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셀프 메이드 맨

수수 빗자루 엮기

심심풀이 생활도구에서 상업용 공예품까지

  • 김성원 적정·생활기술 연구자 coffeetalk@naver.com

    입력2016-05-17 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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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새로 귀농한 이들에게 종종 건네는 말이 있다. 아직 논밭 가진 것 없어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하거나 농사일은 애당초 글러 먹은 청춘이라면 여지없이 한마디 건넨다. “수수 빗자루 엮어봐!” 빗자루를 엮으란 말에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싼값에 쏟아져나오는 플라스틱 빗자루뿐이랴.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되는 예술품 수준의 공예 빗자루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빗자루를 엮어 살아보라는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런 사정이야 일본이나 서양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이 나라들에선 수공예 빗자루 박물관이 생기고, 빗자루 전문가게(www.oglesbroomshop.com)도 등장하며, 빗자루 만들기 워크숍도 개최되고 있다. 빗자루형제(www.thebroombrothers.com)처럼 이래저래 수공예 빗자루로 먹고사는 이도 늘고 있다.

    상품으로만 보면 공산품 빗자루나 수입 빗자루에 비길 수 없겠지만 제 땅에서 나는 재료로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빗자루는 아무래도 뭔가 다른가 보다. 한국에서도 핸드메이드, 수공예박람회나 관련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소비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청춘들 가운데 조물락조물락 수공예품을 만들어 대안 장터나 프리마켓에 내다 파는 경우가 늘고 있고, 공산품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손맛 나는 생활공예품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까닭도 있다. 앞으로 빗자루만 잘 만들어도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딱히 돈 벌 요량이 아니더라도 심심치 않은 손놀림거리로 빗자루 엮기만한 게 없을 듯하다. 이 모든 이유가 아니더라도 귀농, 귀촌자라면 생활도구 하나쯤은 제 손으로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빗자루의 묶음 구조

    꽃술이 오르기 직전 속 찬 갈대를 소금물에 담갔다 빗자루를 만들 수 있다. 이즈음 갈대는 이미 꽃이 폈으니 늦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수수 빗자루 만드는 법을 알아보자. 빗자루의 기본 구조는 간단하다. 길고 곧은 가지로 만든 나무자루가 있고, 자루 한끝에 잔가지나 거친 화본과 식물의 대 또는 줄기, 까락, 술 묶음으로 만든 빗머리가 있다. 빗머리를 철사나 노끈, 삼끈 등으로 자루에 고정한다. 이때 묶음이 중요한데 빗머리를 한 묶음으로 막대에 고정하는 머리고정 묶음과 큰 묶음이 있고, 그다음 수수의 대 부분을 한 묶음씩 나눠 묶는 중간 묶음, 가는 수수 까락을 갈래갈래 촘촘히 꿰매는 작은 묶음이 있다(그림 참조). 활개를 편 듯한 날개 빗자루를 만들 때는 큰 묶음에서 빗술을 조금씩 줄여 갈래 치며 묶는 갈래 묶음이 있다. 이나저나 큰 묶음에서 단계적으로 묶음을 줄여가며 작은 갈래로 나눠 묶는 것은 같다.





    재료와 공구 준비

    빗머리를 만들려면 볕 좋은 날을 골라 수숫대 윗부분을 위로부터 60cm 이상 넉넉히 잘라낸다. 수수 알맹이는 털어내고 굵기와 크기 별로 가지런히 정렬해 한 움큼씩 다발을 만들어놓는다. 빗자루 막대를 만들려면 한 손에 쥘 정도의 굵기로 단단하고 곧은 가지를 45cm 이상 잘라 6개월 이상 건조한다. 건조된 상태에서 나무껍질이 벗겨지지 않아야 한다.

