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6

2016.05.04

경제

툭하면 구제금융 기업의 도덕적 해이

유일호號 ‘산업개혁’ 카드 꺼냈지만 누구도 손실 책임 안 지려는 분위기가 문제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5-03 09:43:2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취임 100일을 맞은 유일호호(號) 경제팀이 드디어 ‘산업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구조조정의 칼을 뽑아들었다.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정된 조선·해운업계에 오래전부터 적신호를 보낸 것에 비하면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보다 과연 구조조정이라는 구태를 벗을 수 있을지가 관심 대상이다. 2000년 이미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를 밟았으나 1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집중적인 구조조정 대상이 돼버린 대우조선해양은 그야말로 구조조정 구태의 산증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2009년 파산했다 5년 만에 정부 관리를 완전히 벗어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세우는 ‘산업개혁’은 신산업 육성과 기존 취약한 산업계의 구조조정 등 두 가지 뼈대로 이뤄져 있다. 유 부총리는 4월 19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추진한 4대(노동·공공·금융·교육) 개혁에 산업개혁을 더해 사물인터넷(IoT) 등 신산업에 금융 및 재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사업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부문. 지금 모두의 관심은 산업 구조조정에 쏠려 있다. 그간 효자산업이던 조선·해운 부문이 큰 부실을 보이면서 휘청거리자 이에 대한 우려도 큰 상황이다. 유 부총리도 “기존 구조조정 대상 가운데 국민 경제에 영향이 큰 업종부터 상반기 내 취약 상황을 종합점검하겠다”며 “부실기업은 관련법에 따라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철강·석유화학 그나마 안정

    정부의 구조조정 이야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금융위원장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개최하면서 구조조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부문으로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 5개 산업을 선정하고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5개 부문은 모두 경기에 민감하며 공급과잉으로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철강이나 석유화학, 건설 부문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양호하다. 철강업계는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업계의 자발적인 생산량 감축으로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혼란을 겪던 석유화학업계도 마찬가지다. 건설 부문은 지난해 수주 급증으로 당분간 불안 요인은 없는 상황.

    그러나 조선과 해운 부문은 상황이 심각하다. 국내 조선업계는 유가 하락과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무방비 상태에서 선박 발주량 감소라는 타격을 맞은 데다 과거 무리하게 수주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상황. 대표적인 업계 3사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도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건설 부문과 달리 여전히 수주량이 늘어날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아 암담한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이 4월 26일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흑자전환했다고 발표한 것이 그나마 낭보라 할 수 있다.



    해운 부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운임하락분에 더해 물동량 감소로 2016년에만 25% 이상 추가로 운임이 하락했다. 게다가 세계 해운업계의 얼라이언스(동맹)가 재편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해운업계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얼라이언스란 주요 선사끼리 항만 공동운항, 선박 공유협정, 배선 협조 등을 제휴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국내 대표 해운업체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경영 실적이 날로 악화하면서 새로 재편되는 얼라이언스에서 국내 업체들이 배제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국내 업체들이 주요 얼라이언스에서 배제될 경우 해운업계 전반에 파장이 우려되는 상황.

    현대상선은 최근 현대증권을 매각하는 등의 자구책 시행으로 약 2조6000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했으며 한진해운도 1조9000억 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해 급한 불은 끈 상태. 업황의 개선 전망이 어두운 터라 중·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은 그동안 지지부진하다 20대 총선이 끝난 4월 중순부터 다시 본격화됐다. 유일호 부총리의 기자간담회는 이러한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셈. 4월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진행된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금융감독원,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업종을 경기 민감 업종(조선·해운), 부실 징후를 보이는 대기업 그룹 및 개별 기업, 공급과잉 업종(건설·석유화학·철강) 등 세 가지로 분리해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조선·해운 악화 계속…집중 구조조정 대상

