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6

2016.05.04

사회

휴대전화 ‘약정의 노예’ 부활

무조건 2년 강권…“통신사들, 1년짜리는 인센티브 줄이거나 안 줘”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5-03 09: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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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으로 사라졌던 ‘약정의 노예’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약정의 노예’란 과거 단말기에 대한 지원금 제한이 없던 시절 각 이동통신사가 약정기간에 따라 할부금을 할인해주는 계약을 소비자와 맺은 후 이를 중간에 해지하면 단말기 할인 금액만큼 위약금을 물린 관행을 가리킨다. 2014년 단통법이 발효된 이후 단말기 지원금의 최대치가 법으로 정해지면서 할인 금액이 축소됐고 사용 기한 약정을 통한 단말기 가격 추가 할인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결국 약정할인제도는 사라지고, 할부기간 설정만 남았다.

    하지만 최근 선택약정할인제가 도입된 후 ‘악마의 약정제’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선택약정할인제도는 단통법 시행 이후 축소된 단말기 공시지원금 대신 매달 기본요금을 20%씩 할인해주는 제도다. 통화료를 할인해주기 때문에 중간에 해지하면 할인받은 통신비만큼 위약금을 물게 된다. 대학생 김재홍(25) 씨는 “선택약정으로 통신비가 줄어든 점은 좋지만 2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길어 휴대전화를 모시고 사는 것 같다”며 “약정을 중도 해지하고 휴대전화를 바꾸려 해도 위약금 액수가 너무 커서 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소비자에겐 유리한 1년 약정

    그럼에도 선택약정할인제 가입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월 25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선택약정할인제 누적 수혜자가 전국적으로 501만 명에 이른다. 수혜자가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해 4월 선택약정할인율이 12%에서 20%로 상향조정된 이후다. 이 기간 신규 가입자의 선택약정할인 선택 비율이 10% 이하에서 20% 이상으로 급증했다.

    실제 스마트폰 같은 고가 휴대전화를 구매할 경우 기존 공시지원금보다 선택약정할인이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어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 3사 신제품의 월 통신비가 5만 원 이상이라면 선택약정할인을 선택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소비자의 반응도 좋고 공시지원금보다 싸게 신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나, 2년이라는 긴 약정기간 때문에 소비자의 불만도 차츰 커지는 상황이다.



    물론 약정기간을 줄일 수 있다. 선택약정할인제에는 2년 약정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년 약정할인을 선택하면 해지 위약금을 최대 20~30% 줄일 수 있다. 신청 방법은 간단하다. 매장에서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선택약정할인 기간을 1년으로 신청하면 된다. 이동통신사별로 온라인 구매를 할 때는 사이트 구매 창에서 24개월과 12개월 선택약정할인 기간 중 12개월을 선택하면 된다.

    1년 약정할인을 선택해 약정금을 채운 후 남은 단말기 할부금을 모두 내면 위약금 없이 자유롭게 새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 약정 기한을 못 채워 위약금을 낼 때도 2년 약정에 비해 1년 약정이 유리하다. 이동통신  3사가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위약금 액수는 모두 비슷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선택약정으로 할인받은 통신료가 매달 1만 원이고 9개월 동안 휴대전화를 이용했다면 SK텔레콤의 경우 2년 약정으로 계약했을 때 위약금이 7만8000원, 1년 약정의 경우는 6만 원이다. KT의 위약금도 SK텔레콤과 같다. 역시 1년 약정이 2년 약정에 비해 위약금 측면에서 유리하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년 약정 위약금은 7만5000원, 1년 약정은 역시 6만 원으로, 1년 약정이 1만5000원 이익이다(사진 참조).

    휴대전화를 자주 새 제품으로 교환하거나 분실이 잦은 소비자라면 당연히 1년 약정이 유리하다. 휴대전화를 자주 바꾸지 않는 소비자라도 1년 약정이 더 유리하기는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분실, 혹은 파손 위험이 있으니 보험 차원에서라도 1년 약정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1년 약정 기간이 끝나도 휴대전화에 문제가 없는 경우 통신사에 연락해 약정기간을 연장하면 2년 약정과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1년 약정이 소비자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지만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판매자는 대부분 1년 약정은 건너뛰고 2년 약정으로 유도한다. 기자가 직접 서울지역 여러 판매점에서 휴대전화 구매 상담을 받아본 결과, 대부분 1년 약정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1년 약정은 없느냐고 묻자 그제야 상품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일부 판매점에서는 “1년 약정을 걸면 2년 차에 다시 약정을 걸 수 없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각 이동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1년 약정 계약 후 약정 연장과 관련해 문의한 결과 3사 모두 “1년 약정이 종료된 후 같은 요금제와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면 1년 추가 약정을 막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내용은 없다”고 답했다.



    통신사 장려금 차등 지급이 원인

    판매점에서 1년 약정을 회피하는 이유는 이동통신 3사의 장려금(인세티브)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휴대전화 판매원   A씨는 “2년 약정제와 1년 약정제의 인센티브 차이가 커서 2년 약정을 먼저 설명하는 편”이라며 “일부 통신사는 1년 약정의 경우 지원금이 아예 없다”고 설명했다.

    각 이동통신사는 “1년과 2년 약정제 간 지원금 차이가 크다”는 주장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백용대 LG유플러스 홍보팀장은 “선택약정 1년과 2년의 인센티브 차등은 없다”고 일축했다. KT 관계자는 “가입자 기대수익을 감안해 인센티브 정책을 운영한다”며 “일부 매장에 따라서는 24개월 약정의 판매수수료가 높게 책정될 수도 있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김대웅 SK텔레콤 PR팀 매니저는 “12개월 약정과 24개월 약정 상품의 리베이트 차등은 일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그 차등이 크지는 않다”고 밝혔다. 김 매니저는 “차등 액수는 적지만 현장에서 판매하는 사람들은 크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상임이사는 “자급제나 중고 휴대전화 개통 등은 12개월 선택약정과 24개월 선택약정 전부 상담이 잘 이뤄지고 있지만 통신사의 새 제품은 경우가 다르다”며 “통신사 상품 판매와 선택약정을 함께 진행할 때 구매자가 1년 약정을 선택했을 경우 2년 약정을 선택했을 때에 비해 통신사가 판매자에게 주는 판매 장려금이 현저히 적다”고 밝혔다. 이 상임이사는 “일부 통신사는 구매자가 1년 선택약정으로 가입하면 인센티브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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