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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임사체험자들

“난 저승에 갔다왔소”

죽음의 문턱을 넘은 사람들의 생환기…“임사체험 뒤 삶의 활력 얻었다”

“난 저승에 갔다왔소”

“난 저승에 갔다왔소”
세상에는 신문 지상에서 다루지 않아 그렇지, 특이한 체험을 한 사람이 많다. 이 중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다. 이름하여 ‘임사(臨死) 체험’의 경험자들. 이들은 왜 죽음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을까. 그리고 임사체험후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과연 저승은 있는 것일까.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사신장군’이라는 점집을 하는 최진원씨(43)는 두 번이나 죽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그가 일어나지 않자 식구들은 ‘뭐가 잘못됐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옮겼다. 그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은 병실에서였다.

이승과 저승 두번씩이나 왕래했다

이러한 사이, 그의 영(靈)은 아주 신비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넓은 호수 위에 머물고 있었다. 두 발이 물에 잠겼다는 느낌이 없었으니 공중에 떠 있었던 것 같다. 잠시 뒤 빈 나룻배가 오기에 올라타자 배가 저절로 움직였다. 나룻배가 가는 쪽에서는 밝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절로 그가 배 위에서 떠오르더니 빛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었다.

잠시 뒤 그가 대궐 같은 집 대문 앞에 다다르자, 수문장이 두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때까지 그는 물안개와 강렬한 빛 때문에 주위를 또렷이 볼 수 없었는데, 이때부터는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대궐 같이 생긴 집안 마당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해 있었다. 나무에는 향기나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숲속에서는 잉꼬 같은 새들이 천상의 화음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구나.’ 연신 감탄하며 안으로 걸어가는데, 길 양편에 사람들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최씨의 죽은 조상과 최씨가 알았던 사람들 중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이들은 이곳 저곳에서 일하거나 노래하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최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최씨 또한 그들과 대화할 수 없었다.

잠시 뒤 그는 위엄있게 생긴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서책을 뒤적이더니 굵은 목소리로 “너는 내려가거라”고 말했다. 최씨는 “싫습니다. 이곳이 너무 좋아요”라고 대꾸했지만 할아버지의 영을 거역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꾀를 내 “저는 돌아가는 길도 모릅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흰 ‘복슬 강아지’를 내주면서 “이 강아지를 따라가거라. 강아지를 놓치면 절대로 안되느니라”고 명령했다.

강아지를 앞세우고 되짚어 나오는데, 가느다란 외나무다리가 걸린 물살 빠른 협곡이 나타났다. 강아지가 외나무다리에 올라가 위태위태하게 나가더니 “풍덩”하고 물로 떨어졌다. 최씨는 너무 놀라서 “악” 하고 고함을 내지르며 강아지를 구하려고 물로 뛰어내렸는데, 그 순간 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그는 한동안 병실 안에 있는 자신과 생시같이 느껴진 꿈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최씨는 “임사체험은 가위눌림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가위눌림은 건강한 상태에서도 꾸지만, 임사체험은 영(靈)뿐만이 아니라 육(肉)도 죽음의 근처에 간 상태에서 경험한다는 것이다. 처음 임사체험을 경험했을 때 최씨는 혈압과 맥박이 상당히 저하된 ‘가사’(假死)상태였다고 한다. 최씨는 가사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을 유년기 때부터 인식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찾고 있다.

“예닐곱살 때부터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손으로 코를 막고 있으면서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면 숨을 쉬지 못해 이렇게 답답하겠구나’ ‘죽으면 밥도 먹지 못하겠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인지 자다가 오줌을 싸는 오줌소태에 걸린 적이 많았다. 최초의 임사체험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직후 경험했다. 사춘기 때라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몸과 마음이 다 약해졌었다. 그러다 저승에 갔다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2년 뒤 그는 또 한 번 임사체험을 겪는다. 그때 그는 극도의 염세주의에 빠져 있었고,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아버지와 잦은 마찰을 빚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 그는 ‘나는 죽어야 할 놈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모아두었던 수면제를 삼켰다. 수면제를 삼키자 ‘진짜로 죽는구나’ 란 생각이 들어 입안이 타들어가고 혀가 오그라들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두 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정신을 잃었다.

얼마 뒤 그는 물안개가 피는 저수지에 서있는 자신을 느꼈다. 혀가 말려들 때 느꼈던 답답함은 눈 녹듯이 없어지고 대신 18년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뒤 조선시대 여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던 ‘장옷’ 같은 것으로 낯을 가린 남자 세 명이 나타났다. 그는 ‘저승사자들이구나’라고 판단하고 말없이 그들을 따라나섰다.

