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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北 통전부장 김양건 김정일 사촌이었다?

美 정부 출연기관 전문가 저서에서 주장…사망 의문 풀 단초 되나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北 통전부장 김양건 김정일 사촌이었다?

北 통전부장 김양건 김정일 사촌이었다?

2007년 10월 3일 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열린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김양건 통일선전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시작은 짧은 한 문장이다. ‘Kim Yang-gon is Kim Jong-il’s cousin and was a close confidant(김양건은 김정일의 사촌으로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 2015년 말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국제관계국장이 펴낸 책 ‘북한 사상누각(North Korean House of Cards)’ 292쪽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고스 국장이 북한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프로필을 정리해놓은 두 번째 섹션에 담겨 있다. 고스 국장은 북한 문제, 특히 평양 수뇌부에 대한 다수 저작으로 이름이 높은 연구자로, 그가 몸담고 있는 CNA는 미국 연방정부가 출연한 연구기관이다.
주지하다시피 김양건은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이자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으로 그간 남북관계를 총괄해온 장본인이다. 북한 외교부서의 수장으로 통했던 강석주 내각 부총리가 와병한 뒤에는 사실상 대외관계 전체를 책임져왔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 2015년 12월 29일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북한 관영언론의 갑작스러운 보도가 다양한 해석과 추측을 낳았던 이유다. 이후 대남강경파로 손꼽혀온 김영철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장이 후임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졌다.
대남관계 책임자였던 만큼 김양건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축적된 상태지만, 그가 김정일의 사촌이었다는 이야기는 국내 북한 전문가 대부분에게 생소한 소식이다. 총 460건에 걸쳐 그의 동향을 분석한 통일부 인물정보에도 비슷한 내용조차 없다. 관련 부처 현직 실무자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반응은 마찬가지. 저자인 고스 국장은 ‘주간동아’의 e메일 질의에 “김양건이 김정일의 사촌이라는 얘기는 이미 1990년대 복수의 출처(some sources)에서 나온 것”이라며 “2000년대 초반 탈북자 인터뷰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사촌이라면 누구의 아들인지, 90년대의 출처란 무엇을 뜻하는지를 다시 질문한 e메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두 동생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정보가 의미심장한 것은, 김양건이 실제로 김정일과 인척관계였다면 2015년 가을 이래 벌어진 일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공식 발표와 달리 그가 대외정책을 둘러싼 권력다툼 와중에 희생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고, 특히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한층 증폭된 바 있다. 온건파인 그가 핵실험에 반대하다 강경파에 의해 제거된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김양건이 김정일과 인척관계였다면 앞서의 시나리오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평양 권력정치의 속성을 감안할 때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제외하면 누구도 ‘백두산 줄기’에 속하는 인물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 이는 김양건의 사망이 실제로 단순 교통사고였을 개연성이 크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고모부였던 장성택을 처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김 제1비서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굳이 사고로 위장할 이유는 없는 까닭이다. 핵실험 감행 등을 둘러싸고 평양 수뇌부가 내부 갈등에 휘말려 있을 것이라는 ‘희망사항’ 역시 이내 힘을 잃고 만다.
김양건은 실제로 김정일의 사촌일까. 고스 국장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지만, 해당 문장의 ‘cousin’이 정확히 우리말의 사촌이라는 의미인지는 따져볼 대목이 다. 영어에서는 같은 항렬의 인척, 우리 식으로는 6촌이나 8촌에 해당하는 사이도 폭넓게 ‘cousin’이라 칭하기 때문이다. 우리 식 사촌이라면 그는 김일성 주석의 두 동생이었던 김철주나 김영주의 아들이어야 하지만, 북한 공식자료에 따르면 김철주는 김양건 부장의 출생연도로 알려진 1942년보다 한참 전인 35년 사망했다. 김영주의 경우 후계구도에서 김정일과 경쟁하다 밀려난 뒤 긴 시간 은거해야 했던 인물로, 김양건이 그의 아들일 개연성도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6촌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김정일의 할아버지였던 김형직에게는 모두 다섯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그중 두 사람 김형록과 김형권이 남자였다. 김형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김형권의 경우 1920~30년대 김일성과 함께 항일무장활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게 북한 공식자료의 설명이다. 김양건이 이들 중 한 사람의 손자라면 ‘cousin’이라는 설명도 틀린 바는 아니게 되는 셈. 가장 폭넓게는 단순히 같은 전주 김씨 일가였다는 취지일 수도 있다.


北 통전부장 김양건 김정일 사촌이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빈소에서 조문하는 모습. ‘노동신문’ 2015년 12월 31일자에 실린 사진이다. 사진 출처 · 노동신문

모든 길은 ‘로열패밀리’로?

北 통전부장 김양건 김정일 사촌이었다?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국제관계국장이 쓴 책 ‘북한 사상누각(North Korean House of Cards)’.

다만 전직 안보당국 고위 관계자 가운데 일부는 이와 유사한 소문을 들어본 적 있다고 전한다. 소문에 불과할 뿐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2000년대 후반 북한 대남라인이 줄줄이 숙청당하는 와중에도 김양건 혼자 살아남은 것과 관련해 ‘로열패밀리이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는 것. 당시 대남라인 숙청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유명무실해지면서 책임을 물은 결과였지만, 정작 대남관계 최고책임자이자 정상회담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던 김양건에게는 별다른 신상 변화가 없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고스 국장이 저서에서 강석주 내각 부총리에 대해서도 역시 ‘김정일의 사촌으로,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과 관계돼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 대남·대미관계를 책임졌던 두 핵심 인물이 모두 최고지도자와 인척관계였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서도 일부 전직 관계자들은, 40대 후반에 외교부 제1부부장에 발탁되는 등 강석주에 대한 김정일의 절대적 신뢰가 확인되면서 김일성 외가 쪽 인척관계에 대한 소문이 있었다고 전한다. 강석주에 대한 소문이 김양건에 대한 소문보다 먼저였다는 것. 이 역시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는 단서가 따라붙기는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김양건이 실제로 김정일의 ‘한국식 사촌’일 개연성은 낮지만,  6촌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강석주와 김정일의 인척관계 역시 이전부터 떠돌았던 소문이 미국 측 전문가를 통해 세상에 나온 것에 가까워 보인다. ‘로열패밀리’라는 신분이 북한의 의사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또 다른 방증인 셈. 어떤 경우든 남는 것은 평양의 깊은 속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매우 적고, 그 가운데서도 확인된 사실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70년 이상을 마주했으면서도 여전히 모든 게 불명확한 대북 정보의 현실이다. 






주간동아 2016.02.03 1024호 (p60~61)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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