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6

2000.03.23

이혼과 재혼은 간음이다

성경 곳곳에 ‘불륜은 죄악’ 명시…호색에 경고 메시지

  • 입력2006-03-08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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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과 재혼은 간음이다
    《성경만큼 인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책도 드물 것이다.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경의 영향력을 인정할 정도다. 서구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매일 성경을 공부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 △개인 문제의 해결 △미래의 삶에 관한 지혜를 얻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성(性)에 관한 이야기는 그림이나 음악 등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섹슈얼리티에 관한 아이디어를 살펴봄으로써 기독교의 성과 사랑에 관한 태도가 오늘날의 성 윤리에 어떻게 반영되었고, 또 어떻게 굴절되고 있는지 과학칼럼니스트 이인식씨(‘性이란 무엇인가’의 저자)의 글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인간의 성 행동 중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간통 △매춘 △근친상간 △강간 △동성애 △처녀성 등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이 6개 항목에 대한 성서의 입장을 간추려 소개하고, 동시에 6개 측면에 대한 섹솔로지(sexology·性과학) 이론도 함께 소개함으로써 종교와 과학의 시각 차이를 비교해본다. 이 글에서 인용한 성경 글귀는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공동번역성서’(1977)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편집자 》



    너희는 간음하지 못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십계의 일곱 번째 계율이다(출애굽기 20장14절, 신명기 5장18절).

    간통은 야훼(하느님)의 계율을 어긴 행위로 간주된다. 창세기 39장이 그 좋은 예다.

    요셉은 에집트로 끌려가서 파라오의 신하인 경호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린다. 요셉은 잘생긴 사내였으므로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요셉은 마님을 범접하는 것은 하느님에게 죄가 된다고 거절한다. 날마다 수작을 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는 화풀이로 요셉에게 강간의 누명을 씌운다.

    간통에 대한 경고는 구약성서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의 아내를 범한 사내가 붙잡히면, “맞아 터지고 멸시를 받으며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받게 된다. 그 남편이 질투에 불타 앙갚음하는 날엔 조금도 사정을 보지 아니 할 것”(잠언 6장32∼35절)이다.

    “간음의 소생들은 장래가 없다”

    호색의 죄에 대한 경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호색가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서 죽을 때까지 지칠 줄 모른다. 부정한 침소에서 나온 자는 마음 속으로 말할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 주위에는 어둠뿐, 벽이 나를 가려주지 않느냐?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겁날 게 무엇이냐?” 그러나 주님의 눈이 태양보다 만 배나 더 밝으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런 자는 온 동네 뭇사람들 앞에서 벌받을 것이며, 뜻하지 않은 때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잡힐 것이다(집회서 23장16∼21절).

    여자의 간음에 관하여 흥미로운 표현이 구약성서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가령 “정말 모를 일이 네 가지 있으니, 곧 독수리가 하늘을 지나간 자리, 뱀이 바위 위를 기어간 자리, 배가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자리, 사내가 젊은 여인을 거쳐간 자리”라고 언급하고 “간음하는 여인의 행색도 그와 같아 먹고도 안 먹은 듯 입을 씻고 ‘난 잘못한 일 없다’고 시치미뗀다”는 것이다(잠언 30장20절).

    야훼는 모세에게 아내가 간통한 것을 밝히는 절차를 가르쳐준다.

    남편 몰래 외간 남자와 잠자리를 하여 몸을 더럽히고 숨기고 있는 데도 증인이 없고 현장에서 붙들리지 않았을 경우, 남편은 아내를 사제에게 데리고 가서 보릿가루를 예물로 바친다. 사제는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야훼 앞에 세운다. 그리고 거룩한 물을 오지그릇에 떠놓고 성막 바닥에 있는 먼지를 긁어서 물에 탄 다음에, 그 여인의 머리를 풀게 한다. 그리고 나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곡식예물을 여인의 두 손바닥에 들려주고, 사제는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물을 손에 든 채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맹세를 시킨다. “외간 남자와 한 자리에 든 일이 있느냐? 유부녀로서 남편을 배신하고 몸을 더럽힌 일이 있느냐? 만일 그런 일이 없다면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이 물이 너를 해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물을 여인에게 마시게 했을 때 그 여인이 정말 몸을 더럽혀서 남편을 배신한 일이 있었다면, 그 저주를 내리는 물이 들어가면서 여인은 배가 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민수기 5장11∼28절). 간통한 사실이 발각되면 남녀 모두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레위기 20장10절, 신명기 22장22절). 특히 자기 남편을 버리고 딴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의 경우,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소생까지 저주받게 된다.

    간음으로 딴 남자에게서 사생아를 낳은 여자는 공중 앞에 끌려나가 벌을 받을 것이며, 사생아들은 아무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간음녀의 말로를 본 후대 사람들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감미로운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집회서 23장22∼28절).

    간음의 소생들은 장래가 없으며, 불법의 잠자리에서 낳은 자는 멸망하고 만다. 그들이 비록 오래 산다 하더라도 아무런 값어치가 없으며, 결국은 노년기에 가서 영예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지혜서 3장16∼18절).

    구약성서에서 가장 유명한 간통 사건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불륜이다.