이후부터의 풍경은 2년 전과 흡사했다. 얼마 뒤 그는 백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왜 또 왔느냐”라고 물었다. 최씨가 “너무 좋아서 왔다”고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돌아가라. 너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수긍해 이번에는 강아지 없이 혼자 되돌아 나왔다.

그가 저승에서 되돌아와 내 집이라고 도착한 곳은 기와집이었다. 날이 어두워져 방안에서 쉬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자 한 여자가 “무사히 가셨는지 확인해보고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최씨는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으며 ‘휙’ 세계가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바로 그 시간에 최씨는 병원에서 위세척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위세척을 하자 비위가 상했는지 울컥 토해냈는데, 그 순간 최씨가 의식을 회복한 것이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임사체험을 겪은 뒤 최씨는 크게 생각을 바꿔 먹었다. ‘죽으려는 생각으로 뭐든지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모 대학 토목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마치고는 중동 건설현장에서 수년을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뒤 다시 신경이 예민해져 무당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무당을 하면서부터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점집을 하는 곽형학씨(50)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도 어릴 적부터 시름시름 아플 때가 많았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는 식구들이 주고받는 말은 들리는데, 몸은 물론이고 눈조차도 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나를 일으켜 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안타까워 하는데, 도포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따라오라”고 했다.

물안개가 피는 저수지에 다다른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가자, 물이 양 옆으로 밀려나며 길이 나왔다. 이후부터는 곽씨도 최씨와 비슷한 풍경을 보며 대궐 같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점은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이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라는 점이었다. 그곳에 이르자 돌연 “공부 안하고 온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 그는 양손에 볏단을 들고 벌을 서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 벽력같이 “형학아! 네가 여기 왜 왔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이 소리에 놀란 곽씨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 나왔는데, 뛰는 도중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이때가 저녁 무렵이었다. 식구들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화장을 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곽씨는 “그때 ‘진땀’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더울 때 흘리는 땀은 물처럼 줄줄 흐르지만, 놀래서 흘리는 땀은 끈적끈적 하다. 진액이 빠지듯이 진땀이 온몸에서 흘러내렸다.”

최씨나 곽씨가 겪은 임사체험은 다른 무당에게서도 쉬 발견된다. 과연 이들이 체험한 대로 저승과 내세는 있는 것일까. 70년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레이먼드 무디는 사망선고를 받고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수집해 ‘삶 이후의 사람’(Life After Life)이라는 책을 펴내 큰 관심을 끌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정신과 여의사인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연구해 ‘죽음의 5단계’란 이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의학으로는 도저히 죽음을 연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와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무속연구로 유명한 경희대 서정범교수(74)는 문화학적 관점에서 저승과 죽음에 대해 난만하지만 정치한 추론를 펼친다. 그는 임사체험을 모태(母胎)회귀 현상으로 정리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가장 편하고 자유롭다고 느끼는 곳은 태아상태로, 어머니 자궁 속의 양수에 떠있던 때다. 인간 무의식 속에는 자궁 속 양수에 떠있던 때와 함께 출산할 때의 기억이 남아 있다. 임사체험은 출산시의 기억과 자궁 속에 있던 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이다.”

서교수는 임사체험자들이 본 물은 양수이고, 빛-배-길 따위는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지나온 ‘산도’(産道) 같은 것이며 대궐 안은 자궁 속으로 정리했다. 임사체험자들은 대개 “염라대왕이나 아버지 등이 네가 올 곳이 아니다고 해서 저승을 빠져 나왔는데, 그 후로는 보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서교수는 “저승 체류를 거부당했다는 것은 임사체험자들의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거부라는 형식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임사체험자들은 자궁 속에 들어가 잠시 쉬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가다듬은 뒤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교수는 자궁에 있을 때의 편안함이 곧 ‘죽으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내세관이 되었다고 정리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면, 인간은 가장 편안한 자궁 속으로 도주해야 한다. 이러한 도주가 죽음 저편에는 저승이라는 내세가 있다는 세계관을 만들었을 것이다. 임사체험자들은 임사체험을 통해 내세에 다녀옴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것이다.”

저승은 과연 있는 것일까. 죽음은 무엇일까. 아등바등하는 삶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진지하고 경건해질 수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 224호 (p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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