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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계약직의 두 얼굴

박봉서 억대 연봉으로 “계약직 만세”

‘철밥그릇’ 차버린 당당한 계약직들… “고임금보다 보람있는 공무원이 좋다” 역류하기도

박봉서 억대 연봉으로 “계약직 만세”

계약직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제도가 아니다. 과거의 계약제는 고용 불안, 저임금을 뜻하는 용어였으나 이젠 한 분야에서 성공 신화를 일구려는 사람들이 당당히 선택하는 매력있는 제도로 자리잡고 있다. 안정적인 신분과 보수를 마다하고 과감히 계약직을 선택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는 4인의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 금감위 구조조정팀장에서 재무자문회사 대표이사로

조창현 대일 재무자문회사 사장

박봉서 억대 연봉으로 “계약직 만세”
금감위 구조조정 팀장을 지낸 조창현씨(40)는 금융정책 관련 핵심부서를 두루 섭렵한 엘리트 공무원.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홀연히 사표를 던지고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봉’에서 연봉 ‘억’대의 계약직으로 변신한 것.

“IMF 사태 이후 공무원에 대한 온갖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중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철밥통’ 이란 말이었어요.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저 역시 철밥통이라는 소릴 듣다니 서글프기 짝이 없더군요.”



후배들 술 한잔 사주면 한달치 월급이 사라져버리는 박봉이었지만 오직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 하나로 벼텼던 공직생활. 그런데 그 자긍심이 일순간 깨어지는 걸 느꼈다.

“저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무능력한 철밥통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희생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고, 자신감도 있었죠.”

무작정 사표를 던졌다. 그저 민간 부문에서도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마침 법무법인 대일로부터 재무자문회사를 만드는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우리 금융산업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경험을 살려 뭔가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지금 그가 하는 일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재무구조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것. 이밖에 부실자산 처분, 자산유동화증권 발행, 해외자금조달, 기업합병 자문 등 국내 금융기관이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공무원 때와 지금의 연봉 차액을 묻자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4∼5배 정도는 된다고 한다. 별도의 성과급을 제외해도 1억500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그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계약직 대표이사다.

박종규 LG투신운용팀장

‘드림 박’ 박종규씨(43세).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증권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최고의 펀드매니저다. 한국투신 2년(97, 98년) 연속 최우수 펀드매니저, 투신업계 98년 연간 펀드 수익률 1위 등 한국투신을 대표하던 그가 지난해 1월 전격적으로 LG투신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됐다.

“83년 입사후 16년 동안 한 회사에 있었습니다. 정든 회사라 정리가 쉽지는 않았지요.”

그는 계약직으로의 변신에 대해 직업이 바뀐 게 아니라 더 좋은 조건의 직장에서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존 투신사들은 일한 만큼 보상받는 체계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표한다. 돈문제야 한국투신이 임금총액까지 금융당국에 의해 규제받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펀드매니저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과 힘을 실어주는 배려가 아쉬웠다는 것이다.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펀드매니저가 2명이었는데, 지금은 14명으로 늘었습니다. 모두 제가 뽑았죠. 오너의 입김보다 제 생각이 많이 반영되고 있어요.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니까 일할 맛이 나는 거죠.”

투신사에 근무할 때 그의 연봉은 50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기본급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얼마를 받았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 성과급이 정산되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고 만 말한다.

현재 그의 손을 거치는 펀드 액수는 1조7000억원 정도. 더구나 그는 지난해에도 ‘트윈스 챌린지’로 최단시일 내에 100%를 넘는 수익률을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펀드매니저의 경우 수익률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되고 그것은 기본급의 몇 배나 되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연봉은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박기준 중앙인사위원회 직무분석과장

박기준씨(35)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회계 컨설팅 분야에서 잘 나가던 회계사였다. 97년 32세의 나이로 동료들과 함께 ‘갈렙 & 컴퍼니’ 회계법인을 설립해 재경부와 연세의료원, 삼성물산 등을 컨설팅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개방형 공무원 공채에 응시,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연봉 3000만원의 4급 계약직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연봉이 3분의 1로 깎이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의 공복’이 된 이유는 의외로 소박하다.

“IMF 사태가 터졌을 때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국가 금융시스템이 낙후되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정작 그 속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아무 불편이 없다는 거예요. 뭔가 공무원 조직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공채 소식을 들었고, 제 경험을 살려 국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보자는 생각으로 응시했던 거죠.”

물론 갈등이 없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의 반대도 심했고, 가족도 환영할 리 없었다. 그래도 그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젊을 때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기가 힘들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월급이 갑자기 줄어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돈보다 값진 경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저는 자유인이었거든요. 처음으로 조직인으로서의 생활을 체험하고 있고, 또 정부의 메커니즘도 알게 되었고….”

그가 하는 일은 개방형 공무원 임용제의 틀을 잡는 것. 어떤 자리를 어떤 방법으로 개방해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을 조화시켜 국가 조직을 강화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 일을 마치면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않더라도 미련없이 떠날 계획이란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진호 주택은행 증권운용팀 대리

이진호씨(36)가 정규사원에서 계약직으로 전환한 것은 98년 11월. 은행에서 계약직 주식운용팀을 꾸리며 행내에서 2명을 선발했는데,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을 박차고 미래가 불확실한 계약직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 그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93년 입사후 순환보직제도 때문에 일을 익힐 만하면 보직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항상 하나의 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온 거죠.”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해도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씩 빨라졌을 뿐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잡무가 사라진 대신 업무 강도가 훨씬 세졌다는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래도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업무시간 외에도 항상 채권거래의 동향분석에 신경이 곤두선다고 한다.

“전에는 월급으로 약 3000만원을 받았는데, 계약직이 되면서 기본급은 더 낮아졌어요. 복지도 더 취약하고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입에 풀칠도 못할 정도죠.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씨가 속해 있는 계약직 증권운용팀은 지난해 평균수익률보다 4%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20억원 이상의 추가수익을 은행에 안겨주었다. 이들이 받은 성과급은 총 10억원으로, 이씨도 세금을 제외하고 1억5000만원 정도를 챙겼다.

직원 사이에 연봉 차이가 너무 나면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까지는 회사에 돈을 벌어주는 직원이나 회사 돈을 축내는 직원이나 똑같은 액수를 받게 돼 있었어요. 그게 과연 올바른 건가요?”



주간동아 218호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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