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2

1999.12.09

‘영어 사대주의’를 경계한다

  • 입력2007-04-26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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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화’의 열풍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자유 시장과 효율이라는 그럴 듯한 구실을 내세운 ‘돈’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천년을 이어온 중화 중심주의의 질곡이 이제는 미국 숭배의 신앙으로 바뀌어 정부와 재벌, 지식인들은 ‘개방’을 외치면서 스스로 문화 예속의 길로 부나비처럼 뛰어들고 있다.

    천년 동안의 모화 사상과 우리말 천시가 무엇을 남겼는가. 사상의 빈곤과 문화의 피폐뿐이다. 어떤 이는 한자를 쓰지 않으면 우리의 문화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실상은 그 정반대다. 우리가 우리의 정서-생활-생각을 우리말과 글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천년의 역사 동안 중국 흉내나 냈고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창성 있는 글자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란 ‘훈민정음’ 자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민들이 만들어낸 비문자 문화, 곧 고려자기 석굴암 판소리 같은 것들이 아닌가. 글자문화 또한 서민들의 정서가 녹아있는 ‘언문’의 춘향전 같은 것들이 아닌가. 지금 세상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는 둥 얼빠진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말 같지 않은 것이 마치 말인 것처럼 행세하는 현실이 지금 한국의 문화수준이다.

    무릇 ‘공용어’를 지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것은 한 나라 안에 두개 이상의 언어가 모어 또는 그 비슷하게 사용될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다. 우리 국민 중 영어를 한국어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0.01%나 될까. 그러니 얼토당토 않은 말일 뿐이다. 어쨌든 영어 사대주의, 숭미 사대주의는 경제 위기의 기회를 타고 정부와 재벌이 앞장서 설치는 바람에 온 국민을 감염시키는 전염병처럼 돼버렸다.



    문제는 국민 대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예속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일부 재벌, 관료, 지식인들에게 있다. 왜 그들은 한문을 숭상하고 영어를 숭배하는가. 겉으로는 개방과 효율과 세계화를 내세우지만, 속에는 의식하든 못하든 ‘기득권 옹호’라는 절실한 이익이 숨어 있다. 밖으로 선진 강대국의 충실한 동생이 되고 안으로 일반 대중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들 위에 군림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특권을 누리려는 가진 자의 욕심 때문이다.

    세기말을 특징짓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영어 제국주의에 맞서서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에는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과거의 뿌리깊은 사대주의는 숭상의 대상만 달리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한글문화운동’ 활발하게 일어나야

    진정한 세계화는 강대국의 문화와 규범으로 세계가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획일성의 세계화’ 일 뿐이다. 진정한 세계화는 세계 각 지역, 각 인종, 각 민족의 문화와 규범의 독자성이 존중되고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 곧 ‘다양성의 세계화’다. 이것이 민족 문화와 세계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정부이고 대기업이며 지식인에 있다. 다시 말해 가진 자들이다. 이들이 각성하지 않는 한 우리의 문화는 피폐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사회는 정체성의 혼돈으로 수많은 갈등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사회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글문화 운동’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말과 글로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고 기록하려는 운동이다. 영어와 한자는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익히면 된다.

    문화의 중심은 한글이 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득권층이 자신의 몫을 조금이나마 내놓고 대중과 엘리트의 문화거리가 좁아져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자주운동일 뿐 아니라 민주운동이다. 지식인의 자기반성 운동이자 자기계몽 운동이다. 이 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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