    특히 상황이 계속 악화하는 조선·해운  2개 업종에 구조조정 노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조선 부문은 저유가와 선복량(해운용역 공급량) 과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내 업계가 강세를 보이던 해양플랜트와 상선 분야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업계 중심으로 선종별 수급 전망, 국내 조선업 전반의 미래 포트폴리오 및 업체별 최적 설비 규모, 협력업체 업종 전환 방안 등을 제시하고자 컨설팅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만 3조 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한(회계 정정 이전 영업손실은 5조5000억 원가량)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기존 계획에 더해 인력 감축과 급여체계 개편, 비용 절감 등 추가적인 자구계획 수립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한 5월 말까지 경영 상황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각 우발 상황에 따라 인력·임금·설비·생산성 등 전반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는 가급적 자구책을 강구하고 채권 보전을 위해 선제적인 관리를 개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 STX나 성동조선해양 같은 중소형 조선사에 대해서는 회생절차 전환이나 단계적 통폐합 또는 매각을 추진할 예정이다.

    해운 부문은 개별 기업의 정상화와 함께 글로벌 해운업계 내 얼라이언스 재편 논의과정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KDB산업은행 등 관계기관들에서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얼라이언스 재편 논의 동향을 파악하고 국내 해운사들이 얼라이언스에 잔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국내 양대 해운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경우 업계가 한창 호황일 때 비싸게 계약한 용선료(선박 대여료)가 수익성 향상의 발목을 잡고 있어 가장 큰 골칫거리다. 두 기업 모두 용선료 인하 협상 등을 골자로 한 정상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현대증권 매각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난 현대상선은 특히 용선료 인하 협상이 향후 실적 향상의 중요한 요인이다. 채권단에서는 용선료 인하에 실패할 경우 원칙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KDB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이라 결국 정부 책임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이는 한진해운도 마찬가지다.



    부실기업에 국책은행 돈 20조 원 묶여 있어

    조선·해운업계에서도 특히 부실 규모가 큰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은 모두 주채권은행이 국책은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4조 원, 현대상선에 1조2000억 원, 한진해운에 7000억 원가량 여신을 제공했으며 한국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9조 원, 한진해운에 500억 원가량의 여신을 제공한 상태다.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조선·해양 부문의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에게 제공한 여신은 총 2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기업이 부실해졌다는 것은 이러한 여신을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의미. 국책은행들은 적어도 수년간 이를 부실채권으로 돌려야 하는 데다 구조조정을 위해 이들 부실기업에 추가적으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지금까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말을 아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간담회에서 유 부총리는 “구조조정을 위해선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 등 여러 방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해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는 4월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가시화됐다. 금융위원회는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 추진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본 확충 등에 대한 보완책을 강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자금 규모와 관련해서는 관계자 모두 말을 아끼고 있지만 금융계에서는 2조 원 정도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리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현금으로 자본을 확충할 경우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난점이 있지만 현재 야당 측에서도 취약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라 차차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과거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 그리고 기업 경영 부실에 혈세를 투입하는 행위와 관련한 정부 측의 국민에 대한 책임, 다시 말해 ‘책임성’ 문제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구제금융 외) 별다른 수는 없겠지만 ‘책임성’ 측면에서 과거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며 “국민의 돈을 쓰는 데 대한 책임 문제만이라도 과거와 달라야 한다”고 ‘주간동아’에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놓고 매우 고심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책임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6년째 주인 없는 회사는 누구 책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업계가 겪은 상황은 지금 국내 조선·해운업계가 겪는 상황과 비견할 만하다. 일본과 유럽 경쟁 업체에 밀리다 결국 심각한 경영 위기에 빠진 포드·GM·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3사는 의회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GM은 2009년 파산 신고 후 정부가 대주주인 회사로 새로 태어났다 2013년 정부가 보유 지분을 모두 정리하면서 정부 관리를 완전히 졸업했다. 약 5년 만의 일이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2000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후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의 대주주 지위가 기업회생절차를 졸업하고도 계속됐고 16년째 ‘주인 없는 회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이번 대규모 부실 사태로 대우조선해양은 다시 한 번 ‘세금 먹는 하마’가 될 전망.

