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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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 못그리는 정치판

  • 입력2006-06-06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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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그림’ 못그리는 정치판
    새해, 새 세기, 새 천년을 맞는다. 지난 2년여,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라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다. 일부 계층의 희생이 따랐고 계층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을 보면서도, ‘위기를 벗어났다’는 대통령의 공언을 믿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면서도 걱정스러운 것은, 역사의 대 전환점에서 넓고도 멀리 보는 국가적 준비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이다.

    신문-방송에서는 현란한 수사와 낯선 단어들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펼쳐 보이고 있지만, 정작 치밀하면서도 열정을 지니고 한국사회의 장래를 생각하는 기관이나 집단이 과연 어디에라도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중심축인 정치권의 개혁 전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정치개혁이 거론되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집권당을 중심으로 정치개혁이 논의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에 관한 한 아무 성과가 없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럴 뿐 아니라 애당초 정치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는 엄청난 시각 차이를 드러내 왔다. 국민 눈에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따지는 일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새 정부 출범 후 여-야 정쟁에서 중심적 논란거리의 하나가 돼온 정부형태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정치문화에 비추어, 또는 남북대치의 분단상황에 비추어 대통령제 유지가 적절한지 내각제개헌이 필요한지 아니면 제3의 정부형태가 바람직한지, 당파적 이해를 떠나 이 문제를 따져보려는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다. 정부 형태에 관한 집권당의 당론 자체가 지극히 애매하고 가변적 상태에 놓여 있는 형편이다. 당략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건국 후 50년을 넘겨오면서도 우리는 정부형태 문제 하나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셈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정치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토록 말썽이 돼온 정부형태에 관해 학자들의 연구 또한 제대로 축적돼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형태에 관한 문제는 정치학자와 헌법학자들의 관심이 중첩되는 영역인데, 그 어느 쪽에서나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논란 중인 국회의원선거구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의원선거구제도 문제를 ‘개혁’과제로 설정하는 것부터 적절치 못하다. 공정성 차원의 결함이 없는 한 선거구제도는 정부형태 및 정당구도와의 적합성 차원에서 검토될 성질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거구제도는 정부형태를 선결하고 이에 맞춰 따져볼 의제다. 같은 선거구제라 하더라도 정부형태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정치적 의미는 다르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비례대표제가 갖는 의미는 대통령제인지 내각책임제인지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정부형태 문제를 불명확하게 남겨둔 채 정치권은 의석 계산에만 골몰한 채 선거구제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선거구제에 관한 객관적인 학문적 연구 역시 초보적 단계를 못벗어나기는 마찬가지다. 정당제도 문제에 관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들 연구주제에 관심을 가져온 필자로서도 자괴감을 떨치기 힘들다.

    이처럼 우리는 나라의 기본틀인 정부형태와 의원선거구 문제조차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다. 언제까지 이 문제들을 놓고 다툼을 계속할 것인가. 적어도 통일이 될 때까지 유지할 정부형태와 의원선거구제를 이제는 정착시켜야 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국회 안에 초당파적인 정치제도연구심의기구를 설치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는 합의를 이뤄낼 수는 없는가.

    새 시대를 맞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허술해 보인다. 나침반과 해도(海圖)도 없이 21세기의 대해(大海)를 표류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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