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9

2000.01.27

21세기 ‘빅 브러더’ 출현할까

‘미디어 戰線’ 재편 신호탄… “초거대 사이트 앞에 다양한 목소리 묻힐 것” 우려

  • 입력2006-06-27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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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빅 브러더’ 출현할까
    “눈알 교통량(Eyeballs)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콘텐츠(Contents)만으로도 불충분하다. 이번 합병은 둘 사이의 결합만이 최선의 해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 사건이다.”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결합, 인터넷과 TV의 통합 흐름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둘의 결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보다도 더 큰 폭발력을 지녔다. 빅브러더의 출현을 예고하는 재앙이다.”

    “AOL과 타임워너 양쪽에는 최선의, 이용자들에게는 최악의 선택이다.”

    지난 10일 전격 발표된 아메리카온라인(AOL)과 타임워너간의 합병 소식에 대한 반응은 이처럼 다양하게 변주된다.



    “언론 미래가 인터넷에 있다”

    국내 언론의 반응도 퍽 흥미롭다. 대체로 ‘언론의 미래가 인터넷에 있음을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 국내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를 점치는 기민함도 보여줬다. 특히 골프TV, 스포츠 TV 등을 인수하며 복합 콘텐츠 기업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서울방송(SBS)은 이 소식을 이틀 연속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8시 뉴스의 첫 번째 꼭지로 취급, 남다른 관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반응이 아니더라도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 불러올 결과는 가히 폭발적이다. 1600억달러(약 190조원)에 이르는 합병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거대 마케팅 기업의 탄생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그 마케팅의 범위는 인터넷, 인쇄매체, 케이블TV, 케이블 서비스, 음악, 영화 등을 포함하는 전방위적 미디어 장르로 확대된다.

    △프린트 콘텐츠: 시사주간지 ‘타임’, 경제 전문지 ‘포천’,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할리우드 연예 잡지 ‘피플’ 등 종이 미디어의 세계를 호령해 온 최고의 브랜드들이 AOL의 우산 밑으로 들어온다.

    △광대역(Broadband) 콘텐츠: CNN TBS TNT HBO, 엔터테인먼트위클리, 워너뮤직(애틀랜틱, 일렉트라, 라이노, 사이어, 워너브러더스 같은 음반 레이블이 모두 여기에 포괄됨), 뉴라인 시네마, 워너브러더스 영화사 등이 이 범주다. 이 풍부한 콘텐츠가 초고속의 광대역 인터넷과 결합할 경우 디지털 유통을 포함한 전자상거래 규모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콘텐츠: 무비폰(Movie-Fone), 스피너(Spinner), 넷스케이프 넷센터, AOL 등이다. 이중 스피너는 온갖 장르의 음악을 공짜로 들려주는 인터넷 서비스. 주요 포털 사이트들인 넷센터와 AOL이 끌어모으는 네티즌들의 숫자도 매달 수천만명에 이른다.

    △마케팅 채널: AOL과 타임워너 양사가 거느린 여러 브랜드들을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로 교차 마케팅을 벌일 경우 그 파장은 종래의 단일 미디어 마케팅의 효과보다 몇 배 이상 클 것이다.

    △광대역 인터넷 접속 서비스: 타임워너의 케이블 네트워크는 국내 두루넷과 같은 초고속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최적이다.

    △실시간 메시징 서비스: AOL의 커뮤니티 및 채팅 프로그램인 ICQ와 실시간 메시징 소프트웨어인 인스턴트 메신저는 그에 가입된―모두 무료다― 네티즌들을 접속과 동시에 연결해주는 커뮤니티 서비스다. 특히 AOL 인스턴트 메신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 공개를 요구할 만큼 방대한 가입자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 접속: 국내 천리안이나 유니텔 등에 해당하는 AOL과 컴퓨서브는 그 가입자만 2200만명을 헤아린다. 가히 ‘또 하나의 닫힌 인터넷’이라 할 만한 규모다. 특히 AOL의 접속 프로그램을 잡지나 일상 생활용품에 끼워 무료 배포하는 ‘AOL 애니웨어’ 전략에 힘입어 신규 가입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인터넷 기술: 넷스케이프 브라우저, 넷스케이프 엔터프라이즈 웹서버, 그룹웨어 통합 제품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AOL-타임워너의 합병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적어도 합병의 당사자들인 AOL과 타임워너 양쪽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양쪽 기업의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사업 성격상 기업문화 또한 워낙 달라서 이음매 없이 한 기업으로 통합되는 데는 적잖은 진통이 불가피하다는 예측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양사의 ‘윈윈’ 전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AOL에는 양질의 콘텐츠가, 타임워너에는 충분한 규모의 ‘눈알 교통량’(접속자 수)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반 인터넷 이용자들이다. ‘AOL타임워너’라는 인터넷+미디어 복합 제국의 탄생은 우리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 어떤 득(得), 혹은 실(失)을 안길 것인가.

    전망은 대체로 어두운 쪽이다.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W3C 의장)는 “그가 어떤 장비를 가졌건, 어떤 문화권에 있든, 혹은 어떤 능력을 지녔든 보편적이고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웹의 본래 목적”이었다며 “AOL-타임워너의 합병은 웹의 평등성과 보편타당성을 위협하는 적신호”라고 말한다.

    산호세 머큐리뉴스의 인터넷 칼럼니스트인 댄 길머도 “합병은 소비자들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수천만개의 군소 웹사이트들이 내던 다양한 목소리가 위협받게 됐다”며 “대다수 소비자들은 한두 개의 초거대 뉴스사이트로부터 획일화되고 몰개성적인 뉴스만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언론인연맹(IFJ)도 성명을 냈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 민주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연예-오락과 통신, 비즈니스의 세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언론의 품질과 다양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보가 연예 오락 차원으로 변질

    AOL-타임워너의 합병은 앞으로 몇주 안에, 혹은 올해 안에 그와 비슷한 규모나 형태의 합종연횡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월트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루퍼트 머독의 미디어회사), 마이크로소프트 등 그와 직간접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대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 기업의 제휴 규모가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들이나 관련 주주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인터넷이 몇몇 거대 미디어제국들로 흡수-합병-재편된 TV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정보가 연예-오락의 차원으로 변질되고, 독립된 소수의 목소리나 소비자의 권리가 휘황찬란한 광고 뒤에 묻혀버렸다는 사실이다.

    프리덤포럼(FreedomForum)의 칼럼니스트인 존 캐츠는 묻는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정보가, 그토록 적은 이들의 손에 넘어가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그토록 철저하게 기업화한 언론을 꿈꾸는가”라고. 그에 따르면, 인터넷은 점점 더 상업적-기업적 이익에 종속돼 가고 있다. 그의 말이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 발표된 1월10일은 미디어 세계의 전선(戰線)이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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