부터인가 선생의 위신이 곤두박질쳐 버리고, 아이들이 교사를 불신하는 세태가 되어 버렸지만, 아직은 천직으로 가르침을 실천하는 선생이 많다는 것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6학년을 마치고 떠날 때 내게 주고 간 손수건이나 양말 한 켤레가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스카프의 무늬가 다 낡아버려도, 양말 뒤축에 보풀이 나도, 그 아이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선물이기에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크고 멋진 것만이 선물은 아니다.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기억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배고픈 시간에 맞춰 가져온 호떡이 식어 버렸다.

    “바쁘신 것 같아 두고 갑니다. 맛있게 드세요.”

    메모를 읽으며 호떡 한 개를 베어 문다. 속에 있는 설탕액이 주르르 흘러 손등을 적신다. 찍어 먹어보니 달콤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한 내 가슴 속의 사랑도 식지 않으리라. 호떡 한 개를 먹으며 연주의 웃음을 생각해 내는 겨울날 저녁, 손도 발도 모두 따뜻해 온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