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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영남권 빅뱅

총선 이후 새판짜기 시작됐다

급류 타는 신당정국, 총선 2强2中 예고… “대선 밑그림 그린다”

총선 이후 새판짜기 시작됐다

총선 이후 새판짜기 시작됐다
우선 김영삼전대통령(YS)과 관련된 일화 몇 가지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일화 1(한나라당 공천 이전): 정치권이 공천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한나라당 민주계 의원 몇몇이 YS에게 김현철씨의 총선출마 문제를 제기했다. 어떻게 해서든 후보등록 마감 이전에 사면받게 해서 총선출마를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 부산 서구나 경남 거제 등 구체적인 지역구도 거론됐다. 그러나 YS 대답은 예상 외였다고 한다. “현철이가 나오면 니들도 다 망한데이. 현철이는 더 푹 쉬어야 한데이.”

일화 2(한나라당 공천 직후): 김광일 전청와대비서실장은 2월18일 한나라당이 공천자를 발표한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와 상도동을 찾았다. 그리고 일요일인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 반납과 한나라당 탈당을 밝혔다. 당시 회견에서 공천 반납 문제를 YS와 협의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혼자 결정했다.

회견 계획을 밝혔지만 김전대통령은 공천과 관련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전실장은 당초 월요일인 21일 회견을 갖기로 생각했었지만 YS가 “그러면 늦는다. 기선을 뺏기면 안되므로 빨리 하라”고 재촉함에 따라 일정을 당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자 이회창’이라고 평소 YS가 즐겨 쓰는 ‘독재자’ 표현을 쓴 것도 주목할 대목.

일화 3(한나라당 공천 파문 확산 이후): YS는 최근 측근들에게 “‘째보’(언청이의 사투리)라도 (대통령후보는) 영남 사람이어야 된데이”라고 자주 말한다고 한다. 이는 YS의 평소 지론인 ‘영남후보론’ 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며, 2월23일 상도동을 방문한 이수성전총리에게 “의리 없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 사례를 보면 이미 ‘YS식 정치’가 시작되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의 어눌한 ‘선문답 정치’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대략 드러난다. 국민이 그의 ‘부활’을 싫어하거나 반대하건 말건 현실 정치권은 이미 그를 한 축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다. 이런 예상치 못한 구도를 만든 사람은 역설적으로 YS의 부활을 가장 경계하고 싫어했던 한나라당 이회창총재 자신이다.

이제 4·13총선에서의 ‘4당 구도’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한나라당 공천 발표(2월 18일)에서 제4당인 민주국민당 창당발기인 대회(2월28일)까지 불과 열흘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정말 끈질긴 정치기술자들의 생명력이라고나 할까. 현재의 구도는 지난 88년 13대 총선과 더불어 고착되었던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4당 체제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정치 발전론으로 따져볼 때도 분명한 퇴행적 체제이다.

선거전은 ‘2강(민주당 한나라당) 2중(자민련 민국당)’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분열로 민주당이 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선언을 한 자민련을 비롯한 세 야당의 대여 공격은 한층 강화될 것이고 한나라당과 민국당의 선명경쟁도 격화될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 선거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4당 체제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민국당이 총선 이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할 경우 당연히 어느 한 세력에, 혹은 각 세력에 분산 통합될 것이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 경우에도 대단위 정계재편은 불가피하다. 우선 민국당의 성립 자체가 이 당에 참여한 개개인들의 원내 재진입을 최종 목표로 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순 이수성 김상현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등 중진들은 원내 재진입을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혹시 생겨날지 모를 새로운 주도권을 모색하기 위해 일단 한 배에 승선했다.

그러나 이보다도 총선 이후 민국당의 분열 통합을 예고하는 것은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라는 이번 총선의 성격이다. 정치권 리더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총선은 오는 2002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예비선거’에 지나지 않는다. 이회창총재가 성급히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도 이번 총선의 이런 성격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4당 체제는 지극히 가변적이고 수명이 짧은 과도 체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총선 이후 정계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JP)의 최근 발언에는 이에 대한 실마리 가운데 하나가 이미 들어 있다. JP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보수 세력들의 심부름을 자처해서 하려고 하며 선거후 그 세력들을 합쳐서 보-혁이 상호견제하면서 해보자는 선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가 늘상 해오던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총선 이후 자민련에 보수 중심의 신규 세력을 합치고 판을 새로 짜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피력한 셈이다.

YS가 “정치권에 굉장한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총선후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광일 전청와대비서실장은 2월24일 MBC-TV ‘정운영의 백분 토론’에 출연해서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상도동을 방문했더니 김영삼전대통령은 ‘정치권에 굉장한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김전실장이 YS의 발언을 공개한 것부터를 상도동 캠프의 전략으로 해석하는 분위기.

즉 총선 결과에 따라 YS가 ‘반DJ 전선’ 확대를 도모하는 야권 통합을 주도하겠다는 내심을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다. YS는 당연히 이를 발판삼아 일차적으로는 민주당 대권 후보에 맞설 ‘영남 출신 대항마’를 만들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 상도동의 한 주요 인사는 “YS가 단순히 자기 사람들을 16대 국회에 진출시키려고 정치 재개 움직임을 보이겠는가. 그의 머리 속에는 이미 총선 이후 대선까지 의 큰 줄거리와 구도가 짜여 있을 것”이라며 “어쩌면 ‘신 민자당’이 뜨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민자당은 90년 3당 합당에 따른 민정-민주-공화당의 결집체. 지역적으로 보자면 호남권을 제외한 일부 수도권과 영남-충청권의 결합이었다. 현재의 민국당은 조순대표와 김상현의원의 참여로 인해 외형적으로는 전국 정당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주축은 역시 김윤환의원 중심의 대구-경북(TK), 신상우국회부의장과 이기택전의원, 김광일전실장 중심의 부산-경남(PK) 세력이다. 따라서 이런 민국당과 JP의 자민련이 다시 합쳐진다면 과거 민정-민주-공화당의 결집체인 민자당이 다시 부활하는 구도가 된다. 이른바 ‘신 민자당’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기에는 YS와 JP의 화해가 필수적 요소다. 과거 JP가 YS 대표의 민자당으로부터 ‘팽’당했던 구원(舊怨)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들은 정권교체 이후 YS나 JP가 각기 상대방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더구나 YS도 영남 후보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결론내렸을 경우는 얼마든지 JP의 내각제 노선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경우 민주-한나라당 중심의 대통령제 고수 세력과 자민련-민국당 중심의 내각제 개헌 세력으로 정계가 나뉠 가능성도 높다.

YS와 JP의 최근 발언들을 보면 이미 총선 이후 정계재편을 둘러싼 ‘고공 탐색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YS가 자민련 이한동총재에게 ‘야당으로서의 길’을 주문한 것도 ‘그래야 산다’는 단순한 의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청와대와 여권 핵심이 ‘영남권 빅뱅’에 따른 잇단 징후들에 대해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양상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제4당의 출현은 일단 영남권 분열을 가져왔지만, 이회창총재가 주도력 복원에 실패할 경우는 영남권 재결집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총재가 약체 후보로 전락하는 것이야 반길 일이겠지만, 그 이후의 역풍이 두려운 것. 여권의 고민이 큰 대목이다. 따라서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이에 맞서는 김대중대통령 주도의 공세적 정계재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경우 김대통령은 JP를 다시 껴안는 방법까지를 포함해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총선 정국이지만, 밑바닥 기류는 벌써 대선 정국을 향한 정계재편으로 넘어가 있다.



주간동아 224호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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