    자루 양끝엔 비걸이 끈 또는 빗머리 고정묶음 철사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을 뚫어둔다. 자루를 준비하는 동안 수숫대를 약 15분 동안 물에 담가 다루기 쉽게 부드럽게 만든다. 자루와 수수 빗머리를 묶고 고정할 철사, 나일론끈, 삼끈을 준비한다.

    공구로는 철사를 구부릴 펜치나 니퍼와 줄을 자를 가위 또는 칼, 수수 빗머리를 자를 작두, 빗자루를 고정하고 넓게 펼 바이스가 필요하다.  바이스가 없다면 각재 2개를 맞대고 드릴로 구멍을 뚫은 후 여기에 나비볼트 2개를 끼워 만들 수 있다.



    빗머리 고정

    가지런히 정렬한 수숫대 끝을 맞춰 자루를 감싼 후 철사로 단단히 고정한다. 이때 미리 자루 끝에 뚫어둔 구멍으로 철사를 통과시킨다. 단단하게 철사를 감되 세 차례 정도 나눠 감는다. 철사 끝은 수숫대 속으로 감춰 마무리한다.

    빗머리를 펼쳐 바이스로 고정한 후 노끈이나 삼끈, 가죽끈 등으로 수숫대를 몇 갈래씩 나눠 묶는다. 처음엔 전체 수숫대를 한 묶음으로 묶고 점점 묶음을 줄여가며 묶는다. 수수 까락은 좀 더 촘촘하게 나일론끈으로 꿰매듯 묶는다. 자루에 묶은 수숫대를 날실로, 삼끈을 씨실로 삼아 한 번씩 교차하며 통과해 직조 모양으로 고정한다. 직물로 짠 수숫대를 접어 다시 같은 방식으로 직조한다. 이렇게 직물로 만든 고정 부분은 두 겹이 된다. 빗머리 끝을 작두로 잘라 길이를 맞춘다.



    빗머리 보강과 나무자루

    빗머리를 두껍고 넓게 만들려면 수숫대를 속대와 바깥 대로 나눠 자루에 고정한다. 속대는 수수 까락 부분은 길게, 대 부분은 짧게 자른 것을 먼저 자루에 고정하고, 다시 이 위에 대가 긴 수숫대를 둘러 막대에 고정한다. 이때 자루에서 수수 빗머리가 빠지지 않도록 자루를 살짝 깎아 굴곡을 만들어둔다. 요즘 공예적인 빗자루는 나무자루 부분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자루뿐 아니라 자루걸이 끈, 빗머리 묶는 끈의 재질과 색상을 달리해 멋을 낼 수 있다. 



    수공예 현재화

    손으로 하는 일이 왜 고달프지 않을까. 서양 농부들은 빗자루 만드는 도구를 발전시켜 힘을 덜고 있다. 빗자루를 잡아 고정하고 실을 걸어 단단히 돌려묶기를 하기 위한 작업대라 할 수 있다. 나무나 약간의 철물을 결합해 만드는데 동력은 사용하지 않는다. 빗자루뿐 아니라 사라지고 있는 생활공예, 생활기술들을 현재화하는 데는 디자인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고, 도구를 적절한 수준까지는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사진, 영상, 글로 기록해 콘텐츠화하고 대안 장터나 수공예 축제를 통해 알릴 필요도 절실하다.

    빗자루 만들기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수 빗자루를 우습게 볼 수 없다. 빗자루 엮는 사람마다 솜씨도 다르니 한갓 빗자루라도 격이 다르다.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수수를 심고 키우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일까지 몸과 손, 마음 쓸 일이 촘촘하다. 어디 그뿐이랴, 제 땅에서 거둔 것으로 제 삶에 쓰일 기물 하나쯤 만들다 보면 수월찮게 깨끗한 깨달음 하나 너끈히 얻게 된다. 하찮고 섣부른 생각일랑 어느새 저만치 쓸려 간다. 농한기에 빗자루 몇 자루 엮으며 마음도 잔잔히, 생각도 잔잔히 꾸벅꾸벅 평안해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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