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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케스트라

“교향악단은 웁니다”

쥐꼬리 예산에 레퍼토리 개발 엄두 못내…30만원짜리 월급 단원도 수두룩

“교향악단은 웁니다”

“교향악단은 웁니다”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한 드라마 ‘크리스탈’이 방영돼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 여러 전문 분야가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되었지만 극중에서 오케스트라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크리스탈’이 처음. 그만큼 오케스트라는 일반인들의 관심 영역에서 한발 비켜서 있었다는 증거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대부분 레퍼토리와 솔리스트, 지휘자를 보고 연주장을 찾거나 음반을 구입하지, 국내 특정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매력을 느끼고 일부러 음반을 찾아 듣거나 연주회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오케스트라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면 베를린 필이나 보스턴 심포니, 빈필 등의 해외 유명 단체 정도일까.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직업 교향악단의 수는 모두 54개(국공립 31개, 민간 23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숫자다. 오케스트라 분포도 전국에 두루 걸쳐 있다. 한국 연주자들의 개인 기량 역시 세계 시장에 내놓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입증된 터.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이 팬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이같은 질문에 대해 심도있게 원인을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어 음악계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KBS방송연구원 교수 강석흥씨가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제출한 논문 ‘한국 교향악단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그는 이 논문에서 “한국 교향악단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예산문제”임을 지적했다.

“54개 단체 중 연간 예산이 10억원 이상인 곳은 11개뿐, 80%인 43개 단체는 10억원 미만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산이 너무 적다 보니 지출의 80~90%를 인건비가 차지하고 공연제작비로는 10% 안팎밖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죠. 자연히 공연기획이 부실해지고 레퍼토리 개발도 불가능해 고전-낭만주의 계열의 흔히 듣는 곡들만 연주하게 되는 겁니다.”



미국 오케스트라의 경우 전체 지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55~65%. 그렇다고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턱없이 많은 수입을 챙기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강석흥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주자들의 평균 연봉은 KBS가 3900만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200만원, 인천시향 1700만원, 부천필하모닉이 1180만원 선. 이같은 액수는 지방으로 가면 뚝 떨어져, 많아야 70만원, 적으면 30만~40만원의 월급을 받는 단원들이 허다하다. 상당수 악단은 그나마도 재정이 안돼 연주 때마다 수당을 지급하는 비상임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형편이다.

“오케스트라 활동만으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을 만큼 보수가 적다 보니 연주자들은 음악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지고, 청중에게도 좋은 공연을 제공하기 어려워지게 마련이죠. 지방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조금만 나이가 들면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나는 단원들이 많아 평균 연주자 연령이 30대 초반이고, 단원들도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지방 연주공연을 많이 갖는 전 서울시향 악장 김영준교수(서울시립대)의 말이다.

돈이 없으니 음향시설이나 악기구입에 대한 투자도 바라기 어려운 처지. KBS`-`1FM에서 ‘한국의 오케스트라’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방송작가 유혁준씨는 지방 오케스트라들을 취재하며 경제적 고충을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대구시향은 교향악 연주에 필수적이지만 자주 쓰이지는 않는 악기의 경우 아예 구입을 못하고 있고, 그나마 있는 악기도 너무 낡아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형편”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적자의 늪’에서 허덕여야 하는 것일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답은 바로 “손님을 못끌어서.” 최근 들어 클래식 음악회장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는 게 사실. 92년 2050명에 이르던 KBS향 정기회원은 99년 980명으로 뚝 떨어졌고, 98년 한 해 예술의전당 음악당을 찾은 관객도 96년에 비해 7만명이 줄었다.

“관객이 연주회장을 외면하는 이유는 공연단체들의 마케팅 전략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공연 기획단계부터 레퍼토리를 신중히 고르고 포장을 잘 해서 내놓아야 관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데, 현재는 관객 시장조사조차 제대로 안돼 있는 형편이에요. 이를테면 어느 연령층의 관객이 무슨 요일에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찾더라는 식의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교수) 공짜 초대표가 난무하는 것도 공연단체의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큰 요소. 객석을 꽉 채운 공연이라 해도 대다수가 ‘공짜표’를 들고 온 청중이라면 연주단체로서는 수입에 보탬이 안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렇게 관객동원이 안되고 인건비와 공연사업비 등 지출금액이 티켓 판매액수의 10배를 웃돌다 보니 ‘연주회를 열면 열수록 손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공립단체의 경우 연주수익을 올리지 못해도 예산은 계속 지원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수익 면만을 따져본다면 일부러 돈들여 가며 공연무대를 마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니, 애써 좋은 공연을 올려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해도 수익금이 악단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부 혹은 지자체 금고로 들어가기 때문에 악단으로서는 좋은 공연을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안된다. 그 결과 현재 연간 60회 이상 공연을 갖는 교향악단은 5개에 불과하고, 50%에 해당하는 27개 교향악단이 한 달에 두 번밖에 연주회를 갖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연주단체에 “공연수익만으로 재정자립을 하라”는 것은 사실 무리한 요구다. 외국의 경우도 연주활동을 통한 수입만으로 재정적 독립을 유지하는 오케스트라는 드물다. 개인의 기부금이나 정부의 재정지원은 필수.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공립단체나 민간단체 모두 지원이 부실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오케스트라들이 민간 기업의 대폭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기부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 등 제도적 법안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기부를 해봐야 별다른 혜택도 없고, 그나마 기업에서 지원해주던 기금마저 경제불황이 닥치면 가장 먼저 끊어지고 마는 형편입니다. 쌍용과 쌍방울로부터 지원을 받던 코리안 심포니와 서울 심포니도 98년 이래 지원금이 끊어져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강석흥)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오케스트라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다. 부산시향은 시예산과 별도로 오케스트라 운영기금을 설치 운영할 수 있는 조례를 마련해 공연활성화를 꾀했고, 수원시향은 금난새씨가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던 당시 색다른 기획프로그램을 속속 내놓아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성공적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대전시향은 사물놀이와 양악을 결합한 이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가 하면 96년부터 시민 대상 무료 오케스트라 강좌를 열어 호응을 얻고 있다. 부천필은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난곡이나 초연곡을 끊임없이 레퍼토리로 개발해낼 뿐 아니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줌으로써 ‘국내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인정받고 있다.

