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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사초남’ 리포트

영포티가(Young Forty) 된 X세대

베이비붐 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에 낀 40대…가정과 회사에선 중추

  • 구희언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hawkeye@donga.com

영포티가(Young Forty) 된 X세대

당신의 핫플레이스는 서울 홍대 앞인가, 강남역인가. 2015년 12월 23일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에서 성인 남녀 2195명을 대상으로 연령대별, 성별 선호하는 핫플레이스를 조사한 결과 20대는 홍대 앞을 선택했고 30, 40대는 강남역을 꼽았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건 강남역에서 노는 언니오빠들이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40대 초반의 ‘사초 세대’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가 주류를 이룬다. 한때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X세대라고 명명했고, 베이비붐 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에서 눈치싸움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남은 한국의 ‘사초남’(40대 초반 남자)들은 누구일까.



중년,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영포티가(Young Forty) 된 X세대

동아DB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40대(40~49세) 인구수는 893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에 달한다. 전체 인구를 통틀어 가장 인구수가 많은 연령대다. 이들 중 ‘사초남’은 1971년생(만 45세)부터 76년생(만 40세)까지가 해당된다. 90년대 X세대로 불리며 시대를 앞서가는 면모로 기성세대의 혀를 내두르게 한 이들은 지금 가정과 직장에서 자식, 회사,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위치에 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 책임이 있고, 회사에서는 차장이나 부장 같은 중간간부로서 큰살림을 책임져야 하다 보니 늘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맡고 있는 책임에 비해 이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젊은이들에게는 ‘꼰대’나 ‘아재’(아저씨) 취급을 받고, 윗세대에게는 ‘철없는 둘째’처럼 여겨지며 홀대받아온 것이다.
한 중견기업 차장이자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회사원 김영수(44·가명) 씨는 “얼마 전 뽑은 신입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절반이었다. 자식처럼 생각해 회사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줘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 답답할 때가 많다. 식사 후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해놓고 자기들끼리 마시고 들어오는 걸 보니 서운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취미는 등산이다. 회사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자 한 달에 한 번 초교 동창들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버 밴드에서 일정을 맞춰 산행을 다녀온 뒤 술 한잔 하는 게 낙이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얼마 전 친구들과 다녀온 인왕산 사진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본 둘째아들이 “아재 같다”고 해 또 한 번 상처받았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중년의 사회학’에서 ‘신세대’ ‘X세대’ ‘N세대’ 등으로 명칭을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아온 젊은 세대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샌드위치 세대’ 혹은 ‘낀 세대’로 인식돼온 중년세대에 주목했다. 정 교수는 저서에서 ‘중년세대는 가난의 쓰라린 기억과 풍요의 달콤함, 독재의 암울함과 민주화의 감격을 모두 아는 세대’라며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거치며 재계와 금융권, 학계에서까지 중년세대 사장과 임원, 학장이 대거 등장했지만 한편에서는 구조조정의 매서운 칼바람을 맞아 실직 가장으로 전락한 것도 중년세대다. 이처럼 양극단을 체험하는 것이 중년세대의 숙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는 중년세대의 공통점으로 ‘시대’나 ‘사회’에 대한 거대담론보다 삶의 터전인 직장과 가족, 개인의 소박한 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충분한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사초남’은 선배 세대에 비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현재 40대의 임금 수준은 3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LG경제연구원은 2015년 11월 ‘세대별 일자리 관점에서 본 한국 고용의 현주소’ 보고서를 통해 2014년 4월 전체 업종별 종사자의 연령대별 평균 임금을 계산했는데, 40대는 157만9000원으로 30대(176만2000원)의 뒤를 이었다. 가장 창업을 많이 하는 연령대도 40대다. 국세청에서 발간한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신규 창업자 수는 1126명이었는데, 40대 창업자가 32%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5.3%로 뒤를 이었다. 업종은 소매·음식업이 가장 많았다. 40대는 법인, 일반, 간이, 면세사업자 등 모든 사업자 유형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통계청의 ‘2014년 개인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집을 소유한 국민이 1265만 명인데, 이 가운데 40대 이상은 전년보다 30만 명 증가했으나 30대, 20대는 감소했다.
모바일 쇼핑업계에서도 ‘사초남’은 주목받는 큰손이다. 제일기획 빅데이터 분석 전문조직 제일DnA센터에서 2014~2015년 전국 20~40대 남녀 패널 8000여 명의 온라인 쇼핑몰 입력 검색어 630여만 건을 분석한 결과 40대 남성의 검색 증가율이 157.6%로 가장 높았다. 40대 남성의 모바일 쇼핑 검색 횟수는 2015년 연간 86.6회로, 123.4회를 기록한 30대 남성보다는 적었지만 20대 남성(78.2회)보다 많았다. 40대 남성이 모바일로 많이 검색한 상품은 ‘가방·신발’ 등 패션잡화(20.2%), PC(개인용 컴퓨터)·모바일 등 IT(정보기술) 기기(14.3%), 운동·취미용품(13.3%), 음식료품(12.5%), 의류(11.7%) 순이었다.