    유다의 왕인 다윗은 어느 날 저녁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고 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된다. 밧세바라는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인 우리야는 군인으로 싸움터에 나가 있었다.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다가 정을 통했는데, 임신하게 된다. 다윗은 태아의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우리야를 싸움터에서 불러들여 술상을 차려주고 밧세바와 동침하기를 바랐으나 우리야는 끝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궐 문간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잤다. 다윗이 우리야에게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하문한즉슨, 우리야는 전우들이 들판에서 진을 치고 있으므로 혼자 먹고 마시고 아내와 재미를 볼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다윗은 사령관 앞으로 편지를 써서 우리야에게 들려 보냈다. 그 편지에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에 내보내 죽게 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결국 우리야는 격전지로 배속되어 적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다윗은 예를 갖추어서 밧세바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밧세바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난다. 야훼는 다윗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 야훼는 예언자를 다윗에게 보내 야훼를 얕본 벌로 밧세바의 아기에게 중병을 내릴 것임을 통보한다.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베옷을 걸친 채 밤을 새우며 어린 것을 살려달라고 맨 땅에 엎드려 하느님에게 애원했으나 아기는 일주일만에 숨을 거둔다.

    다윗은 아기가 죽게 되자 야훼에게 예배를 올린 다음에 집에 돌아와서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는다. 밧세바는 다윗의 두 번째 아들을 낳는다. 이름은 솔로몬이다(사무엘 하 11∼12장).

    간통은 신약성서에서도 구약성서에서처럼 경멸을 받는 행위이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마태오복음 5장28절)고 말하고, 길을 떠날 때 부자 청년이 다가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상기시킨다(마르코복음 10장17∼19절).

    그러나 예수는 간음한 여자를 타살되기 직전에 구출하는 아름답고 극적인 에피소드를 남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통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자를 모세 법에 따라 돌로 쳐죽이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어오자 예수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고 말한다. 결국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그녀는 죽음을 면한다(요한복음 8장3∼11절).

    사도 바울은 사랑의 의무를 다하려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로마서 13장8∼10절), 음란한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히브리서 13장4절), 간음하면 하느님의 나라에서 추방된다고 편지에 적고 있다(고린토전서 6장9절).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간통은 새롭게 정의된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혼한 사람이 재혼할 경우 간통을 범한 것으로 간주된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고 대답한다.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해 물으니 예수는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고 말한다(마르코복음 10장1∼12절, 루가복음 16장18절).

    또한 예수는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 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고 말한다(마태오복음 5장32절, 19장1∼12절). 여기서 유의할 대목은 마르코복음에는 없는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말이 추가된 점이다. 이혼에 대한 규제가 다소 완화된 셈이다. 어쨌거나 신약성서에서 이혼을 엄금하고 재혼을 간음 행위로 규정함에 따라, 기독교의 지배를 받아온 서양문화권에서 뜻이 맞지 않는 부부들은 ‘음행한 경우’ 라는 단서 조항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캐나다에서는 한때 부부가 이혼하기 위해 서로 짜고 음행의 증거를 날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남편이 싸구려 호텔에 투숙해서 여자 한 명을 고용하여 그녀의 젖가슴을 드러내게 하고 자신은 팬티만 걸친 채 침대에 함께 드러눕는다. 때맞추어 사설탐정이 사진사를 데리고 들이닥쳐 동침장면을 촬영한다. 사진 찍는 일이 끝난 즉시 네 사람은 모두 호텔을 떠난다. 아내는 법정에서 이 사진을 남편의 음행 증거로 제출한다. 이러한 꿍꿍이 속을 간파한 캐나다 당국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함께 있으면 불행한 부부가 간통 이외의 이유로 이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혼하기 위해 법정에서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법률의 이혼 조건을 완화했다.

    오늘날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이혼과 재혼을 간음 행위로 여기는 기독교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간통은 제2의 생식전략인가

    혼외정사도 문화 따라 천태만상… 중세 땐 영주가 ‘초야권’ 행사도


    인간 사회의 경우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가 당연시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결혼을, 남녀가 사회로부터 동의를 받아 성교하고 출산하는 관계라고 정의한다. 이를테면 결혼은 법률적 합의, 성적 접근의 우선권 확보, 생식 자격의 부여 등 세 가지 요소로 성립된다. 그러나 결혼이 반드시 배우자 상호간의 성적 충실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제는 인간의 짝짓기 전략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며, 제2의 생식전략으로 혼외정사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혼외정사는 다름아닌 간통이다. 간통은 법률적으로 기혼자가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성교하는 행위를 일컫지만 문화에 따라 천태만상이다.

    에스키모 사람들의 풍습에 아내접대가 있다. 남편이 사냥 친구나 사업 동료와 우의를 돈독히 하고 싶으면 부인의 성적 봉사를 제공한다. 부인은 남편이 지정한 사내와 며칠 또는 몇주 동안 동침한다. 손님이나 낯선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공공연한 간통행위는 중세 유럽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봉건 영주는 가신이 결혼하면 첫날 밤에 신랑보다 먼저 신부의 처녀성을 유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른바 초야권으로 알려진 관행이다.

    간통은 성교를 전제하지만 문화에 따라서는 성관계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친척이 아닌 유부녀가 길을 걸을 때 그 뒤를 따라가거나 마실 것을 건네주거나 하면 그 사내가 간통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도시의 기혼자들은 부인 이외의 여자들과 교제할 기회가 적지 않다. 가령 매력적인 여비서와 저녁을 함께 먹고 승용차 안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성적 만족감을 맛보았다고 했을 때 비록 성관계까지는 가지 않았을망정 이미 그 남자는 간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혼외정사는 남녀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정조 의무를 위배한 유부녀는 부정이 들통나는 즉시 십중팔구 이혼을 당한다. 엽색행각을 벌이는 남자는 성병에 걸리거나 질투심에 눈먼 여자의 남편에 의해 보복당할 가능성이 많다. 질투의 감정은 아내의 정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배우자를 감시하는 행동을 유발시킨다. ‘오쟁이 진’(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한) 남편들의 성적 질투심은 살인사건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아무튼 일부일처제가 인류에게 허용된 유일한 결혼제도로 보편화되는 한, 남녀 모두의 성적 동기에 의해 혼외정사는 제2의 생식전략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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