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황경성의 일본 엿보기

일본열도 울린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

조성진·손열음과 아름다운 라이벌, 한일관계의 이정표 돼야

  • 일본 홋카이도 나요로시립대 보건복지학부 교수 vianne84@nayoro.ac.jp

    입력2016-05-17 16: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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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이후 피아니스트 조성진(22)만큼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피아노의 넋, 피아노의 마음’이라 표현되기도 하는 쇼팽의 업적과 위상을 기리고자마련된 제17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쇼팽콩쿠르)에서 조성진은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클래식 강국인 일본에서도 조성진의 인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조성진은 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터라 일본 내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편이다. 여기에 쇼팽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이 더해지니 인기가 더욱 치솟았다. 지난해 11월 18일 쇼팽콩쿠르 우승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이 일본 도쿄에서 열렸을 때 내외신 기자 100여 명이 몰렸을 뿐 아니라 도쿄, 오사카, 삿포로에서 열리는 쇼팽콩쿠르 입상자 6명의 갈라콘서트 투어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그런데 이 갈라콘서트를 소개한 일본 기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연주에서 조성진 외 5명이 야마하 피아노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피아니스트
    5명이 야마하 피아노를 사용했다는 자랑스러움보다 우승자 조성진이 이 피아노를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조성진은 쇼팽콩쿠르 때뿐 아니라 연주회에서도 스타인웨이를 택했다.



    손열음과 인연, 韓日 오간 듀오 콘서트

    조성진 열풍을 보며 떠오른 일본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바로 쓰지이 노부유키(·28·사진)다. 쓰지이가 시종 온몸을 흔들며 연주하는 모습은 팝스타 스티비 원더를 연상케 한다. 그렇다. 쓰지이는 시각장애인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전맹(全盲)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널리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09년 스물한 살 때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중국 장하오천과 공동우승을 하면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전맹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라는 호기심 어린 시선보다 연주 실력 자체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혹자는 이 콩쿠르가 세계 3대 국제콩쿠르에 들지 못하고, 입상자 가운데 크게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이유 등을 들며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2위 수상자가 한국의 손열음이었음을 기억하면 그런 말이 일고의 가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손열음이 쓰지이를 부축하며 축하해주던 시상식 장면은 많은 이에게 국경을 넘은 아름다운 우정으로 기억됐다. 그 후 손열음은 2011년 제14회 차이콥스키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를 하며 세계적인 연주가 반열에 올랐고 쓰지이와 함께 도쿄, 서울을 오가며 듀오 피아노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쓰지이는 1988년 9월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아나운서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시간이 흘러도 눈을 뜰 줄 모르는 아들을 보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이 부부에게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가 나왔다. 쓰지이는 안구가 성장하지 않는 소안구 장애를 안고 있었던 것.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쓴 당시 일기는 깊은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저녁노을 바라보기를 좋아하던 어머니는 그 광경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아들 생각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만 해도 눈물짓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냥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의기소침해 있으면 아들도 자신도 모두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장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서점과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장애아 관련 육아책들을 뒤지다 우연히 망막색소변성이라는 시각장애를 가진 저자가 맹도견과 함께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에세이를 발견했다.

    이 책을 통해 어머니는 장애가 있어도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거기서 얻은 감동과 용기를 육성으로 녹음해 에세이 저자에게 보냈다. 이를 계기로 쓰지이 모자는 저자의 초대를 받았는데, 이때 아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저자는 평범하게 키우라는 조언과 함께, 어머니가 느끼는 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들과 함께해보라고 권했다.

    이 한마디가 어머니에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됐다. 아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암흑이 아니라 그 나름의 감각 및 공간이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장애아답게’가 아닌 ‘쓰지이(아들)답게’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어머니는 의도적으로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이웃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모성애, 암흑에서 빛을 발견하다

    쓰지이가 생후 8개월에 접어들 무렵 어머니는 스타니슬라프 부닌이 연주한 쇼팽 피아노곡 ‘영웅 폴로네즈’에 맞춰 아들이 손발을 움직이며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깜짝 놀란다. 부닌은 러시아 태생으로 18세 때인 1985년 쇼팽콩쿠르에서 당시 최연소 우승을 하며 일본에 ‘부닌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부닌의 연주 콤팩트디스크(CD)를 반복해서 들려주다 어느 날 CD 표면에 상처가 나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틀어줬는데, 뜻밖에도 아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들었던 부닌의 연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부닌의 연주 CD를 새로 사와 틀어주자 그제야 쓰지이는 기뻐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일을 계기로 쓰지이가 특별한 청각 능력을 지녔고, 음악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에도 쓰지이의 천재성은 불쑥불쑥 드러났다. 두 살이 조금 지났을 무렵 크리스마스이브 밤,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어머니가 콧노래로 징글벨을 부르자 아들은 장난감 피아노에서 음을 찾아내 반주를 했다. 다섯 살 때 미국 하와이 가족여행 중 쓰지이는 쇼핑몰에 있는 피아노로 즉석에서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곡을 연주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들을 음악가로 키워야겠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라도 아들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뭐든 하게 했다. 쓰지이는 앞을 볼 수 없으니 소리와 촉감으로 자연을 접하고, 수영이나 스키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결과적으로 그런 부모의 노력이 쓰지이의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다.

    1995년 일곱 살이 된 쓰지이는 일본 헬렌켈러협회에서 주최한 전 일본 시각장애인 콩쿠르에서 기악 부문 피아노부 1위를 수상했고, 열 살 때는 오사카 센추리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정식 데뷔를 했으며, 2000년 열두 살 때 도쿄 산토리홀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2005년 열일곱 살 쓰지이는 제15회 쇼팽콩쿠르에 참가했지만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비평가상’을 수상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이 대회에서 임동민-동혁 형제가 한국인 최초로 공동 3위로 입상했고, 손열음은 결선 무대에 진출했다.

    이처럼 조성진, 손열음, 쓰지이 노부유키를 이어주는 음악이라는 연결고리를 보면서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떠올린다. 우리는 두 선수의 아름다운 경쟁이 세계 피겨스케이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음을 잘 안다. 극단적인 반한, 반일 감정으로 얽히고설킨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실마리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새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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