경제력에 소비력까지 갖춘 세대

영포티가(Young Forty) 된 X세대

지금 40대의 학창시절을 그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사진 제공 · CJ E&M

방송, 영화, 책, 공연 등 주요 문화 콘텐츠도 이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올 초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케이블TV방송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지금 40대의 학창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고,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 또한 40대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2015년 상반기 도서 주 구매층을 분석한 결과 상반기 베스트셀러 10위 도서 가운데 6권의 주 구매층이 40대로 나타났다. 도서시장 또한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지금 40대는 인구수 자체도 많지만 일밖에 모르던 옛날의 40대와 달리 문화적 욕구가 있으면서도 경제력이 받쳐주는 이들이다. 그간 대중문화가 젊은 사람들 위주로 가는 것에 대해 피해의식과 소외감, 반발감 등을 갖고 있던 40대가 가진 ‘이제는 우리 문화를 향유하고 싶다’ ‘과거를 떠올리며 위안받고 싶다’는 심리도 이 같은 현상에 영향을 끼쳤다.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핵심 인물들도 40대인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콘텐츠가 시장에서 인기가 많기 때문에 계속 나오는 것이다. 40대 소비자의 영향력과 콘텐츠 생산자의 영향력이 선순환하며 ‘사초 세대’ 콘텐츠 중흥기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 40대가 과거에 즐긴 8090문화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르네상스기에 나왔다. 온갖 명작이 집중적으로 탄생했고, 그 시기에 만들어진 콘텐츠에는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다 보니 다시 소비돼도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초남’들은 사회적인 나이가 젊다는 점에서 ‘영포티(Young Forty)’라고도 불린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16’에서 새로운 사회의 트렌드 주도자이자 소비 세력으로 부상한 새로운 40대에 집중했다. 김 소장은 “평균연령이 40세 시대인 한국에서 지금의 40대는 중년보다 청년에 가깝다. 더 왕성한 자기표현과 대중문화의 생산 주체이자 소비의 중심 세력이다. 결정적으로 ‘킹핀세대’라 부를 정도로 이들은 자녀와 부모 사이, 직장에서도 허리에 해당한다. 후배세대인 30대는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고, 선배세대인 50대도 변화한 영포티를 부러워하며 지켜본다. 즉 영포티인 지금의 40대 초·중반은 한국의 전체 연령에 고루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정치 전면에서도 두각 나타낼 것

2~3년 후면 이들은 1000만 명에 가까운 유권자 집단이 된다. 사회문화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당장 올해 4월 있을 20대 총선은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할 기회다. 김 소장은 “영포티는 진보와 보수 구도보다 합리와 실용의 가치를 중시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을 겨냥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책과 공약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영포티는 이전까지 존재해온 사회적 나이의 통념을 바꿔놓은 세대이기에, 50대가 되더라도 과거 50대와는 다른 영피프티가 될 여지가 크다. 그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금 40대는 사회적 기반도 닦였고, 능력도 어느 정도 검증됐으면서 직장과 사회 전반의 흐름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정치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금 40대 초반은 학생운동 시대의 막내로,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합니다. 30대는 탈이념적이거나 크로스오버적인 면모를 보이고, 사회적 이슈 자체에 관심이 많지 않아요. 야권, 진보정치에서도 40대가 주력부대이고, ‘국민의당’은 3040세대가 중심이며,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40대가 정치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늘 변두리에서 서성이던 ‘사초 세대’는 어느덧 사회 주류가 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3말4초’ 세대는 윗세대와 달리 시장의 달콤함과 사회주의의 맛을 모두 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버럴하지만 완전 시장자유주의적이지도 않다. 2008년 촛불시위 문화를 주도한 세대로 넓은 의미에서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다. 윗세대가 정치, 권력투쟁에 관심을 뒀다면 이 세대는 개인 권리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차이점이다. 86세대보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그 나름대로 자존감과 자신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 위기를 겪고 실업을 본격적으로 경험한 세대라 늘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데다 경쟁이 일상에 침투해 사회적 스트레스도 훨씬 많다. 이 때문에 문화 소비를 통해 탈출구를 찾고, 대안문화를 간절하게 요구하는 수준도 이전 세대보다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헬조선’ 떠나고 싶은 ‘흙수저’▼지금의 20대가 40대가 된다면?▼

지금처럼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프레임에 이골이 난 20대가 40대가 되면 지금의 ‘사초남’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20대가 가진 불안감의 수위는 해방 이후 우리가 가졌던 어떤 세대보다도 높다. 1950~60년대 젊은이도 고생이 많았지만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던 시기라 앞만 보고 가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계층 격차가 심화된 별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에 대한 불신, 자기 회의가 늘고 공동의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이나 기대치가 낮아져 사회 전반에 대한 공론과 담론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20대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뇌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화적 영향력 과시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현재 40대가 과거 20대 때 향유했던 문화에는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었으나, 지금의 콘텐츠는 디지털 댄스 음악, 아이돌 음악 위주라 20년 후에도 호소력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금 40대는 조직적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행위가 자연스럽지만, 20대는 외따로 떨어져 많은 것을 혼자 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40대가 되더라도 사회적 아웃사이더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사회 진출 제약이 큰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청년이 중년이 되더라도 그저 나이만 든 비주류에 머무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지금 20대가 40대가 됐을 때 현재의 영포티(Young Forty) 같은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은 미지수다. 건강한 사회는 사회 허리에 해당하는 연령대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흐름이 깨진다면 세대갈등과 격차만 더 커진다”면서 “현재 20대의 사회적 진출, 즉 취업률과 사회적 구실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은 지금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향후 한국의 사회적 건강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금 20대는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더 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미 세대갈등의 시대는 시작됐습니다. 기성세대는 결코 20대를 챙겨주거나 배려하지 않을 테고, 지금의 기성세대 자체도 누굴 배려할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20대는 더더욱 선거 때 투표를 통해 자기주장을 해야 합니다.”







주간동아 2016.02.03 1024호 (p82~84)

구희언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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