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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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는 필요악이다

매춘부 신분 인정 … “하수구 없애면 오물로 가득할 것”

  • 입력2006-04-28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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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녀는 필요악이다
    구약성서에는 매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적지 않다. 야훼는 모세에게 “너희 딸을 창녀로 내놓아 몸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레위기 19:29)는 율법을 내리고, 모세의 형인 아론의 자손들에겐 “창녀로서 몸을 더럽힌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못한다”(레위기 21:14)고 이른다.

    이스라엘에서는 ‘사원매춘’, 즉 여성이 매춘으로 얻은 수입을 신전에 바치는 행위가 존재했던 것 같다.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유다와 다말의 일화가 좋은 예다. 유다의 맏며느리인 다말은 남편이 죽은 뒤에 친정으로 돌아가 살게 된다. 자식도 없이 과부 신세가 된 다말은 시댁의 혈통을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 중대 결심을 한다. 과부의 옷차림 대신 너울로 몸을 가린 매춘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인 유다가 양털을 깎으러 가는 길목에 나가앉는다. 유다는 그의 며느리를 신전창녀로 착각하여 그녀의 몸을 사려고 수작을 건넨다. 공교롭게도 유다는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화폐 대신 인장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맡긴다. 두 사람은 동침하여 다말은 아이를 갖는다. 훗날 유다는 친구를 보내 담보를 돌려받으려 했으나 그 여인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석달쯤 지나 유다는 다말이 창녀짓을 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어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한다. 다말은 유다에게 인장과 지팡이의 주인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전갈을 보낸다. 다말은 아들 쌍둥이를 낳는다.

    삼손, 매춘부에 배신당해

    매춘부는 팔레스타인의 도처에서 장사를 했다. 그들은 다말의 이야기에서처럼 성문 근처의 길섶에서 몸을 팔았다. 길거리의 떠돌이 창녀들은 “장터마다에 단을 쌓았고 산디(큰 길가나 빈터 등에 높이 쌓은 무대·山臺)를 만들었다. 어귀마다에 산디를 만들어 놓고는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가랑이를 벌리고 수없이 몸을 팔아 아름다운 몸을 더렵혔다. 물건이 크다고 해서 이웃나라 에집트 사람들에게도 몸을 팔았다”(에제키엘 16:24∼26).

    한편 사창가도 존재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창녀집에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언급했다(예레미야 5:7).



    갈봇집은 도시의 외곽 부근에 있었던 것 같다. 창녀 라합의 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다. 모세의 부관 출신으로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장군은 예리고 지역에 정탐원을 밀파했는데, 그들은 라합의 집에 은신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성벽에 붙어 있었는데, 정탐원들이 예리고 왕에게 쫓기게 되자 그녀는 이들을 탈출시켜 무사히 돌아가게 한다(여호수아 2:1~24). 여호수아는 예리고 성을 점령하고 백성에게 “저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야훼께 바쳐 없애버려라. 다만 창녀 라합의 목숨과 그의 집에 있는 사람만은 살려두어라. 그 여자는 우리의 사명을 띠고 갔던 사람들을 숨겨주었다”고 외쳤다(여호수아 6:17). 구약성서에는 매춘부를 필요악으로 용인한 대목이 자주 나온다.

    판관기에는 창녀의 아들인 입다가 판관이 되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길르앗과 매춘부 사이에 태어난 입다는 굉장한 장사였다. 그는 길르앗 본처의 아들들로부터 구박받고 집에서 쫓겨나 건달패들을 모아 비적떼의 두목이 된다.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오자 원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청한다. 백성들이 그를 수령이자 사령관으로 받들어 모시게 되자, 입다는 암몬 군을 쳐부순다(판관기 11). 입다는 육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을 지내다가 죽는다(판관기 12:7).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을 지낸 삼손은 가자 지방의 매춘부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삼손은 당나귀 턱뼈 하나를 휘둘러 천 명이나 쳐죽이고(판관기 15:16), 성문을 두 문설주와 빗장째 뽑아 어깨에 메고 산 꼭대기에 던져버릴 정도였다(판관기 16:3). 불레셋 추장들은 들릴라에게 삼손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주면 돈을 주겠다고 꼬득인다. 들릴라가 날이면 날마다 악착같이 졸라대는 바람에 삼손은 마침내 속을 털어놓고 만다. “나는 모태로부터 하느님께 바친 나지르 인이야. 그래서 내 머리에는 면도칼이 닿아 본 적이 없다. 내 머리만 깎으면 나도 힘을 잃고 맥이 빠져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이 되지.” 결국 들릴라의 무릎에 누어 잠든 새 머리가 잘린 삼손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눈이 뽑힌 다음 놋사슬 두 줄에 묶여 옥에서 연자매를 돌리게 된다(판관기 16:4∼22).