    두 사례가 왜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주진형 전 선대위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구제금융을 통해) 도와주는 것을 주주, 채권자, 직원, 정부, 심지어 국회마저 모두 당연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 그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의 심리는 모두 동일하다고 말한다. 경영진은 회사가 넘어갈 경우 국가 경제에 미칠 여파를 과장해 서둘러 구제금융을 받고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려는 심리를 가졌는데, 이는 한국이나 미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가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구제금융을 남발하다 보니 주주나 경영진, 직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쉽게 도덕적 해이에 빠져든다는 게 주 전 부실장의 지적이다.

    구조조정 논의를 정부가 주도하는 국내 분위기에도 주 전 부실장은 우려를 표한다. “기업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기업 경영진이다. 회사 회생방안은 경영진이 짜는 것이 제일 좋다. 채권자들만 해도 해당 산업과 기업 내용을 잘 모른다. 정부는 더 모르고, 정당은 더욱 그러하다. (중략) 따라서 구조조정 계획은 회사 경영진이 먼저 만드는 것이 정수다.” 또 기업이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는 위기에 빠질 경우 결국 주주부터 경영진, 노동자까지 모두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정부는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 전 부실장은 주장한다. “손실 분담 계획도 기업이 먼저 만들고 그것을 갖고 채권자와 만나 협상해야 한다. 정부는 관찰은 하되 그 회생방안이 구체화되고 채권자 및 직원과 협상이 결렬됐을 때 개입하는 것이 좋다. 법정관리를 처음부터 배제하고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관계자가 모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가 결국 GM과 대우조선해양 두 사례의 간극을 낳았다고 주 전 부실장은 말한다. “미국에서는 수백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기업인 GM을 일 년도 안 되는 기간에 법정관리와 구조조정을 했고 2년 만에 신규 상장을 했으며 5년 만에 정부가 완전히 손을 뗐다. (중략)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는 공적자금을 통한 구제금융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니 KDB산업은행을 통한 간접적 구제금융을 선호한다. 미봉책만 남발하게 된다. 그러면서 실제적인 구조조정은 차일피일 늦어져만 가고, 일반 채권자들은 빠져나가며, 정부 은행의 대출만 늘어난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정부의 구조조정 협의체를 주관하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부실기업의 경영책임 문제에 대해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정부가 그 방향을 직접 추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주주들이 나서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가 KDB산업은행이며 20조 원이 넘는 국책은행 여신이 이들 부실기업에 묶여 있다는 걸 임 위원장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주식시장은 어떻게? ▼ “구조조정 결과는 승자독식,  주가 상승 기대엔 역부족” ▼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주식시장에 미칠 여파 또한 관전 포인트.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4월 26일 내놓은 시황분석에서 “시장 측면에서 구조조정은 호재”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이후 경제환경은 대부분 승자독식 무드로 전개됐고, 주가지수는 패자는 잊은 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승자만 기록”하기 때문이라는 것. 코스피 역사를 돌이켜보면 상장 폐지 종목이 늘던 해에 주가 역시 상승했다고 김 연구원은 지적한다.
    그러나 이번 구조조정이 시장 분위기를 반전하는 기회가 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김 연구원의 전망. 그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계획이 시장 측면의 액션 플랜으로 구체화되기 전까지 시장은 중립 이하의 기류를 보일 개연성이 높다”며 섣불리 시장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보다 관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이번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이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현 정치 지형도와 경제·사회적 반발 여지를 고려할 경우 당시만큼 대대적이며 과감한 구조개혁이 전개될 개연성은 적다”며 “이번 구조조정을 시장 터닝포인트보다 이후를 고민하는 축적의 시간쯤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