89년부터 예술의전당이 개최하고 있는 ‘교향악 축제’ 역시 전국 오케스트라들이 대거 한 자리에 모여 연주기량을 겨루는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 지방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우리 오케스트라들이 관객으로부터 사랑받는 튼실한 연주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마케팅 전략 수립, 그리고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급선무다.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들에 의해 재정이나 인사가 결정되고, 정부 예산에만 의존해 안일한 운영을 하고 있는 국공립 오케스트라들이 점차적으로 민영화하여 자생력을 길러나가야 한다는 데도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타산의 잣대만을 들이대서는 예술단체가 존립할 수 없다. 음악은 ‘돈’을 먹고사는 게 아니라 ‘청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것. 무엇보다 음악을 향유하는 청중 자신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연주회장을 찾아주지 않는다면 경제 만능의 사회에서 우리 오케스트라들이 설자리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노조 간부는 실력이 없다?

집단 오디션서 탈락시켜… 노조 “조합 파괴용” 반발


지난해 7월 서울시립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하면서 세종문화회관 산하단체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시향)도 ‘민영화’의 첫 발을 디뎠다. 시향의 ‘대정부독립’은 향후 전국 국공립 교향악단의 민간단체화 성공여부를 가늠케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그러나 이 과정은 출발부터 많은 불협화음을 낳음으로써 음악계 안팎의 우려를 사고 있다. 재단법인 출범 이후 세종문화회관이 맨먼저 내놓은 것은 산하 예술단체 단원들의 구조조정안. “그동안 단원들간에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원들의 태도도 해이해지고, 연주기량도 뒤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단원 정예화와 실력향상을 위해서는 연봉제와 오디션제 도입이 필수다”는 게 회관측 입장이었다.

“안그래도 일반 공무원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데, 그나마 연봉제와 오디션으로 단원들의 목줄을 죈다”며 반발한 예술단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회사의 구조조정안에 반대 투쟁을 시작한 것이 지난해 9월. 노조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예년과 같은 형태의 집단 오디션’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오디션을 치렀는데, 그 결과 서울시향의 현악 파트 수석 연주자 네 명이 나란히 ‘실력 미달’ 로 해촉 결정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노조의 핵심간부들이었다.

노조측에서는 오디션 결과를 놓고 “개인별 오디션도 아닌 집단 오디션에서 실력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데다, 노조 간부들만 골라서 탈락시킨 것은 노조 파괴를 목표로 한 표적 심사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종문화회관 이종덕총감독은 “오디션은 외부 권위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에 의해 객관적으로 치러진 것”이라며 “실력이 뒤떨어지는 단원일수록 신변의 불안감을 느끼고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게 마련이다. 탈락자 전원이 노조 간부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고 반박한다.

이같이 양측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노조원들은 한 달째 조합사무실에서 철야농성을 벌이면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놓고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연봉제는 회관측과 단원들이 1대 1로 체결해버린 상태.

10년간 서울시립대에 적을 두며 서울시향 악장직을 맡아온 김영준교수마저 새로 마련된 ‘단원들의 겸직 금지’ 조항에 따라 악장직을 사임, 서울시향은 지금 악장과 네 명의 수석이 공석인 채로 공연무대에 서고 있는 처지다,



“교향악단 민영화해야 살 수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층 공략할 마케팅 전략 세워야


무대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은 연주자이지만, 그 연주가 완성되기까지는 무대 뒤에서 연주자들을 꼼꼼히 뒷바라지하는 ‘매니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교향악단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논문을 펴낸 강석흥씨는 81년부터 KBS향 운영실무자로 근무해오며 오케스트라 안살림을 도맡아온 ‘대부’. KBS향 공연기획부장을 거쳐 현재는 KBS 방송문화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20년간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명암을 지켜보아온 강씨가 생각하는 교향악단의 ‘재활방안’은 어떤 것일까.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미래의 관객 확보를 위해 청소년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죠. 우리 교향악단들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기획연주회를 속속 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한 예로 KBS는 지난 98년부터 8세 이하 유아들을 위한 ‘어린이 연주회’를 열고 있는데, 아주 호응이 높아 연석 매진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교향악단이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단계적 민영화가 필수적이라고 전제하며, 아울러 기업과 재단의 지원을 이끌어들이기 위해 연주단체 자신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도 민간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이나 개인이 반드시 오케스트라에 기부하라는 법은 없는 만큼, 연주단체들도 기부금을 끌어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기업과 재단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간동아 224호 (p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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