    또한 매춘부들은 왕에게 송사를 요구할 정도로 법률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예컨대 두 사람의 창녀가 왕 앞에서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신의 소생이라고 우긴 사건이 발생했다. 왕은 칼로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씩 갖도록 명령을 내렸다. 한 창녀는 왕의 지시에 동조했고 다른 창녀는 아이를 상대 여자에게 주더라도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왕은 아이를 둘로 나누는 것을 반대한 창녀에게 아이를 내주도록 분부한다.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다(열왕기상 3:16∼28).

    매춘을 아무런 도덕적 비난도 하지 않고 필요악으로 인정함에 따라 일단 매춘부 신분이 된 여인네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열심히 돈벌이에 나섰다. 창녀의 생활상은 잠언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가령 “그 계집은 집에 붙어 있을 생각은 않고, 들떠서 수선을 피우며 이 거리 저 장터에서 길목마다 지켜 섰다가 그 젊은이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잠언 7:11∼13). 그러나 창녀도 늙어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남자들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예언자 이사야는 “기억에서 사라졌던 창녀야, 수금(竪琴)을 들고 거리를 쏘다녀라. 수금을 멋지게 뜯으며 마냥 노래를 불러라. 그리하여 네 생각이 다시 나게 하여라”고 말한다(이사야 23:16).

    매춘은 신약성서에서도 여전히 필요악으로 인정된다.

    예수는 창녀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예컨대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마태오복음 21:31∼32)고 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예수의 직계 조상에 창녀가 포함된 사실이다. 예수의 족보를 보면 다말과 라합의 이름이 나온다(마태오복음 1:3∼5).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면서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했으며, 창녀 행세를 하거나 남자를 유혹하는 등 성 행각을 벌인 여인들이다.

    특히 라합의 이야기는 신약성서에서 신앙으로 목숨을 건진 인물로 칭송된다. 가령 “창녀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자기 편처럼 도와주어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당하는 멸망을 같이 당하지 않았으며” (히브리서 11:31), “창녀 라합도 유다인들이 보낸 사람들을 친절히 맞아들였다가 다른 길로 떠나보낸 행동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까.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서 2:25∼26)라고 적혀 있다.

    매춘에 대한 신약성서의 온정적인 견해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다.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러 여러 마을을 다닐 때 열두 제자도 따라다녔지만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다.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가 있었다(루가복음 8:1∼3).

    막달라 마리아는 신약성서 속에서 죄인 중 가장 으뜸가는 회개의 본보기로 되어 있다. 예수가 막달라 지방에 갔을 때 막달라 마리아로 짐작되는 여자가 눈물로 그의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발라준다. 예수는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한다(루가복음 7:37∼47).

    막달라 마리아의 과거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추측이 추측을 낳았다. 일단 이름없는 떠돌이 창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막달라 지방의 부유한 지주의 과부였는데, 재산을 유흥으로 탕진해 버리고 매춘으로 호구지책을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쨌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매춘부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의 전통에서 그녀가 예수의 생모인 마리아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안식일 다음날 동틀 무렵에 예수의 무덤으로 가서 그의 묘가 비어 있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이며, 또 그녀는 부활한 예수를 처음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다(마태오복음 28:1∼10, 마르코복음 16:1∼11, 루가복음 24:1∼12). 이와 같이 막달라 마리아가 영향력이 큰 여성이었으므로 복음서의 저자들이 매춘부의 묘사에 신경을 써서 남자에게 착취당하는 가련한 여자들로 묘사했을는지 모른다.

    막달라 마리아 ‘과거’ 추측 무성

    성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성경이 성관계에 대한 적의를 공공연히 표출하면서 매춘을 필요악으로 수용한 까닭은 남성의 성적 방종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나타내는 이중규범이 서양문화 속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매춘행위를 막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했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교회의 금욕주의적인 이론은 바울에서 시작되어 아우구스티누스로 계승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는데, 이들은 매춘을 용인했다.

    교부(敎父)철학을 완성한 아우구스티누스(서기 354∼430년)는 인간이 하는 일체의 성교행위는 멸망으로 가는 짓이라고 주장했으나 매춘에 대해서는 비록 추잡하고 음탕한 행동이지만 “매춘부를 인간의 행위로부터 제거해 버린다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색정으로 더럽힐 것이다”고 말했다. 역시 철학자인 아퀴나스(서기 1225∼1274년)도 매춘행위를 ‘바다의 오물이나 궁정의 하수구’에 비유하면서 “만일 하수구를 없애버린다면 궁정은 오물로 가득찰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매춘부를 없앤다면 세상은 남색으로 가득찰 것이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교회는 매춘을 남자들의 성욕을 배설하는 방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기독교를 남성 중심적인 종교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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